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일기 #25. 우리 집에 오는 손님들

in #kr-pet5 years ago (edited)

똥멍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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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냐 넌?

이곳으로 이사 온 지 2달쯤 지나서였다. 어느 날 첫째가 창밖을 바라보고 울길래 나도 함께 밖을 봤더니 웬 턱시도 고양이 한 마리가 놀러 와있었다. 그때의 나는 이곳에 아는 사람이 몇 없었기에 우리 집에 누군가 놀러 왔다는 게 마냥 기뻤고, 이 아이에게 물과 밥을 챙겨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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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좀 편하다냥

그날부터 매일같이 밥과 물을 먹으러 오던 고양이는 어느 순간부터 아예 우리 집 정원에서 낮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고, 첫째는 그것이 참 못마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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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산책

첫째는 호기심이 참 많다. 밖으로 나가고 것을 좋아하기에 아침, 저녁으로 정원 산책을 시켜줬고, 정원에 있는 나무와 풀 향기를 맡는 게 첫째의 행복 중 하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정원 산책을 하는 도중 턱시도 고양이가 갑자기 나타났다. 우리가 첫째를 안고 들어갈 틈도 없이 둘은 번개 같은 속도로 맞붙어 싸웠고, 집고양이가 다 되어버린 첫째는 상처를 입어 한동안 항생제를 먹어야 했다.

그 사건 이후로 우리는 물과 밥 챙겨주는 것을 그만해야 하나 고민했지만, 우리 집 첫째와 둘째도 한때는 길고양이었기에 그냥 계속하기로 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을 몰라주는 저 턱시도 고양이는 '똥멍충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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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했던 첫째는 둘째와 함께 집을 지키려 했지만, 큰 덩치가 무색하게 겁이 많은 둘째는 항상 첫째 뒤에 숨었고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싸우는 일은 항상 첫째의 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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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악! 아빠 바람피우는 거냐옹?

시간이 지날수록 똥멍충이는 밥을 챙겨주는 우리에게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고, 첫째는 더욱 화가 났다. 동네 산책을 나갔던 어떤 날엔 저 먼 곳에서 똥멍충이가 달려와서 온몸을 비벼대기도 했는데, 집에 돌아오자마자 우리를 맴돌며 냄새를 맡는 첫째를 보니 마치 바람피우고 와서 걸린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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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피어 뽑아 들 기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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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딱 기다려!

첫째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줬던 똥멍충이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가끔은 오지 않는 날도 있었기에 한 3달을 기대하며 밖을 쳐다봤지만, 더 이상 오지 않았다. 그 당시 우리 집은 밥 먹으러 오는 고양이가 늘어 똥멍충이 이외에도 4마리가 더 왔었는데, 그들에게 영역을 빼앗긴 것인지, 사고가 난 건지, 아니면 애교가 많은 만큼 누군가의 집으로 가게 된 것인지 알 길이 없다. 다만, 정이 든 만큼 그 아이가 사라진 것은 마음이 많이 쓰였고, 그래서 그 이후부터는 집에 오는 아이들에게 이름을 지어주지 않기로 했다.



형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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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악, 넌 또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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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항상 같이 움직이고, 둘이 붙어 있을 때가 많아 어떨 땐 한 몸에 머리만 두개로 보이기도 하는 아이들이다. 1년 반 째 우리 집에 오고 있는데 공격성이 적은 편인지 우리 집 애들과 창문을 사이에 두고 싸우는 일이 없어 그만큼 첫째가 받는 스트레스도 줄어들었다.



그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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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 오는 고양이 중엔 오랜 기간 오는 아이들도 있고, 잠깐 오다가 영역을 빼앗기는 아이들도 있다. 사진은 없지만, 몇 달간은 많이 아파 보이는 아이도 왔었는데 보통은 영역 싸움에 관여하지 않는 우리도 그 아이가 내쫓기는 것만큼은 불쌍해서 도와주곤 했다. 사실 밥은 다 같이 먹어도 충분할 만큼 주는데, 왜 이렇게 같은 시간대에 몰려와서 싸우는지 모르겠다.

바깥 정원에 오는 고양이가 너무 많아짐에 따라 첫째와 둘째의 정원 산책은 그만뒀다. 싸우는 것보다는 혹시 모를 질병, 벼룩이나 기생충 감염이 걱정되어서이다. 다행히 우리 집엔 2층 벽으로 둘러싸인 작은 중간 정원이 있어 첫째와 둘째는 그곳에서 햇볕을 쬘 수 있지만, 이것저것 심어놓은 바깥 정원보다는 탐험하는 재미가 덜해서 미안한 마음도 든다.

