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utopia #7] 지난 운동회 이야기

in #edutopia6 years ago (edited)

@songvely May. 10. 2018.



지난 주 금요일에는 다른 대부분의 학교들처럼 운동회를 했다.


어린이날 맞이 소체육대회




딱히 다를 것은 없었다.


방과후 부서 학생들의 축하공연이 있었고, 교장 선생님의 기나긴 훈화 말씀이 있었다. 달리기를 하다가 넘어지는 아이가 꼭 한 두 명 있었고, 손등에 3등 도장을 받고 눈물을 보이는 아이도 있었다.


운동회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계주였다. 곡선 레인을 용감하게 직선으로 가로질러 달린 1학년 주자를 보며 웃음으로 시작한 청백 계주는 엎치락 뒤치락 역전에 역전을 거듭했다. 그리고 바톤 터치의 중요성과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라는 인생의 교훈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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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와중에 이번 운동회가 내게 조금 특별했던 것은
한 아이와 그 아버지 때문이었다.




운동회 날에는 학부모들이 자녀들을 보기 위해 학교를 찾곤 한다. 보통은 스탠드 윗쪽과 운동장 가장자리에 서서 경기를 지켜보기 마련인데, 유난히 한 아버지가 우리 반 아이, A 바로 옆에 앉아 경기를 관람하는 것이었다. A는 아버지의 품에 꿀이라도 숨겨 놓은 듯, 겨드랑이 사이를 파고들어 자리를 잡았고, 끊임 없이 재잘거렸다.


보통의 경우라면 조용히 다가가 거리를 두고 관람하기를 부탁드렸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 아이가 얼마나 오랜만에 아빠를 만났는지 난 알고 있었으니까.








요즘은 가정환경조사를 하지 않지만 작년에 맡았던 A의 언니를 특수 목적 중학교에 보내며 서류를 준비하다가 불가피하게 그 가정의 상황에 대해 알게 되었다.


A가 자랑하던 아빠로부터의 길고 긴 문자. 매일 아침 문자로 딸에 대한 사랑을 써내려 가는 아빠는 어떤 이유로 딸과 함께 살 수도, 자주 만날 수도 없었다. 그런 아빠가 운동회에 찾아오자 A는 말 그대로 기쁨의 비명을 질렀다.




난 아직도 A를 볼 때면 그 날 아빠를 바라보던 그 눈빛이 떠오른다. 바로 옆에 있는데도 가득한 그리움. 놓으면 떠날까 한 시도 힘을 빼지 못하는 꽉 잡은 두 손. 평소의 무뚝뚝하고 시니컬한 말투는 온데 간데 없고 애교와 사랑이 넘치던 얼굴. 이 아이가 이렇게 부드럽고, 사랑스러웠나 싶을만큼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A 쪽으로 고개를 기울이고 한 마디 한 마디에 귀를 기울였다. 참새처럼 재잘거리는 A를 말없이 한없이 다정하고 애틋하게 바라보았다. 마치 두 사람만 전혀 다른 세상에 있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아버지에게 저쪽으로 멀리 가 계시라고 도저히 말 할 수가 없었다. 그 순간 부녀의 행복을 깰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 누구라도 그 눈빛을 보았다면 둘을 떼어놓지 못 했을 것이라고 변명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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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운동회가 끝나고 주말이 되었다. 어린이 날이었던 토요일, 어떤 아이는 부모님과 동물원에, 다른 아이는 낚시터와 놀이 동산에 간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A가 떠올랐다. A는 어떤 어린이날을 보냈을까.




사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나는 A보다 더 외로운 상황에 있는 아이들을 많이 만나왔다. A는 비록 한부모가정에 있지만 두 부모님으로부터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고, 어쨌든 부모님 중 한 분과는 같이 살고 있다. 반면에 부모님에게 외면당한 아이들, 같이 살고는 있지만 오히려 더 많은 상처를 받는 아이들도 있었다. 심지어 매년 한 두 명씩 만나온 새터민(탈북민) 가정의 아이들은 부모님과 떨어져 아이들끼리 모여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어쩌면 지금 우리 반 아이들 중 몇은 내가 모르는 어떤 상황 속에서 어린이 날과 어버이날이 반갑지만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주말이 끝나고 다시 만난 화요일, 어린이 날에 무엇을 했느냐고 묻지 않았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라고 차마 말할 수 없을 그 마음이 애달팠기 때문이다.








화요일은 마침 어버이날이기도 해서 카네이션 꽃다발을 만들었다. 편지를 써서 돌돌 말아 꽃다발에 꽃아 넣는 것이었다. 내 눈에는 조잡한 중국산 조화가 아이들에게는 참 예뻐보였는지 다들 너무나 좋아하며 열심히 만들었다. 그 와중에 두 개를 만든 아이들도 있었는데, A도 그 중 하나였다. 종이를 접고, 꽃을 붙이고, 두 개의 편지를 쓴 A는 꽃다발 두 개를 소중히, 정말 소중히 들고 교실 문을 나섰다.


그 꽃다발은 아버지에게 전해졌을까.
그 작은 꽃 한 송이를 받아들고 아버지는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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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모든 어린이들에게 즐거운 날이 되기를


강낭콩은 아주 잘 자라고 있습니다. :-)
Edutopia #5 강낭콩을 심었다.




쏭블리 Eduto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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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저번주는 운동회 오늘은 참관수업을 다녀왔는데
많은 생각이 드네요. 아이들은 정말 사랑으로 자라는것 같아요.
좋은 부모가 되도록 다시 한번 마음을 잡아봅니다. ^^

따뜻하면서 안쓰럽네요. 한부모가정에 있지만 두 부모님으로부터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는 아이와 분명 부모님과 같이 살면서도 외면받는 아이..

눈시울이 ㅜㅜ

ㅠㅠ

어린이 날에 무엇을 했느냐고 묻지 않았다

송블리님 정말 좋은 선생님이십니다.

모든 아이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네요.
좀 더 아이에게 사랑을 주어야 겠어요.

짱짱맨 호출에 출동했습니다!!
짱짱맨 x 마나마인! 색연필과학만화
https://steemit.com/kr/@mmcartoon-kr/4cmrbc
존버앤캘리에 이은 웹툰입니다
아이들이 보기에도 좋을꺼 같아요^^ 글작가님이 무려 스탠포드 물리학박사라고......

어릴적 기억이 떠오르네요. 요즘에는 어버이날이 그렇게 와닿을 수가 업습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홍보해

@songvely님 안녕하세요. 별이 입니다. @qrwerq님이 이 글을 너무 좋아하셔서, 저에게 홍보를 부탁 하셨습니다. 이 글은 @krguidedog에 의하여 리스팀 되었으며, 가이드독 서포터들로부터 보팅을 받으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마음이 짠해지네요...

이렇게 생각하시는덕분에 마음 한 쪽이 따뜻해지네요.
아이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기준도, 시각도, 가치관도 ... 더욱 다양하게 열려가는 사회가 되어가기를 기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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