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주를 위한 오마주 (2018.5.15.)

in #kr6 years ago (edited)

나에겐 오늘 찾아뵐 수 있는 스승이라는 존재가 없다.

초중고 과정에서 좋은 선생님들도 많았지만, 그런 분들은 친구 같은 존재가 되어주신 분들로 기억하고 있다. 그분들이 전부 외국인이라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가르침은 책과 직간접적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고, 그분들은 그저 교실이라는, 내가 선택하지 않았던 환경의 질서를 지켜주고, 관계가 조금 더 가깝다면 대화를 하고 옆에서 지켜봐줄 때가 가장 좋았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좋은 선생의 역할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대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어렴풋이 생각하다가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된 이유는 그런 존재가 될 자신이 없어서이다.

박사과정 지도교수님이 되실 뻔한 분에게 지도를 받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 아우라에 가슴이 뛰었지만, 그분의 최상의 성과는 그 유명한 저서들에서 이미 다 찾아본 상태라는 사실을 자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친구 같은 교수와 대화를 많이 나누었다. 역시 외국인들이라 그런지 그런 관계가 더 편했다.

석사과정에서 주로 한국의 배움 환경을 겪어보게 되었는데, 지도 교수님을 매우 좋아했다. 처음에는 그분이 학교에서 가장 똑똑한 교수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는데, 갈수록 (비록 그게 사실이었다 할지라도) 그 이유는 사라지게 되었다. 그는 사회에서 이미 유능한 '일' 실력을 입증한 후 정말 원해서 학계로 돌아온 케이스였다. 사실 국내에서 특히 더 그렇겠지만, 돈이 안 되는 각종 인문학과의 석박사 과정의 경우, 진짜 학술적인 능력이나 열정보다는 가방 끈 세탁을 위해서, 취업보다는 입학이 쉬우니까, 또는 하고 싶은 일을 찾을 때까지 그냥 일단 진학하는 사람들도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런 사람들이 교수 못 될 거 같지? 충분히 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우리 교수님은 그냥 대충 겪어봐도 학문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그런 배경을 처음부터 안 것은 아니었다. 강의가 재미있다고 느낀 몇 안 되는 분들 중 하나였을 뿐이다. 다른 교수들보다 원문에 대한 이해도 있었고, 실제로 읽은 것도 많았다. 사실 한국에서 모범생으로 자라난다는 것은 다른 것보다 시간을 많이 요하는 것으로 보인다. 타고난 머리가 좋거나 학벌이 좋은 것에 비해 읽은 것, 겪은 것이 별로 없어서, 대화 중에도 또래의 대졸 외국인들에 비해 놀라울 정도로 제반 지식이 부족한 것이 종종 드러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상식의 기준을 낮춰야 하는 경우.

우리 교수님은 그런 경우가 아니었다. 물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분이 학부생들에게 하는 강의 내용이 다른 교수들과 마찬가지로 매 학기 비슷하다는 것, 정해진 강의명이 있어서 학자 이상으로 행정적인 인간이라는 것도 차차 알게 되었다. 시간이 갈수록 다소 친근한 류의 실망감을 느끼지 않았다면 거짓말이 될 것이다. 그러나 스승은 그런 학문적인 면에서만 평가할 수 없다.

아직 어색함이 남아 있는 내 한글을 지적하신 분도 그 분이다. 구체적으로 가르치신 것은 아니지만 아직 영문을 읽는 느낌이라고 하셨고, 그 결과 그 당시보다는 자연스럽게 되었다. 나를 아시니까 논문의 내용은 전혀 건드리지 않으셨지만, 형식에 대해서는 엄청나게 까다롭게 바로잡아 주셨다.

그 외에도, 인간적으로 그 분은 스승이셨다. 매우 재미있고 솔직하신 분이었고, 내가 나이 많은 교수니까 당연히 너보다 뛰어나다는 식의 태도도 없었다. 대신 평가 기준이 확고하고 회사에 계셨던 분이기 떄문인지, 발표문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던지고 화내시는 걸로 알려져 있었다고 한다. 내가 석사를 할 당시에는 그런 것은 보지 못했다. 교수님 본인의 말씀으로는 원래 잘하는 아이들 위주로만 생각하셨는데, 나이가 조금 더 드니 유해져서, 못하는 아이들에게 마음이 쓰인다고 하셨다. (못하는 아이를 보면 바로 험한 말을 떠올리는 나는 그럴 자신이 없었는데, 팩트 저격이 취미였던 당시-- 이 부분은 미래의 글 소재이다-- 에 비하면 지금은 아주 부드러워진 셈이고, 그분의 영향이 전혀 없었다고는 할 수 없겠다.)

