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기록] 02112019

in #kr-pen5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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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아무리 잘나고 위대한 사람일지언정 속을 들여다보면 결국 그도 나와 같은 사람임을 보게 된다. 끊임없이 외로워하고, 앞으로 나아가려 발버둥 치고, 흔들리는 정체성에서 깨어나려 노력하는, 약하디 약한 사람. 그 밑바닥을 들여다 보고 나서야 진정 이 사람을 알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이젠 대충 느낌이 오는 사람과 사람 사이 생기는 연결 고리들. 그 굵기가 얼마나 튼튼한지 아니면 금방 끊어져 버릴 약한 것인지는 적지 않은 시간을 두고 한 발자국 떨어져서 지켜봐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안그런 척 하지만 서로가 가지고 있는 외로움을 드러내지 않으려 얼굴에 가면을 쓰고 상대방을 대한다. 그 어렵고 복잡한 관계 속에서 가장 순수하게 나를 알아봐주는 누군가에게 결국 내 마음의 문이 서서히 열리는 것 아닐까. 매번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때마다 반복되는 고찰이 새롭게 느껴지면서도 결국 뻔한 것에 그치고 말것이란것을 알고 있다. 그래도, 그래도. 이 세상 나 혼자 살 수 없지는 않을까 싶은 마음에 혹시나 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하고 오늘도 나를 상대방의 가면 앞에 조심스레 세운다. 나를 알아줄까? 나를 사랑해 줄까? 동료도 가까운 친구도 적당히 먼 친구도 가끔가다 연락하는 사람도 헤어진 옛 연인도 모두 나를 스쳐 지나간 내 향기를 품고 있을 사람들이지 않은가. 내가 남겨둔 것이 아예 없지는 않을 테니까.

    ‘재미있는 대화’란 무엇일까, 뜬금없는 생각에 깊어졌던 지난 새벽. 나에게 재미있는 대화란 무엇인지 궁금했다. 늘 어떤 주제에 대하여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적는 노트를 주섬 주섬 꺼냈다. 그 중심에 대하여 한참 고민하자니 누구와, 어떤 상황에서, 시간과 공간의 상대성이 빠질 수 없는 요소들을 하나 하나 주욱 나열해야 했다. 처음엔 ‘나’ 를 두고 생각했다가, 내가 좋아하는 것들, 재미있어 하는 것들 위주로 적어도 보고 중간엔 ‘왜’ 재미있어야 하는지, 내가 머무는 일터에는 어떻게 적용이 될지까지 생각이 미치다 보니 사람은 위로운 본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까, 로 결론이 났다. 외로울 때, 그 마음을 채워줄 수 있는 시간을 나눌수 있는 사람과의 대화가 '재미있는' 대화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채워줄 수 있는 그의 외로움이란 나와 같은 본질일까.



    내 기준의 ‘재미있는’ 대화란,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우선은 후회하지 않을, 내 본능에 충실한 외로움과 연민에 기대 욕심을 부리지 않을 만한 이성적인 두사람의 절제를 바탕으로 한다. 바로 삶에 대한 대화이다. 내 삶에 있는 모든 것들을 이야기하고 상대방의 삶에 있는 모든 것들을 나누는 대화는 몇시간이고 유익하다. 상대적으로 시시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나름 내 삶엔 스펙터클한 일들이 매일 일어나고, 이야기 할것들이 바닥나는 경우는 절대 없다.


    실제로 매일 연락하는 친구들과도 매일같이 할 얘기가 어찌나 많은지. 내가 이야기 할 힘이 없는 날에는 듣고만 있기도 하고, 어느날은 서로 말없이 잘 지내는지 얼굴만 확인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을 나누는 것이 처음엔 굳이 필요하나 싶었지만 여기서 또한 결론이 외로움으로 이어진다. 만사 귀찮은 날에도 전화가 오거나 문자가 오면 아닌 척 하면서도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는 것이다. 결국, 계속해서 다가오는 사람, 나에게 손을 뻗는 사람들에게로 마음이 기울기 마련이다. 마음을 줄듯 말듯 하는 쉬운 관계에는 별로 많은 시간을 쏟고 싶지 않다. 그것도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겠지만, 서로의 마음을 향해 최선을 다해 직진 해도 겨우 닿을까 말까한 요즘 같은 세상에 저 먼 발치서부터 간을 보는 사람에겐 별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두번째는 음악에 대한 대화이다. 내가 감명받은 음악, 이번에 이런 뮤지션의 이런 의도로 만들어진 앨범이 있는데 나는 어땠고 당신이 꼭 들어봐줬으면 좋겠다 하는 진솔한 대화 말이다. 들어보니 나는 뭐가 좋더라 하는 피드백 또한 그 음악을 즐기는데에 넓은 관점을 선사해주는 유익함까지. 전혀 들어본 적 없는 장르의 라이브 일지라도 상대방이 이런 음악을 즐겨 듣는구나를 떠올리며 감상하는 것도 참 좋은 일이다. 음악이 사람을 알아가는데 쓰이기도 하는 것이다. 와 멋지다 잘한다 하는 음악보다 이젠 그냥 아무 이유없이 내 심장을 뛰게 하는 음악에게로 귀와 마음이 가는 듯.

    내가 거기로 갈게요, 하는 말을 여태까지 살면서 얼마나 들었는지 셀 수 없다. 하지만 그 말 만큼은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는 매력이 있는 것 같다. 물론, 들어도 예전만큼 마음이 설레진 않는데 그만큼 시간이 지났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마냥 기다리던 시절만큼 마음의 크기가 얕고 좁지는 않으니 다행이다. 그래서 이젠 딱 상대방이 나에게 건네는 말의 깊이 만큼만 대답으로 돌려주게 된다. 그래요, 와요. 기다릴게요. 그리고 정말 기다린다. 그때 그 시간의 우리를 추억하며. 오지 않아도 괜찮다. 나에게 오려고 했던 상대방의 그 마음을 받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때가 있으니까.

    순수하게 서로가 뱉은 말들을 모두 지킬 수 있는 때가 있으면 좋겠다. 내가 여태껏 했던 크고 작은 약속들이 잘게 부셔져 흩어져 있는 내 과거로 돌아가 모두를 실망시키지 않고 사랑으로 돌려주며 보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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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짱맨 호출에 응답하였습니다.

3.1 운동 100주년을 기념하여 북이오는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많은 문헌의 오류를 수정, 정성스럽게 다국어 버전의 디지털 문서로 출간하였습니다.

3·1 독립선언서 바로가기

널리 공유되기를 희망하며, 참여에 감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위로운 본성. 첨엔 그냥 오타라고 느껴졌는데. 이 글을 다 읽고보니, 외로워하며 위로하고 위로받으며 위안을 얻는 그런 본성을 표현하는 단어 같이 느껴지네요. 재밌는 대화의 두 요인에 무척 공감합니다. 이 글은 백번 보팅하고 싶고요.

예전엔 외로워한다는 것 자체를 부끄러워 했었는데 알고보니 모두가 똑같은 면이 있더라구요. 그 깊이와 성질이 조금씩 다를뿐이란것을 깨달았어요.
ㅋ 앗, 오타인데 hyeongjoongyoon 님의 마술로 멋진 뜻을 가진 의도적인 단어가 되어버렸군요. ^^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두 번 읽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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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씩이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훈님도 좋은 하루 되셔요. ^^

좋은 고민을 하고 계시는군요 :)

좋은 고민인가요?^^ 그때 그때 생각을 적은건데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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