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길 수 없어요

in #kr6 years ago (edited)

#1
그 누나는 스물 한 살인 내게 꽤 괜찮아 보였다. 내 친구가 '레인지로버'라면서 흥분하던 차를 타고 다녔는데 내 눈에는 차가 남성스럽게 느껴져 이질적으로 보였다. 누나는 아무 곳에서나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대학 시절, 나에게 담배를 피러 가자고 하는 누나가 2명이 있었는데(나는 늘 이야기하지만 처음부터 지금까지 비흡연자이다) 그 둘은 모두 미국에서 살다가 온 누나들이었다. 노출이 심한 옷을 즐기던 누나는 주로 교정에서 흡연을 했고 레인지로버를 타던 누나는 차를 타고 근처 만(bay)으로 가서 담배를 꺼냈다. 절대로 원래 포장을 유지하지 않았다. 담배 케이스가 간지였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차만 있다면 10분 이내로 바다에 닿을 수 있었다. 차를 타면 늘 롤러 코스터의 '숨길 수 없어요'가 흘러 나왔다. 아니면 Akon의 'Smack that' 같은 노래들이 주를 이루었다. 누나는 나처럼 늘 먼 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먼 곳을 바라보다 느닷없이 스킨십을 하곤 했다. 그 때는 '이게 말로만 듣던 아메리카 마인드인가?' 이 정도로 여겼던 것 같다. 한 누나는 정말 담배가 피우고 싶을 때 나를 호출했고 '레인지로버'를 타던 누나는 다른 것도 원할 때 나를 찾았다. 기 보다는 늘 나와 다니고 싶어했다. 위의 스킨십은 꼭 끝까지 간 그런 행위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많이 돌아 다녔다. 시간이 흐른 후 그 때를 회상하면..아니 그 당시에도 알고 있었지. 누나는 내가 자기를 받아주기를 원했다. 말하자면 고백이나 약속까지는 아니더라도 내가 수동적이지 않은 모습을 한 번이라도 보고싶어 했다. 예를 들면 내가 먼저 무언가를 시도하는 모양새.. 나는 왠지 그러기 싫었다. 누나가 싫었다기보다는, 그 관계에 이유없는 회의감이 들어서도 아니고.. 좀 즐겼다고 해야할까? 육체 관계가 아니고 서로가 속내를 말하지 않는 심리적 긴장 상태를 즐겼다. 누나는 끝까지 나에게 말하지 않았다.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 뭔가 말이 나올 것 같으면 담배를 입에 물었다. 누나가 내 앞에서 깔깔대면서 웃던 기억은 수능 영어의 희생자인 내가 Coward를 코워드라고 말했을 때였다. 카워드 라면서 혀를 굴리고는 꽤나 즐거워했다. 나는 여자친구가 생겼고 누나와 나는 멀어졌다. 오늘 숨길 수 없어요를 듣다 보니..아니 숨길 수 없어요보다는 롤러코스터 노래를 들으면 누나가 생각난다. 오늘이 그 날이다.