대신 과제나 발표문을 다시 해오라는 말은 밥먹듯이 하셨다. 내가 그분의 '잘하는 아이'였다는 것은 내 자랑 같지만 거의 누구나 느끼는 일이었다. 내게만큼은 다시 해오라는 명이 한 번도 내려지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거의 어떤 면에서든 강요하시는 일이 없었다. 한국의 대학원이라는 환경에서 그런 경우는 흔치 않고, 따라서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항상 곱게는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교수님이 그렇게 나를 이뻐해주셔서 그분을 잘 따른 면도 분명히 있다.

물론 인간이니까, 복합적인 감정에서 비롯된 오해도 두어 번은 있었다.

내가 미국 박사과정에 지원할 때의 일이다. 교수님의 추천서를 이메일로 등록해서 보내는 절차가 있었는데, 자동으로 그 학교(시카고ㅂㄷㅂㄷ)에서 교수님에게 나를 발신자로 한 확인 이메일을 전송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무 존칭 없이 Dear OOO에게 보낸 것이었다. 교수님은 내가 직접 그것을 보낸 줄로 오해하셨고, 아무리 박사를 하러 떠난다 하더라도 그렇게 이름만으로 부르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전부터 내가 당신을 매우 좋아하기는 하지만, 학자로서는 우러러보지는 않는다는 것을 느끼셨는지도 모르겠다. 석사과정은 1년 만에 마쳤지만 그 기간 동안 제각기 장점들이 분명한 다른 교수님들과 충분히 친해지면서, 우리 교수님에 대한 첫 감동이 희석된 면도 있다.

물론 내가 그렇게 이메일을 써서 보낸 것이 아니었기에, 오해는 금방 풀었다. 그러나 껄끄러워지기보다는, 그분을 더 가깝게 느끼게 되었다.

그분은 자신이 선택한 가족과 함께 살지 못하는, 일명 기러기 아빠였다. 아주 가끔은 어린 자녀에 대한 진심어린 그리움을 표현하곤 하셨다. 큰 아이에 대해선 자랑스러움, 작은 아이에 대해서는 사랑스러움을 주로 표현했다. 사실 얼마나 힘드셨는지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범주의 문제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가족으로부터 필요한 양분을 얻는다. 일부는 태어나자마자 지원이 끊기기도 하고, 일부는 한 평생 그 우산 아래서 든든한 혜택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자신이 선택한 가족의 경우, 함께 의지로 유지하고 지켜낼 수 있다. 우리 교수님은 자신이 선택한 가족을 지키면서, 거의 보지는 못하는 삶을 살고 계셨다.

물론 세월이 더 흐른 후에는 자신이 선택한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살게 되셨을 것이다. 젊은 나이에 갑자기 돌아가시지만 않았다면.

나는 그 사실조차도, 세상에 나와서 바쁘게 살던 와중에 뒤늦은 소식으로 알게 되었다. 공부 이외의 경험들을 많이 하면서 그분에 대한 생각을 거의 하지 않고 있을 때쯤이었다.

나는 후회란 부질없는 것이라 생각하기에, 그것에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하지만 모든 경험은 되새김으로 의미를 찾는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래서 내가 그분의 마지막을 전혀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을 후회하기보다는, 그분을 더 자주 더 오래 기억하려 한다.

붉은 양귀비(poppy)는 1, 2차 대전 전사들을 기리는 꽃이다. 들판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모습이 마치 핏방울 같기 때문이다. 즉 죽음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어서, 일부 사람들은 내가 그 꽃을 가장 좋아한다는 사실이 섬뜩하다고도 한다. 하지만 붉은 양귀비가 나타내는 것은 죽음이라기보다는 희생이고, 또 '기림'이다.

