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참마속과 나의 이별

in #kr6 years ago (edited)

#1
매일 운동을 하며 느낀 건 단 하루도 컨디션이 100%인 날이 없다는 사실이다. 매일 신던 운동화인데 어떤 날은 오른 쪽 새끼 발가락 부분이 불편함을 느낀다. 같은 루틴인데도 유난히 힘이 안 들어가는 부위도 생긴다. 어떤 날은 비가 내려서 몸이 무겁고 또 하루는 해가 너무 뜨거워서 개운치 않다. 나는 매일 컨디션이 100%가 아닌 이유만을 찾는다.

글을 쓰는 일도 같다. 이걸 써 보려고 하면 누군가의 기대를 배신하는 것 같고 저걸 써 보려면 누가 핀잔을 주는 듯 하다. 칭찬이나 감탄만큼 많은 미움과 실망을 느낀다. 미움이나 실망은 겉으로 보기에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미세한 곳에서 드러난다. 개인적으로 그 부분이 스팀잇을 편히 할 수 없는 가장 큰 걸림돌이다. 나 역시 같은 마음을 다른 것에 대해 가지고 있다. 그러나 드러내지 않는다. 이 건 예의일 수도 있고 위선일 수도 있고 지켜야 할 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전부 핑계다. 매일 몸의 상태를 100%가 아니라고 단정하고 110%의 운동량을 소화하지 않듯이, 이런 저런 마음의 부담을 이유로 창작활동을 하지 않으며 현재 상황을 정당화한다. 끝없이 새롭고 놀라운 것을 써내는 사람들을 보며 질투하기도 한다. 내 안에는 새로운 것이 남은 듯 하기도 하고 하나도 남지 않은 듯 싶기도 하다. 요즘은 어려운 것과 쉬운 것, 복잡한 것과 단순한 것, 낯선 것과 친근한 것이 잘 연결되지 않는다. 자꾸 아니라고 했지만 정말로 스팀 시세가 떨어져서 내 열정과 흥이 함께 사라진 것도 같다. 글이 안 나온다고 징징대는 글만큼은 적고 싶지 않았지만 내 기준에 오늘 글을 쓰지 않으면 꽤 오래 새로 쓰지 않을 것 같아서 백지를 마주했다. '백지의 공포'라는 말을 사용할 자격이 없는, 글쟁이라 하기에도 부족하고 작가라는 이름은 전혀 가당치가 않은 '나'이지만 글을 쓰든 쓰지 않든 몇 개월 간 내가 하고 있는 유일한 활동은 '글쓰기'이다.

#2
읍참마속(泣斬馬謖)이라는 성어를 좋아한다. 법 집행의 공정성과 지엄함을 보이기 위해 사적인 감정을 배제해야 한다는 교훈을 담고있다. 나는 그보다 눈물을 머금고 마속의 목을 베는 공명의 마음을 생각한다.

내 기억에 의하면 이렇다. 그 유명한 출사표를 유선바보에게 올리고 제갈 공명이 1차 북벌(위나라 침공)을 가던 당시, 촉에는 쓸만한 장수가 몇 없었다. 위연에게 반골기질(나중에 배반의 소지가 다분한 기질)이 있음을 알고도 공명이 그를 중용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도 무용을 자랑하는 장수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마속이 경험 부족인 걸 알면서도 공명은 가정전투의 책임자로 그를 보낼 수 밖에 없었다. 절대 산 위에 진을 치지 말라는 공명의 명을 어기고 마속은 위에서 적의 사정을 훤히 볼 수 있다는 이유로 산 위에 자리를 잡았고 장합의 군사에게 포위를 당해 대패를 당하고 만다.

가정전투에서 입은 큰 손실은 1차 북벌의 원대한 계획 자체를 무산 시켰다. 공명은 마속을 참수하라고 명을 내린 뒤, 마속이 죽은 후에 통곡했다고 전해진다. 이 이야기가 읍참마속이라는 성어에 얽혀있다.

나는 총애하던 이를 해(害)하는 사람의 마음을 생각한다. 인간으로 위장한 모습이 아닌 본신을 보면 세멜레가 눈이 멀고 타죽을 것을 알고도 스틱스 강에 했던 맹세 때문에 그 일을 해야했던 제우스의 마음이 그랬을까? 나는 헤어질 때 유독 슬픔이 큰 편인데 앞으로 상대를 볼 수 없다는 슬픔보다 저 아이가 나만큼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없을 것 같다는(?) 착각에서 비롯되는 슬픔이 크다.

