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빈자들의 최후의 주거지 - 지옥고 아래 쪽방

in #kr-politics5 years ago (edited)

도시 빈자들의 최후의 주거지 - 지옥고 아래 쪽방 한국일보

한국일보에서 《지옥고 아래 쪽방》이라는 연작기사와, 인터랙티브 뉴스를 내놓았습니다.
막연히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으리라 짐작했던 일을 취재한 기사입니다.

쪽방촌 뒤엔… 큰손 건물주의 ‘빈곤 비즈니스’
소유주 정보

쪽방의 경우 소유주와 실 사용자가 따로 있습니다.
쪽방에 지원을 하면 실 사용자를 지원하려는 지원금은 소유주에게 흘러가게 됩니다.
당연히 소유주의 경우 쪽방을 소유할 만큼 여유가 있습니다.
지원금이 여유 있는 소유주에게 흘러간다고 지원을 안할 수 있는것도 아닌 것이 문제입니다.

이와 비슷한 이유로 기본소득 등 현금지급복지에는 우려를 가지게 됩니다.
실비를 지원하거나, 소비재를 대신 구입해 지원하는 경우도 비슷한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금액이 아니라 주거 장소를 공공이 확보해 돈이 아니라 장소를 제공하는 형태면 그나마 집행한 비용이 그나마 높은 비율의 금액이 목적대로 사용될 것입니다.
하지만 저렇게 매입해 지원하는 것은 당장의 큰 재원이 필요하기도 하고, 이미 이득을 보고 있는 유권자들의 강한 저항에 부딪히게 됩니다.

재개발을 할 때도 비슷하게 문제가 발생합니다.
세입자나 재개발 사업 도중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사람들은 이사비용을 소모하고 더 나쁜 주거 환경으로 밀려납니다.
이사비나 보상금이 나온다고 해도 다른 곳에서 생활 수준을 맞출 수 없는 수준이지요.
버틸 수 있는 사람들은 그 기간을 버텨 시세차익을 오롯이 가져갑니다.

화장실 없는 1.25평 쪽방… “햇볕 드는 집에서 살고 싶어요”

“말이 그렇지 누가 이런 곳에 살고 싶겠어요. 벗어나려고 갖은 노력을 다 해봤는데 아직 이 자리더라고요.”

쪽방이 잠시 거쳐가는 장소라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하지만, 가난하면 살아가는데 돈이 있을 때보다 비용이 더 듭니다.
단순히 월세는 월세가, 전세는 2년마다의 이사비용이 드는데다가, 주거 환경이 안 좋으면 냉난방비, 부대 비용이 증가합니다.
가스 안 들어올 경우 취사 비용이 더 듭니다.
식재료를 보관하거나 관리할 여력 없으면 더 비싸고 질 낮은 식사를 하게 되고, 또 건강을 해칠 경우 의료비도 더 지출하게 되겠죠.
심지어는 간접세 비율 높은 한국에선 소득대비 세금 비율이, 현금장사를 하는 집주인이 가난한 세입자보다 더 높을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이건 계산을 해서 확인해보긴 해야 할텐데...)

단순히 돈을 더 쓰는 것으로 끝나는 것도 아닙니다.
일상적으로 독성물질이나 악취에 노출되면 유의미한 뇌기능저하가 일어날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합니다.
'건강식'의 지나친 도덕화, 저소득층 청소년의 정신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 에 따르면, 하위계층의 경우 건강한 식사를 평가절하해 피하는 경향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비차의 캘리툰 - #113. YOLO와 마시멜로 에서는 가난한 환경에서 쉽게 가지게 되는 사고방식에 대해 다루고 있네요.

재산 상속이 없다고 가정해도 출발선에서부터 차이가 나게 됩니다.
기회의 평등이 주어지지도 않지만, 기회의 평등이 주어진다고 해도 그것이 유의미한 것일지 의문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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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sloth님의 글을 읽다보면 제 자신이 너무나 무지하고 부끄러워질 때가 많아요-

오래는 아니지만 이곳에 나오는 쪽방만큼은 아니지만 저 역시 잠시나마 아주 좁고 더러운 곳에서 거주했던 경험이 있어요.
그 때 제가 얻은 교훈은 주거에 있어서 아무리 힘들어도 최소의 기준보다 절대 내려가지 말고 타협하지 말자.
그렇지 않으면 삶이 회복할 수 없을만큼 망가지니깐요.