이곳 스팀잇에 가입한 후 세 번째로 쓴 글이 우리 교수님에 관한 내용인데, 오늘 다시 되살려본다.

poppy.jpg

2018. 3. 11.

시를 쓰지 못하겠거든 소설을, 소설을 쓰지 못하겠거든 평론가를 하라는 말이 있다. 주로 평론가 입장에서 자조적으로 할 만한 말이긴 한데, 나는 꽤 어릴 때부터 이 말을 달고 살았다. 분석하기를 좋아하는 마음, 그리고 감성적인 글의 가치는 알지만 차마 직접 쓰지는 못하는 성격이 빚어낸 결과였다고나.

그러다가 언젠가, 내가 소중하게 생각한 은사님, 내 지도 교수님께 직접 만든 액자를 선물했다. 스승의 날에 학생들이 드리는 선물을 전부 돌려보내시던 분이었지만, 연구실을 찾으면 책장에 어김없이 내가 드린 액자가 올려져 있었다.

액자라고는 하지만, 물론 사진을 넣어드린 것은 아니다. 그건 좀...

내가 좋아하는 글귀를 넣어서 드렸다. 시에 대한 것이지만 시는 아닌, 시를 이야기하지만 정작 시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닌, 문학을 하고는 싶지만 눈만 높아져서 직접 하지는 못하는 사람의 마음을 울릴만한 글이었다.

시인 릴케의 말테의 수기...나는 그 책을 영문으로 읽었는데, "시를 쓰려면"이라는 제목으로 묶을 수도 있는 부분이 가장 와닿았다. 그래서 나름대로 원문도 참고해서 옮겨서, 액자에 넣었다.

릴케는 그 글에서, 시를 쓰려면 필요한 조건들을 나열한다. 펜을 쉽게 들 생각을 접게 만드는 내용이다.

그러나 시를 쓰려면 필요한 삶의 조건들을 더 열심히 채우라는 뜻으로 다가오는 내용이기도 하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더 열심히 쓰라는 이야기로 들리기도 한다.

내 마음에 드는 글이기도 했지만 우리 교수님도 나처럼 문학을 좋아하시지만서도, 아니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감히 직접 쓰려는 생각을 못 하시는 것 같아 그 글을 골랐다. 나와 비슷한 심정으로 그 글을 읽으실 것 같았다.

릴케의 그 글이 담긴 액자는, 지금은 세상에 안 계시는 우리 교수님께 내가 드린 유일한 선물이 되었다.

유감스럽게도, 젊은 시절에 쓰는 시는 별로 의미가 없다.
평생, 가급적 기나긴 생을 보내며, 달콤함 그리고 빛을 모은다면 아마도, 인생의 끝자락에서 괜찮은 열 줄의 시를 쓸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시라는 것이 사람들이 생각하듯 감정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감정은 일찍이 생겨날 수도 있다.)
시는 경험이다.
시 한 줄을 쓰기 위해, 시인은 많은 도시들, 사람들, 사물들을 보아야 한다.
그는 동물에 대해 배우고, 공중에 나는 새를, 아침에 피는 자그마한 꽃들의 움직임을 느껴야만 한다.
알지 못하는 곳의 길들을, 예기치 못한 만남들을, 오랫동안 예견해온 이별들을 회자할 수 있어야 한다.
아직도 이해가지 않는 유년 시절의 나날들, 기쁨을 받고서도 (다른 누군가를 위한 기쁨으로 여겨졌기에) 기쁨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슬픔을 끼쳐드릴 수밖에 없었던 부모를 되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몇 가지 심오하고 중대한 변화와 함께 시작된 어린 나날의 질병들, 홀로 갇힌 조용한 방에서 보낸 나날들, 바닷가에서의 아침, 바다 그 자체, 여러 바다들, 급하게 떠나서 모든 별들과 함께 날던 여행의 밤들을 기억해야 한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을 생각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하나같이 다른, 수많은 사랑의 밤에 대한 기억, 해산의 고통을 겪는 여인의 비명과 가볍고 새하얗게 잠을 자며 다시 회복되어 가는 여인에 대한 추억이 있어야 한다.
죽어가는 이의 곁을 지켜도 보고, 열린 창으로 소음이 들어오는 방에서 죽은 이의 옆을 지켜도 보아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추억들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추억이 많이 쌓였을 때, 잊을 줄도 알아야 한다.
그 추억들이 되살아나기까지 기다릴 크나큰 인내심도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추억 자체가 필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추억이 우리 속에서 피가 되고, 시선과 몸짓이 되어, 그 이름도 상실하고 더 이상 우리 자신과 분리될 수 없이 될 때야 비로소 찾아오는 어느 드문 순간에, 시 한 구절의 첫마디가 그 한가운데에서 일어나, 나아오게 되는 것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말테의 수기 中