#2
담배를 가장 맛있게 피운다고 느낀 아이는 내 여자친구였다. 그 아이를 만나던 2-3년동안은(연속 기간 아님, 중간에 헤어짐 있음. 2번 있음) 커피숍에서 늘 흡연실에 앉았다. 담배를 피우지 말라거나 줄이라거나 끊으라는 이야기를 한번도 건네지 않았다. 나는 담배 냄새를 오래 맡으면 머리가 아파서 피시방에서도 흡연실에서 최대한 멀리에 앉는데 그 아이 때문에 흡연실에서 3-4시간씩 머물렀다. 이상하게도 우리가 사이가 좋으면 두통이 오지 않고 약간이라도 다투면 머리가 아팠다. 갑자기 난 생각인데 내가 여자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이유는 대화 때문이다. 나는 대화를 잘한다. 연애 직전이든 연애 시작 후든, 커피숍과 술집을 가리지 않는다. 난 술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전부 교육 받은 것처럼 하는 대답인 "술보다는 술자리의 분위기를 좋아해요"라는 말이 나에겐 통용되지 않는다. 난 술자리가 아니어도 그 이들이 말하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고 뭔가 알콜이 들어간 상태의 알딸딸한 기분을 원할 때만 술을 마시러 간다. 나는 상대방이 취한 것이 싫다. 여자에게 절대로 술을 권하지 않는다. 간혹, 권하지 않아도 무리하게 마시는 아이들을 보면 끝까지 함께 있지 않는다. 나는 정신이 온전한 사람과만 끝까지 함께 있는다. 타인과 하루를 보낼 수는 있지만 자신이 제어가 안 되는 이와는 절대로 같이 있지 않는다. 나는 그 아이와도 술집에서 처음 만났다. 둘이 만나던 기간동안 마신 맥주와 커피를 전부 합치면 얼마나 될까? 얼굴에 끼가 흐르던 아이였다. 정작 본인은 그걸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다. 키는 170정도 였는데 옷도 짧거나 붙는 것만 입으니까 사람들이 정말 그렇고 그런 사람으로 본인을 여기는데 자신만 아니면 된다면서 그러고 다녔다. 나는 연인의 변화를 유도하지 않는 연애관을 지녔는데 그 것 하나만큼은 본인이 느끼고 고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작년에 (헤어지면서 마지막으로 본 것이 2013년 5월)오랜만에 만났는데 예전의 그 요염함은 사라지고 미생의 강소라가 내 앞에 앉아 있길래 잘 되었다고 생각하면서 아쉬웠다.(?) 느낌 상 곧 결혼을 할 듯 하다. 그 아이가 스무살 때 우리가 처음 만났는데 그 아이가 이제 서른이라니.. 나는 그 10년이 어떻게 흐른건지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3
연애가 무엇인지 아는가? 나는 안다. 그 것 하나만큼은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 연애를 사전으로 찾아보라.

남녀가 서로 그리워하고 사랑함.

이라고 나온다. 연애는 사랑함이기 보다는 그리워함이다. 나에겐 끝난 연애가 없다. 그리움을 전부 지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공식적인 관계가 끝나고 나면 절대로 연락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누가 물으면 이젠 다 잊었다는 말 대신 처음부터 너를 모른다고 말해줄게

슬픈 선물은 바로 저 것이다. 우리 사이의 일은 우리 안에서만 존재하게 해주겠다는 결심, 마음, 착하지 않은 내가 가진 수많은 위선 중 가장 슬프고 기쁜 위선.

나는 원래 오전 감성에 취하는 편이다. 백수의 특권이다 모두들 작열하는 태양 아래 흐르는 땀을 쓸어 넘기며, 감성이 들어갈 틈이라고는 0.1g도 없을 시간에 이 글을 발견하지 않기를 바란다.

담피.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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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숨길 수 없어요 듣는 날인가요?
저도 출근 길에 들으면서 옛날 생각했는데 ㅋㅋ

끝난 연애는 없다는 말이 재미있네요
가끔씩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긴 하죠~!

네, 노래를 들으면 유독 그 당시가 떠오르곤 합니당! ㅋㅋ

잊었다는 말대신 모른다고 해준다는 그말이 좋네요

잊어버리기엔
내추억도 있으니까. .
그순간만큼은 잊고싶지않을테니깐요. .

네, 저는 앞으로 생길 추억과 예전에 만들어 놓은 추억과 그런 것들 모두 모아서 하나도 버리지 않고..추억으로 사는 사람 같습니다..! 헤헤, 오늘 하루도 이렇게 지나가고 있네요. 맛있는 저녁 식사 하셔요 야채님^^

예전 추억도 잘 간직하시고
앞으로 생길 좋은 추억도 예쁘게 잘 만드시고욥
잘 간직 하셔요.^^
간직할수있는 추억이 있다는건 좋은거니까..^^

맛있는 저녁 식사 하셔용~~ 공원님~^^

나는 술마시러 가면 일단 취하고 보는데 ㅋ

저는 취하도록 마셔본 지가 너무 오래 됐네요ㅜㅜ 은둔 생활이 길어지고 있어서 ㅋㅋㅋ 나중에 저랑 랜선 술먹방이라도 하시죠 ㅋㅋㅋ 방송은 저만~ 누님은 채팅만 치시면 됩니당! ^^

