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된 무기력, 염세주의자가 된 이상주의자

in #kr-philosophy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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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된 무기력이란 벗어날 방법이 없는 부정적 자극에서 의지를 잃어버려 벗어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자포자기 하는 현상을 지칭한다. 이는 마틴 셀리그만이 발견한 현상으로 자신의 의지로 전기 충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상자에 개를 가두어 두었더니, 다른 방법으로 자극을 회피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방법을 찾았다. 반면에 자신의 의지로 전기 충격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자에 갇혀있던 개는, 자신의 의지로 전기 충격을 피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구석에 웅크리고 그저 자극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니체는 "나를 죽일 수 없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고 했지만, 의지로 벗어날 수 없는 고통은 육신을 죽이진 않더라도 마음을 죽여버리는 것이다.

내가 자주 하는 이야기 중 하나가 어두운 세상에서도 낙관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은, 반대로 밝은 세상에서도 비관을 찾아낼 수 있다는 이야기다. 당연히 어두운 세상에서 한줄기 빛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졌다면, 반대로 밝은 세상에서도 그림자를 볼 수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이상을 품은 사람은, 그 이상이 확고하고 이상이 품는 범위가 넓으며 세상에 대한 인지도 크다면 큰 이상만큼의 비관도 품기 마련이다. 가령 이상이 전세계를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다양한 통로를 통해 넓은 세상을 인지하고 있다면 자신의 이상에 반하는 현실을 마주하는 순간도 더욱 잦을 것이다.

세상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물은 드물다. 드물게 전세계에 영향력은 미칠 수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세상을 자신의 이상에 따라 끌고 갈 수는 없다. 따라서 이상이 품는 범위가 전세계라면, 그 누구도 자신의 의지로는 절대로 자신의 이상에 반하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소박한 이상조차도 실현하기 어려운게 현실 아닌가? 이처럼 큰 이상을 가진 사람에게 세상은 '자신의 의지로 전기 충격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자'와 같다.

어떤 염세주의자들의 마음을 들여다 보면 확고한 이상이 있곤 한다. 그들은 희망을 볼 수 없는 눈을 가진게 아니라, 희망을 볼 수 있는만큼 절망을 볼 수 있으며, 자신의 의지로 그 절망적인 현실을 바꿀 수 없었던 사람들이다. '벗어날 수 없는 상자'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 쳤으나 실패한 사람들이다. 물론 염세적인 사람이라도 다 같지는 않다. 그들은 다양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 비관적임에도 불구하고 가슴 깊은 곳에는 이상을 묻어둔 경우도 있고, 비관에 짓눌려 이상을 완전히 잃어버리기도 한다. 지난 글, '꿈꾸는 이들은 피터팬이 아니다.'에서도 살짝 엿볼 수 있는 내용이다. 이들도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끝없는 인지부조화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이상을 포기한 것이다.

그리고 객관화가 있다. 염세주의자들은 현실과 이상을, 세상과 자신을 분리시키곤 한다. 이상은 여전히 품고 있지만, 이상에 반하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 나서지 않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세상과 자신을 분리한다. 자신이 나서도 세상은 변하지 않을 것이기에, 자신은 그저 관찰자라며 현실에 대한 비관이 자신에 대한 비관으로까지는 번지지 않도록 노력한다. 이처럼 염세주의자란 습관된 무기력을 유발하는 세상에 노출된 이상주의자다. 그들도 한때는 세상이 좋은 곳이 될 것이라는 낙관을 품고 있었다.

나도 나 자신을 관찰자에 위치에 두고 있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이상적인 세계에 대한 청사진을 가지고 있지만 그 이상에 도달하기 어려운 현실적인 이유에 대해서 알고 있다. 그리고 내가 나서서 세상이 바뀔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낙관은 잃지 않고 있다. 그게 나와 그들의 차이다. 하지만 낙관이란 항상 위태롭다. 비록 나는 내 낙관을 맹목적인 낙관이 아니라 이성적인 분석의 결과라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아무리 튼튼한 기반을 가지고 품은 낙관이라 하더라도 반복적인 무기력에의 노출은 이성적인 판단조차도 해칠 것이다.

