나는 도마위의 생선이 되어 아가미만 바들바들 떨고 있다

in #drug5 years ago (edited)

일주일간 마약중독의 일기를 올리지 못했습니다. 각오는 했지만, 과거의 일을 들추는 것은 적잖이 괴롭더군요. 그당시 제가 느꼈던 감정을 다시 떠올리는 것도 힘들고, 현재의 시선에서 저를 괴롭히는 악성 댓글들도 저를 힘들게 합니다.
그래도 잠시 숨을 고른 뒤 가기로 했던 길, 다시 걷습니다. 제가 겪고 기록해온 중독자의 일기가 우리 사회 올바른 마약 정책의 등불이 되길 기대합니다. 마약을 경험해보지 않은 전문가들이 만들고 설명하는 정책만으로는, 마약 사용자들의 고민을 온전히 그릇에 담을 수 없습니다.

도마위의 생선.png

#2018년 5월8일 (화) 마약중독자의 일기

회사를 그만 둬야 하나. 아니면 휴직을 해야 하나.

모발 검사에서 운좋게 아무 것도 검출되지 않고 이 사건이 해프닝처럼 끝난다면 좋겠다. 그렇다면 휴직계를 내야겠다. 아무리 이 사건이 해프닝처럼 넘어가게 되더라도 당분간은 회사 사람들 얼굴 볼 낯이 없다.

당분간은 책을 좀 쓰고 싶다. 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꼭 책으로 쓰고 싶다. 이분들은 미군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한 분들이다. 그런데 일본군이 아닌 미군이라는 이유만으로 우리 사회는 이분들을 그저 ‘기지촌 여성’정도로 폄훼해 부르고 전쟁과 국가 폭력의 피해자로 고민조차 하지 않는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픔과 상처가 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그것과 별반 차이도 없어보이는데,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불편한 진실은 그렇게 외면당하고 있다.

이 이야기는 내가 꼭 기자로서 바로잡고 싶은 분야다. 과거 인터뷰 하면서 만났던 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눈빛, 자식도 없이 혼자 아픔을 삭이며 늙어가던 할머니의 주름진 피부, 할머니의 검어가는 피부처럼 색이 짙어가던 낡은 집의 곰팡이 냄새들, 고통을 삼키는 방법을 몰라 그저 마약에만 의존하는 삶을 살던 할머니들, 삼키던 고통을 뱉어내는 방법으로 기차가 달려오던 철길로 뛰어드는 법을 택했던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잊을 수가 없다.

몇년간 경찰청이나 법원을 출입하면서 너무 바빴다. 어떻게든 짬을 내어 위안부 할머니들을 만나 뵙고 기록하고 싶었지만 따로 취재하거나 책을 쓸 여유가 없었다. 늘 가슴 한켠 부채감을 지고 사는 느낌이었다. 경찰이나 판사들이나 모두 자기 스피커를 가진 사람들이다. 내가 가진자들의 스피커를 더 키워주는 역할만하는 게 늘 불편하고 괴로웠다.

하정희(가명) 변호사에게 만나고 싶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국가 배상을 위해 오랫동안 법률적 조언과 활동을 해온 변호사다. 그리고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출판해줄 출판사 대표에게도 연락을 취했다. 둘 모두 좋은 생각이라며 빨리 만나자고 답해온다.

하지만 걱정이다. 아직 이들은 내가 어떤 사고를 쳤는지 모른다. 만약 내가 마약을 한 기자라고 알려지게 되면 이들은 그래도 나와 같이 행동하려 할까? 이전에 만났던 미군 위안부 할머니들은 나를 다시 만나주실까? 아니, 그분들은 날 만나주실거야. 하지만 나는 과연 저널리스트로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두렵다. 이 와중에 계속 기자들이 확인 전화를 해온다. 지들이 나한테 무슨 마약이라도 맡겨놓은 것처럼. 왜이렇게 괴롭히나.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올 때마다 심장이 멈추는 것처럼 숨이 가쁘고 힘들다. 당분간 전화기를 꺼놔야겠다. 미디어오늘 기자에게는 적당히 둘러대었으니 그자가 어느 정도 기자들에게 대신 설명해주었으면 좋겠다.

마약을 했는지 안했는지가 기자의 덕목을 가르는 기준인 것일까. 내가 잘못은 분명 한 것 같은데, 이게 이렇게까지 사람들에게 시달려야 할 잘못인가. 내가 연예인인가? 내가 공직자인가? 아니야. 재현아. 기자가 마약을 한다는게 말이 되나.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겨라.

다 좋다. 부디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나때문에 상처받는 일만 없었으면 좋겠다. 가족들이 상처받는 일이 생긴다면 난 그 죄책감의 무게에 짖눌려 죽어버릴거만 같다. 아니. 내가 다같이 죽자고 할거야.

내가 어떤 잘못을 저지른 것이고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 걸까. 파악하고 성찰할 시간이 필요한데, 이놈의 사회는 내게 그럴 시간의 여유를 주지 않는다. 갈기갈기 찢겨질 운명의 횟감처럼 칼에 베일 날만 기다리며 수족관에 갇혀 사는 느낌이다. 마약을 진짜 한거냐고 묻는 기자들의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난 도마 위에 오른 생선이 되어 아가미만 바들바들 떨고 있다.

※현재의 글.
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아직 취재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시겠지만 1년여간 저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었지요. 하정희 변호사에게도 아직 연락드릴 용기를 못내고 있습니다. 다만 출판사 대표는 저를 계속 만나주면서 많은 격려를 해주고 있습니다. 저는 꼭 미군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기록할 예정입니다.

※당부의 글.
안녕하세요. 허재현 기자입니다. 우리 사회는 그간 마약 문제에서만큼은 단 한번도 마약 사용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 연재글은 마약 사용자들이 어떤 일상을 살며, 어떤 고민들에 부닥치는지 우리 사회에 소개하고자 시작한 것입니다. 마약 사용을 미화하려는 의도가 아닌, 우리 사회에 바람직한 마약 정책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보려는 의도입니다. 마약 사용자들과 우리 사회가 함께 건강한 회복의 길을 걸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고민해보려는 의도입니다. 이점 널리 혜량해주시어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관련글 / 허재현 기자의 마약일기를 시작하며
https://steemit.com/drug/@repoactivist/4vbeg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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