뜨거운 여름날엔 낮 시간 내내 어딘가 숨어있다 밤에만 나타나서 밥을 먹던 아이들이 날이 선선해진 요즘 다시 우리 집 정원을 장악했다. 한국과는 달리 아부다비의 겨울은 고양이에게도 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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냥냥이들 ㅠㅠ ㅎㅎㅎㅎ 사진만 봐도 정말 힐링의 향연이네요 ㅎㅎㅎㅎ

ㅎㅎㅎ 맞아요. 특히 애들이 평화롭게 배내밀고 자고 있는거 보면 정말 좋아요.

아부다비 . 와우 멋진도시로 이사가셨네요~

네 그럴 기회가 생겨서요 :)

똥멍충이 는 집착이 강하고 강한 아이인것 같아요.
그 아이가 왜 안오는지 궁금하네요.
많은 아들이 와서 밥을먹을수있는 써느님
정원은 행복의 정원 이네요.
저도 그런 안전한 장소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밥먹으러오던 아이들이 안오면 궁금하고 걱정되고
그런것 같아요.
그곳은 길에서 살고있는 아이들 에게는 천국 이네요.

행복의 정원이라니! 감사합니다.
저희 집 정원에다 주니 밥 줄때 누군가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서 좋아요. 첫째가 정원에 나가고 싶어해서 문 밖에 둬볼까도 생각했었는데, 그러면 혹시 싫어하는 사람이 생길까 걱정돼서 첫째에게 미안하지만 정원을 내줬어요.
이곳은 그래도 고양이에 대한 인식이 한국만큼 나쁘지 않아요. 자원봉사 단체 중에 길냥이들에게 밥과 물주는 단체도 여러 곳 있고요. 여름에 심하게 덥긴 하지만 그래도 길에 살고있는 아이들이 조금 더 편하게 살긴 하는 것 같아요.

잘 보고 갑니다 ... HAVE a good time ... from SEOUL in Autu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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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 정원에 있는 나무와 풀 향기를 맡는 게 첫째의 행복 중 하나였다.

고양이가 아니라 사람이네요~ 저도 그렇거든요~ ㅎㅎㅎㅎ
집에 오는 고양이들과 첫째, 둘째와의 에피소드가 재미있습니다~

소소한 고양이와의 일상이 동화를 읽고 있는 듯~^^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첫째가 좋아하던 익소라 화분을 바깥 정원에 심어버려서 다시 하나 사올까 하고 있어요. 그러고보니 @mistytruth님 꽃 정말 좋아하시죠?! 저희집에 지금 오렌지 자스민이 만발했는데 향기를 전해드릴 수 있으면 좋겠어요.

치즈는 역시 최고로 순딩이네요, 거기서도.

오 그러고보니 그렇네요. 치즈들만 올 때는 한 번에 넷이서 먹은 적도 있어요. 그런데 요즘은 저기 누워자는 회색녀석이 자기 영역이라고 주장해서 ㅡ.,ㅡ 다같이 모이는 모습은 보기가 힘들어요.

방문묘들이 이렇게 많으니 최소 외롭진 않으시겠습니다.

네 ㅎㅎ 예전에는 혼자있는걸 싫어하고 외로움도 많이 타서 시간만 나면 밖에서 누군갈 만났는데, 요새는 고양이들 덕분인지 밖으로 나가는 일이 많이 줄어들었어요.

냥이들 귀엽다~~
질투하는 모습도..ㅎㅎ

ㅋㅋㅋㅋㅋ 그치?! 똥멍충이는 우리집 안에 살고싶어 했어서 (한 번 들어온 적도 있어) 걔도 우리 애들 많이 질투 했을 것 같아.

되게 부러워했을 것 같아...
그런데 똥멍충이...라고 하니 왜 계속 웃음이 나지? ㅎㅎㅎㅎㅎㅎㅎㅎㅎ

그러게 ㅋㅋ 똥멍충이라고 답글 달린걸 보니까 뭔가 웃기다;;;;;

오는 냥이들이 다 귀엽네용ㅎ
사랑넘치는 집이라고 소문났나봐요^^

밥 잘 주는 집으로 소문 났나봐요. ㅋㅋ 애들도 맛난거 맛없는건 아는지 맛난거 줄땐 엄청 몰려오고, 맛없는 사료 주면 덜 와요.

오는 고양이 막지 않고 가는 고양이 잡지 않는다... 냥이들의 천국이 따로 없네요..

막을 방법도 잡을 방법도 없어요. 애들한테 집 계약서를 들이밀 수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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