내가 너의 '외양'이나 그 것때문에 우리가 남들의 시선을 받을 때 생기는 '우월감'이나 또는 우리의 '밤'때문에 너를 좋아하지 않았듯이, 그렇게 너의 '내면'이나 온전한 둘만의 '시간' 그리고 너의 '존채 자체'를 아끼는 사람을 만나길 바랐고 아울러 니가 누군가의 겉이나 거짓 행복에 현혹되어 썩 이롭지 않을 선택을 하지 않기를 바랐다.

자뻑 증세와 맥을 함께 하는 이런 바람들이 나를 슬프게 했는데 무려 슬픔까지 느낀 이유는 '당연히' 내 바람대로 너가 해내지 못 할 것이라는 확신과 그래서 벌어질 너의 아픔과 시련의 가능성에 대한 감정때문이었다. 이런 자의적인 상상력은 실현된 적도 있고 실현되지 않은 때도 있었다.

일국의 재상이 아끼던 신하를 베며 품었던 감정을 일개 연애사에 연관시키는 것이 우습지만 나는 사랑하는 이에게 내가 알고도 해(害)를 준다고 여길 때 늘 그 성어를 떠올린다. 이별함이 상대에게 이(利)일 수도 있는 것인데 해(害)로 단정하는 나의 자기애(Narcissism)가 우습기도 하고 그런 비약적 단정이 현실이 된 날이 올까봐 애달프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그 모든 생각이 공상으로 끝나기를 바라면서 많은 이를 떠올리지만 어떻게 지내는지 연락을 하진 않는다.

#3
나는 그 여자가 혼자
있을 때도 울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내가 혼자 있을 때 그 여자의
울음을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 여자의 울음은 끝까지
자기의 것이고 자기의 왕국임을 나는
알고 있다
나는 그러나 그 여자의 울음을 듣는
내 귀를 사랑한다.

  • 정현종 「그 여자의 울음은 내 귀를 지나서도 변함없이 울음의 왕국에 있다」(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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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아니 누가 뭐라해도 그냥 글을 쓰라귱
괜차나 괜차나 나는 응원할겡 :)

(jjangjjangman 태그 사용시 댓글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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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차에 도전하세요

그리고 즐거운 스티밋하세요!

왜 사람은 한결같지 못하고 변하는 지 그것이 궁금하네요.
늘 가던 길도 어떤 날엔 다르게 가고 싶은 욕구가 생기잖아요?
가만히 있는 골프공을 치는데도 수시로 변하는 자세도 그렇고...

인생사 ‘세사재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 모든일 자기 마음먹기에 달렸죠.. 근데 그게 쉽지 않네요. 110%를 할수 있음에도 100%가 아닌거 같아 하지 못하고... 이겨내면 좋아지겠죠?

좋은 글쟁이가 되실겁니다.
응원합니다.

저는 요즘 글쓰는게 버겁습니다 ㅋㅋㅋ 내가 뭔데, 뭐 이런 생각?

01 그냥 즐기시오.

Simple is the best policy.

02 가든박은 왕자병(가물에 콩나듯 쌍방향의 사랑을 얻었어도 실패한 총각도 있다오. 그치만 지금 와서 보면 잘됬다 싶긴 함, 연애만 찡하게 하면 그걸로도 足)

모두다 인연생기因緣生起 (근데 상처 준만큼 되돌려 받는 것도 우주의 법칙입니다. 가든님께서 그녀에게 상처를 주셨다면 그만큼 다른 경로를 통해서 되돌려 받을확률이 큼, 이생이 아니어도 내생에)

ps. 근데 절라 개부럼

글은 일차로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과 마주하는 자기 거울이 좋은 거 같아요.
무조건 거울과 마주하고
남한테
얼마나 어떻게 보일건가는 선택^^

화이팅입니다.

굳이 좋은 글을 생산하려고 하기 보다, 하고 싶을 때 더 좋은 글이 나오지 않나요?
스팀잇에서도 마찬가지로 즐거웠으면 합니다.

끄덕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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