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한 의심하며 보라;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은 틀렸다

in #kr-philosophy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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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가 아주 마음에 드는 구절이 있었다.

물 컵이 반쯤 차 있느냐 반쯤 비어 있느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두 가지 주장이 다 필요하다. 낙관주의와 비관주의는 우리가 세상을 보는 시각에 영향을 미치는 하나의 짝이다. 낙관주의자 또는 비관주의자의 의견을 뒤집을 만한 경우를 애써 제시하는 것도 무익한 짓이다.
(중략)
우리의 세계관의 가장 큰 문제는 사물을 단순화시켜서 보는 인간의 성향이다. 우리는 세계를 설명할 때 단순한 상징들이나 일방적인 주장에다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어떤 나라, 또는 사람에다 '좋은' 또는 '나쁜'이라는 딱지를 붙인다.

'우리가 아는 것은 틀렸다'라는 매그너스 린드비스트의 책에 나온 구절이다. 나도 낙관과 비관, 라이프니츠 철학과 볼테르라는 글에서 물이 담긴 컵이라는 상징을 토대로 낙관과 비관을 가르는 태도를 한번 의심할 필요가 있다고 했었다. 그래서 더욱 반가웠을까?

오컴의 면도날을 잘못 인용하는 사람들도 많다. 오컴의 면도날을 단순한게 무조건 옳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컴의 면도날은 불필요한 가정을 제거하는 단계일 뿐이다. 내가 잠깐 고개를 돌린 사이 눈 앞의 사람이 조금 앞으로 움직여있다면 앞으로 걸어갔다는 추론이 가장 간단하다. 그 사람을 외계인이 납치해서 지구를 한바퀴 돌고 다시 내려놓았고, 내려놓는 위치가 조금 어긋나서 조금 앞에 놓았다는 가정은 불필요하다. 하지만 그 사람이 외계인에 납치당했다는 증거가 있다면 어떨까? 이 경우에는, 단순한 설명이라 하여 그 사람이 앞으로 한발짝 걸어갔다는 추론이 무조건적인 사실이 될 수는 없다. 그리고 증거가 없다 하여도 외계인이 납치했다는 추론이 사실일 수 있다. 이렇듯 오컴의 면도날을 토대로 수립한 추론이 무조건 옳은 것도, 오컴의 면도날에 잘릴 추론들이 무조건 그른 것도 아니다.

절대선, 절대악이 없다면 비관과 낙관은 항상 공존하며, 둘 모두 필요하다. 동전의 양면처럼 마주칠 수 없는 정반대의 시각이 아니라 물체와 그림자의 관계다. 보는 위치에 따라 먼저 눈에 들어오는게 다를 뿐. 그래서 이상적인 시각이란 비관과 낙관을 모두 볼 수 있는 상태다. 회색분자라서, 박쥐라서, 양비론자라서 그런게 아니다. 그게 균형 잡힌 시각이다. 맹자가 성선설을 주장했다고 악인의 존재를 부정한건 아니며, 순자가 성악설을 주장하며 선한 인간의 가능성을 포기한건 아니듯.

자주 인용하는 그림이 있다. 닉 수재니스의 언플래트닝에 실린 그림이다. 너무 자주 인용해서 애독자 분들은 질리셨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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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눈이 옳은가? 둘 모두를 종합하지 않으면 실체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는 없다. 하지만 혹자는 이것과 자신의 상황은 다르다고 생각할 수 있다. 자신이 얽힌 다툼을 관점의 차이가 아니라 선악의 구도로 볼지 모른다. 그리고 그게 사실일 수 있다. A는 옳고 B는 그른 상황일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하여 B의 주장 전체를 '그르다'는 표현으로 가두어 놓는 것은 좋지 않다. B가 그런 주장을 하게 된 계기, 그리고 B의 주장에서 논리적인 일부분, B가 A의 주장을 반박하며 내세운 논리 등에는 제각각 받아들일 가치가 있는 시각도, 생각해 볼 여지가 있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외눈으로 평생을 살아온 사람은 다른 시각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울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끊임 없이 의심해야 한다.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사실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지, 그리고 다른 사람의 주장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지난 글에서 빼놓은게 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주장 중 하나는 "불의에 불의로 화답해서는 결코 안 되며, 어떤 일이 있어도 타인에게 악을 행해서는 안 된다. 설령 그 타인이 우리에게 악을 행했다 하더라도 말이다"입니다. 2000년이 지난 지금에서도 함무라비식 단죄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큰데, 2000년 전의 인류가 받아들이기에는 얼마나 어려운 사상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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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지 않은 진통이 진행되어지고 있는 가운데..
많은 이들이 힘겨움을 겪고 있네요..

이럴때 일수록 존버하면서 주시하려고 합니다.

잘 보고 가요

본래 컵에 물이 반이 차있을 때 이것을 충분하다고 보는지 부족하다고 보는지에 대해서는 알고있었는데 이것을 모두 필요한 의견으로 봐야한다는 사실은 어찌보면 당연하면서 사고의 확장의 개념인듯 합니다 큰 여운을 주네요 이 글을 보면서 더욱이 제 자신의 의견에 대해서 맹신하면 안되겠다는 것을 느낍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자주 소통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외눈으로 평생을 살아온 사람은 다른 시각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울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끊임 없이 의심해야 한다.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사실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지, 그리고 다른 사람의 주장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동의합니다. 제가 김리님을 늘 의심하는 이유지요.

김씨이실 수도 있고 이씨이실 수도 있군요!

악 ㅋㅋㅋㅋㅋㅋㅋ

이 분 채소 천재..

드디어 세상이 제 천재성을 알아봐주네요. 얼마전에도... CC8BD27E-0EF4-4508-9C45-AACC9E294E13.jpeg

이분이 채소 박사세요?

(못본 걸로 할게요...)

우와 천재!ㅋㅋㅋㅋㅋ

감사합니다 ㅋㅋ

마지막에
소크라테스의 말이
가슴을 울립니다

결국 진정한 승리는
선으로서 악을 이기는 것이라고 ... 원수를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이 친구로 만들어 버리는 거겠지요~^^

하지만 외눈으로 평생을 살아온 사람은 다른 시각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울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끊임 없이 의심해야 한다.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사실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지, 그리고 다른 사람의 주장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정말 공감하며 힘 없는 보팅이라두 꾸욱 누르고 갑니다

요즘엔 의심을 하는 것도 힘드네요.. 너무 주변에서 미친놈 취급을 해서요...ㅋㅋ..

그러게 말입니다.

저는 이 분 생각나는데요??

저분은 의심 안 하던게 좀 있어서... ㅋㅋㅋ

스팀잇에서 다양한 분양를 만나는 것이 즐겁네요...
앞으로도 좋은 부탁드릴께요. ^^*

절대선, 절대악의 부재로 인한 시각의 다양성에의 존중. 어찌보면 역사상 종교가 강력한 힘을 발휘해냈던 이유가 되겠네요. ‘신의 뜻’ 이라는 아래에 절대선 절대악을 규정지을 수 있는 명분이 되었었으니까요... 저를 돌아보게 됩니다. 감사히 읽고갑니다.

그도 그렇네요. 배워갑니다.

which view is true ? 갱장히 소름돋았꾸요!! 그런고로 리스팀합니다

그림이 너무 좋죠. 사실상 표절ㅋㅋ

따끔하게 느껴봅니다.
흠...
아.. 여러 생각이 막 드는군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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