생각지도 못했네요. 쪽방의 소유자가 누구인지...
어려운 문제죠. 세금이 목적대로 의도대로 사용되는 것인지 참 어려워요.

자본주의의 진정한 차가움은 가차없다는 점이죠.
가장 곤란에 처해있는 사람의 숨구멍을 틀어막히면 좀 더 효율적이고 편리한 돈이 발생한다는 지점에 있어서 망설임이 없죠.
공정한 룰과 개개인의 능력 차이에 따른 성과 보상 등을 지향하면서도 저는 영원히 약자편을 들 수 밖에 없을 것 같아요..
분명 현실에선 개개인의 노력이나 의지만으로 극복할 수 없는 시스템의 틈이 아주 깊고 어두우니깐요.

마시멜로우 실험 어릴 때 자아통제감에 대해 제게 많은 깨달음을 주었던 실험인데 얼마전 기사로 그 실험에 대한 반박을 접하고 많은 깨달음이 들었죠.
사실 YOLO만큼 슬픈 건 없어요. 현실 순간에 충실한 건 어느시대나 유효하고 좋은 태도라 생각하지만 그것마저 여기저기 마케팅에 이용당하고 마는 거죠.

아직 잘 모르겠어요.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지.
하지만 마음 한 편에서 늘 고민해볼게요.
늘 감사합니다. eversloth님. 작고 편협한 세상에 살고 있는 제게 늘 질문을 던져주셔서.

@moondal

정성스런 댓글 감사합니다!
여기서 본 것을 저기로 옮기고 저기서 본 것을 여기로 옮기고 하고 있어요.
글을 잘 쓰고 싶지만 생각도 많이 하고 많이 써야 할텐데 게으르게 늘어져서 계정과 걸맞은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교환학생 나갔을 때 배정받은 기숙사에 문제가 있는데 영어도 짧아서 막막한 기분에 혼자 울고 싶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 스스로도 식주 기준을 어느정도 수준에 맞추며 살아가려고 합니다.
하지만, 때때로 그것을 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 생각하게 되어보곤 해요.

개인의 성과와 노력에 대해서 회의감을 가지게 된 지 오래 되었어요.
어떠한 능력을 타고 난 것도 확률이고, 그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가지는 것도, 노력을 할 수 있는 환경을 타고 나는 것도, 그 환경에서 노력을 하는 성품을 타고 난 것도 확률이고, 그런 상황에서 불운한 사고를 당하지 않는 것도, 어떤 판단을 내렸는데 기적적이지 않더라도 성과를 내는 것도 운에 따른 것인데 그것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생각이 듭니다.
경쟁으로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들 합니다.
생존 걱정이나, 아니면 단순히 일상생활에 대한 걱정 만으로도 사고 능력을 깎아먹는다고 합니다.
단지 생존을 위해서도 경쟁을 강요하는 환경은 오히려 낭비가 아닌가 싶네요.
위협이 없으면 발전하지 않을 거라고들 하지만, 사람은 그런 존재가 아닌걸요.

현실의 순간에 충실하고 행복을 찾는 것은 중요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게 어려움으로 돌아오는 상황이 문제인 것 같아요.
자신의 행복을 최 우선으로 살아가려고 합니다만, 죄책감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면 행복할 수 없으니까요.
포기할 수 없으니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밖에 없다는 말을 좋아합니다. ㅎㅎ
자신을 던져가며 지금도 싸우고 있는 분들 앞에서는 부끄럽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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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감사합니다.

기회의 평등이 불가능한 현실에 살고 있어서 어쩔 수 없나봅니다.
그래서 저는 경제적 평등보다 정신적 평등을 추구합니다^^;;

기회의 평등만으로도 부족한데 그것도 부족한 것이 현실이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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