그래서 가끔은 부정적인 현실을 너무 깊게 들여다 보는건 피하고 싶을 때가 있다. 니체는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자신이 이 과정에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만일 네가 괴물의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있으면, 심연도 네 안으로 들어가 너를 들여다본다."는 말도 남기지 않았는가. 그렇다고 부정적인 현실을 피하겠다는건 아니다. 단지 너무 깊게, 자주 들여다 보는 일은 피하고 싶다. 아는 것에서 그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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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내면을 주시해서 나를 잘 파악하는 건 정말 중요하지요
피할 수 있음에도 충격을 받아들이는 무기력한 자세보다는
꿋꿋이 한 발 한 발 내딛을 수 있는 자세를 가져야겠어요

진지하고 근사합니다.
빛과 어둠, 비관과 낙관을 넘나드는 영혼, 멋져요.
이곳의 멋짐을 책임지는 이, 킴리^^

일이 잘 풀리면 항상 불안하더군요. 그것이 제가 지금까지 노력해서 얻은 결과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그렇지 않다는걸 알기에 말입니다.

시도라도 하셨으니 결과가 있는 것이니, 희망은 품고 계신 모양입니다. 세상이 괴롭히겠지만 그 희망 놓지 마시고 앞으로도 잘 풀어가시길 바랍니다.

부정적인 현실을 생각하면 도피하고 싶지만 도피할 곳이 없으니.. 되도록이면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은 하고 있는데 ㅋㅋ 어렵네요~

맞습니다. 도망갈 곳이 없으니... 본문에 링크한 글에도 써두었듯 현실에 네버랜드는 없으니까요.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진 관찰자, 어렵네요.

저는 어릴때는 염세주의자가 멋져보였고, 지금은 낙관주의자가 멋져보이는데.. .그들은 그렇게 통하는거였군요. 그런데 정작 저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듯 합니다 ㅠㅠ

'왜 심리학과 철학에 관한 책을 봐야 하는가?' 에 대한 답을 이 포스팅에서 얻어가는 것 같아요. 부정적인 생각으로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으려 할때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겠습니다

영광입니다.

작용 반작용 법칙이 비단 물리에서만 적용되는 게 아닌가 봅니다.

내가 자주 하는 이야기 중 하나가 어두운 세상에서도 낙관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은, 반대로 밝은 세상에서도 비관을 찾아낼 수 있다는 이야기다. 당연히 어두운 세상에서 한줄기 빛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졌다면, 반대로 밝은 세상에서도 그림자를 볼 수 있지 않겠는가.

글자 하나하나 공감하게 되는 문장이 아닌가 싶네요. 이론에서 많은 걸 배우고 만들어내는 개발자로 대학을 졸업한후, 이제는 비즈니스를 배우며 실학적인 측면을 중시하면서, 손익에 대해 '따져야하는' 저이지만...

인간관계에서 오래 두고싶은 사람을 뽑자면 킴리님이 위에서 말을 해주신 사람이 아닌가 싶네요. 내가 행복할 때 같이 웃어주되, 날카로운 충고를 아끼지 않아줄, 힘에겨워 눈물이 날정도로 비관적일 때, 한줄기 빛이 되어주는 그런 사람들. 살다보면 정말 만나기 힘들다는걸, 또 제가 그런 사람이 되어주는 것이 힘들다는 게 느껴지더라구요.

글 읽다가 뜬금없이 저 문장에서 한동안 인간관계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되었네요.

나도 나 자신을 관찰자에 위치에 두고 있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이상적인 세계에 대한 청사진을 가지고 있지만 그 이상에 도달하기 어려운 현실적인 이유에 대해서 알고 있다.

이 부분, 혹시 이미 글로 쓰셨나요? 아니면, 쓸 예정이 있으신가요? 킴리님만의 이상향은 어떤 세상일지 급 궁금해집니다.. ㅎㅎ

언제나 글 잘 읽고 갑니다!!

바라는게 좀 많습니다. 잘 정리할 자신이 없어서 조금씩 내비치지 않을까 싶네요.

조절이 어려울수가 있네요... 마치 형사가 조폭들을 상대하면서 안물듯이 맨탈 조절하는...? 것이랑 비슷한거같아요..아주 어렵죠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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