사진 아래의 본문은 2018년 3월 11일자 글로, [오마주] 프로젝트로 재발굴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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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ieinthedark님 안녕하세요. 개수습 입니다. @torax님이 이 글을 너무 좋아하셔서, 저에게 홍보를 부탁 하셨습니다. 이 글은 @krguidedog에 의하여 리스팀 되었으며, 가이드독 서포터들로부터 보팅을 받으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오 마이 주(酒) ㅋㅋㅋ

이런...이런 드립에 주사위도 망했음 ㅋㅋㅋ

우연치고는 신기해요. 스승의날 연구실 모임에 나가는 길 지하철에서 이글을 읽어요. 분야마다 성격이 다르긴 하지만 대학원에서 지도교수님과의 관계는 ....참....ㅎㅎ 한마디로 말하기 어렵네요. @@ 좀 특수한 경우이긴 한데 한 6개월 정도 교수님을 모시고 살았거든요. 교수님 서재의 자료들을 탐해 시작한 생활이었지만 어찌나 힘들던지요. ㅎㅎ 연애를 시작할 무렵이어서 더 참을수 없었구요...그래서 결국 뛰쳐나왔어요. 그런데 은퇴하신 뒤로는 자주 편찮으시네요.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이 글을 보니 공감되는 부분이 많아 주저리주저리 떠들게 되네요..ㅠㅜ

모시고 살게 되는 일이 정말 있군요! 흔한 일은 아니겠지만...

계실 때 잘 하고 계시는군요. 훌륭합니다. ㅠㅠ

외국에서 오래 사셨는데 한글 실력이 대단하십니다.
우리 아이들도 언젠가는 이렇게 쓸 날이 왔으면 하네요.
연습을 시킬려고 하는데 잘 안되네요.ㅎㅎ

연습 시키시면 더 싫어할 겁니다. 좋아하는 일을 한국어나 한글로 할 계기를 언젠가는 만들 수 있을 거에요. ㅎㅎ 저는 원하는 주제로 논문도 써봤고, 아주 더 어릴적에는 한글 책도 많이 봤었거든요. 물론 원하는 걸로만요.

아마도 제이미님은 교수님이 자랑스러워 하셨던 제자였을 것 같군요. 시간이 흘러도 이렇게 생각해주고 영원히 남는 블럭체인에 교수님에 대한 생각을 새겨 놓는 것도 교수님은 즐거워하실 것 같습니다 :)

저는 특별히 찾아뵙는 은사도 없고, 인생에 스승이랄 분도 안계시는데... 제 문제였겠지만요ㅎㅎ

그러고 보니 오늘이 스승의 날이었네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생각보다 매번 찾아뵙고 싶은 좋은 은사님이 없는 분들이 많더라구요...부모님이 아닌 사람에 대해서 존경심을 갖는 것이나, 자식이 아닌 사람에게 존경을 받는 일은 매우 힘든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물론 부모 자식 관계에서도 쉬운 일이 아니구요.

사실 저 때문에 다른 교수님과의 마찰도 감수하고 그러신 적도 있는데...그 얘기도 언젠가 써야겠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루 즐겁게 보내세요!

나는 후회란 부질없는 것이라 생각하기에, 그것에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하지만 모든 경험은 되새김으로 의미를 찾는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이런 사고방식은 정말 멋지네요. 붉은 양귀비는 죽음을 뜻하기보다 희생이고 기림이다. 잘보고갑니다.

후회도 경우에 따라선 아름다운 감정일 수 있겠지만, 스스로 갉아먹는 것이 될까봐 피하는 편이에요...감사합니다. :)

완벽한 스승을 바라는 것은 인간의 욕심이 아닐까 싶습니다. 스승의 날이 되면 항상 가르침을 받았던 옛 선생님을 찾아 뵙지 못하는 미안함이 먼저 드네요. 아래 글은 제가 읽은 기억이 납니다.