그럼 나만 개이득인데? ㅋㅋ 내가 랜선으로 채팅하며 맥주마시는 모습이라니 ㅎㅎ

아 근데 제가 방송으로 하니까, 저와 술을 마시는 상대는 매우 다수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엔 제가 인기가 전~혀 없을테니까 1:1이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ㅋㅋㅋㅋ)

나는 늙었다는 결론 ㅎㅎ

누님..대체 왜 그런 결론이 나는 겁니까!! ㅜㅜㅜ 제가 말을 실수한 건가요!!

ㅋㅋㅋㅋㅋ

연애하고 싶네요! ㅎ

귀여우십니다! ㅋㅋㅋ

저도 술을 먹지 않아도 술먹은 것처럼 놀고 이야기할 수 있는데 말입니다. 그것도 대단한 재주죠... 하하하....

근데 영화 한 편 본 것 같은 기분인네요, 영화에 나올 것 같은 아는 누나와 여자친구예요. 분명 가든팍님이 영화에 나올 것 같은 사람이니 그 분들도 그랬겠죠...?
제 사랑 이야기도 펼쳐놓으면 영화 같은 분위기가 날지 궁금해지는데, 전 부끄러워서...... ㅠ...

우리 모두 각자의 영화 속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극적인 것을 좋아하다가 이 나이까지 이룬 것이 없는지도 모릅니다. 저에게 남은 거라곤 yuky님이 영화처럼 생각해 주실만한 (사실은 소박한)기억과 이야기 들 뿐입니다. 제가 스팀잇을 알게 되어서 다행입니다. 저에게 남은 한 종류가 가치가 되어줄 수 있는 공간이 이 곳이라서..!

yuky님은 늘 바쁘게 다니시며 배우시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 머물다가 곧 또 해외로 가시나요? (앗 너무 개인적인 질문이라면 답변은 안 해주셔도 됩니당 ㅋㅋㅋ)

만나보고 싶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 돌직군가요...-_-

전 네네 담달에 홍콩으로 갔다가 태국을 시작으로 동남아 떠돌이를 시작해볼까 해요.
치앙마이가 여름에 덥지 않다고 해서 치앙마이부터요!

바쁘게 다니는 건 맞는데 ㅋㅋㅋ 배우고 있는 건지.. 여전히 코알못입니다. ㅠㅠ

6월 언제쯤 출국하세용? ㅋㅋ

우왕 만나주시게요?!?!?!?!?!?
저 6월 9일에 출국이고용

이달 말에 엄마랑 6일 정도 베트남 다낭 패키지 다녀와요 ㅋㅋㅋㅋㅋㅋ

만나주다니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만날 수 있다면 제가 영광이지요 ㅋㅋㅋ 그럼 6월 4일에서 7일 사이에 시간 정해볼까요! 제가 yuky님 계신 곳으로 갈게요^^

안개꽃 같으신 분인가봐요. 안개같은 분이신가..
예전 분들의 마음에 여운과 궁금증을 한껏 남겨놔서 생각하면 아련하게 만들고 그럴 분 같아요.

오나무님 말씀대로 그 이들의 마음에 그렇게 남고 싶었습니다. 아마도 그럴 것이라고 여기고 삽니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저에게는 그 것이 삶의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제 정서를 너무도 잘 이해해 주시는 듯 하여 기쁘고 신기합니다..^^ 자주 교류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당!

그시절의 그 노래를 들으며 감성에 젖을 시간입니다~ 저는 술이 친구가 되어 주네요 ^^

음... 쎈 언니들을 좋아하셨군요.
기억은 기억속에 놔두시고
중요한 것은 지금!
열심히 사랑하세요. ㅎㅎ
(감성 갑 글을 뒤늦게 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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