흠이 있는 사람들끼리의 관계로, 어릴 때 부모님 다음으로 상처를 받을 수 있는 존재인 것 같아요. 그래서 원망을 가진 분들도 많고...좋은 경험은 반대로 금방 까먹은 것일 수도 있겠죠. 미안함을 느끼실 정도로 좋은 선생님들이 많이 계셨던 것 같은 또리 집사님은 행운아십니다. ㅎㅎ

또리 집사님이 실생활에서 시를 쓰시는 분이라 저 글에 댓글 다신 일이 기억이 나네요, 저도. ㅎㅎ

ㅎㅎ! 넵.. 감사합니다.. 물론 훌륭한 선생님들만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한 반에 55-60명 이상의 학생들을 지도하는 게 지금으로선 상상조차 하기 힘들죠. 교사와 학생 서로 존중의 분위기가 최선이지만 그 시절엔 선생님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권위에 대한 순종이 수십만의 학생들을 위한 그나마 나은 대안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요즘의 학교 분위기로는 한 반 60명의 학생은 도저히 통제가 안됩니다.

오마주참여 감,,,사,,,,!!!
오늘이 스승의 날이군요.

마지막을 전혀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을 후회하기보다는, 그분을 더 자주 더 오래 기억하려 한다.

덕분에 우리가 그 교수님에 대해 알수있었군요!

감,,,사,,,,!!!는 뭔가 심오한 뜻이 있는 것 같군요.ㅎㅎ 저도 감사합니다. 다양한 에피소드를 가끔 써보고 싶다가도, 본의 아니게 다른 사람 저격이 될 수도 있어서 잘 하지 않고 있죠! 오늘은 날도 날이고, 오마주 프로젝트 하시는 것 보고 전부터 이 글 재발굴 하려고 했었거든요! 그냥 본문만 붙이긴 그래서 주절댔지만...좋은 이벤트 감사드려요. ㅎㅎ

제이미님 글을 많이 읽어 보진 못했지만, 또 제가 남의 글을 평가할 입장이 전혀 전혀 아니지만(저는 인문학을 공부한 게 아닙니다), 직접 문학을 하는 사람이 어울릴 지, 평론을 하는 사람이 어울릴 지, 잘 모르겠네요. 지난번 평론을 하시는 게 좋아보인다는 말은 거둘께요.
신춘문예에 여러번 낙선했다가 평론으로 이름을 꽤 날린 뒤, 나이가 들어 소설을 쓰는 분이 있어요. 제가 보기에는 평론을 계속하시는게 나을것 같은데...
거꾸로 평론에 관심을 가지다가 , 직접 소설을 썼는데, 그 소설이 교과서에 실린 분도 있어요. 무지한 제가 읽어봐도 정말 잘 쓴 소설이에요.
그 두 분의 차이를 보면, 감성의 차이인것 같아요. 한분은 늘 분석적이었요. 똑똑하다는 느낌있잖아요. 그런 느낌을 주더라구요. 한분은 그냥 느낌으로 이야기하고..,

아, 아닙니다. 전 객관적으로 분석이 더 맞는 사람이 맞죠. ㅎㅎ 실제로 문학 전공도 아니었고, 문학을 시도해본 적도 없구요.

물론 항상 분석적인 관점으로 글을 읽다 보니까 어디를 어떻게 눌러야 감성적으로 보일 수 있는지는 알지만, 잘 써먹을 용기도 없고 (오글거려서), 실제로 그렇게 느껴서 쓴 것과 효과를 노리고 쓴 것은 완전히 다르니까요...

요즘은 스승의날 의미도 많이 없어진 것 같아요. 3년전에 교생실습갔을때 자기 담임선생 싫다고 학생들이 아무 것 도 준비안하는거보고 쇼크먹었지요. 그런데 교생으로 간 나는 챙겨주는.... 하하... 참 무안했었던 하루였어요.

이쁨 받는 선생님이셨군요. 사실 학생만 이쁨 받는 게 아니라는 게 실감이 되네요. ㅎㅎ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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