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l 단상]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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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은 얼마 전 봤던 뉴스 내용이다.

 경북대학교에서 신축 기숙사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학교 근처 원룸 임대업자들이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기숙사가 늘어나면 원룸의 공실이 발생할 것을 우려한 것이다. 임대 업자들은 지난 4월부터 신축 기숙사 공사 현장으로 몰려가서 공사 반대 집회를 했다. ‘지역 경제 다 죽는다’, ‘기숙사 건축 공사 즉각 중단하라’, ‘주민설명회 없었다’ 등의 손 팻말을 들고 공사를 막았다고 한다.

 학생들을 허탈하게 만든 건, 대학 본부의 결정이었다. 대학 본부는 학생들과 어떤 협의도 거치지 않은 채 기숙사 수용 인원을 줄이기로 원룸 임대인들과 협의했다. (수용인원 5317명에서 332명을 줄이기로 약속했다고 한다.) 학생들은 그 사실을 언론 보도를 보고 처음 접했고, 비민주적인 방식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요구한 원룸 임대인들과 학생들의 입장을 무시하고 수용 인원을 줄이기로 한 대학 본부에도 분노하여 행동에 나설 것을 시사하고 있다고 한다.

 처음 기숙사를 짓는다고 했을 때, 원룸 임대인 중 몇몇은 자신들에게 올지도 모를 영향에 씁쓸한 입맛을 다시면서도 그건 학교 일이니까, 돈 많이 드는 대학생들 부담을 줄여주는 일이니까 어쩔 수 없지, 하고 상식적인 생각을 한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어떤 학생들은 기숙사 대신 원룸에서 지내려면 아르바이트를 하나 정도는 더 해야한다는 것에도 생각이 미쳤을 것이다.

 다른 몇몇 임대인들은 자신들에게 올지도 모르는 금전적인 피해를 생각하며 흥분을 했을 것이고, 우리가 단체 행동을 하면 어쩌면 조금 덜 손해 보는 방향으로 판을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처음에 상식적인 생각을 가졌던 사람들도, 잠시 '부끄러움'을 접어두면 내 건물의 공실률을 낮출 수 있을 거라는 데 생각이 미쳤고 그렇게 동조하기로 했을 것이다.

 애초에 부끄러움을 모른 사람들은 앞으로도 자신이 좇는 가치의 수준대로 살아갈 것이다. 잠시 부끄러움을 접어두겠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훗날 큰 착각을 했다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이번 일만 염치를 접어두겠다고 생각했겠지만, 부끄러움은 접기는 쉬워도 다시 가지기란 어려운 일이다. 한 번 부끄러움을 놓아버릴 때마다 가치의 대지에 욕망의 영역은 확장되어 버린다. 늘어난 고무줄처럼 되어 버리는 것이다. 내 이익이 침해되는 상황이 오면 그들은 이미 했던 방식으로 그렇게 내 이익을 주장할 것이다. 그렇게 점점 자신도 모른 채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이 되어 간다.

 소설가 박완서는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라는 단편 소설에서 한 중년 여성을 통해 물질적 가치에 함몰되어 부끄러움을 잃어버린 세태를 꼬집는다.

“왜 경희 몰라? 얼굴이 이쁘고 송곳니가 하나 덧니고, 너처럼 부끄럼을 유별나게 타던 애 말이야. 웃을 땐 덧니가 부끄러워 손으로 가리는 버릇이 있었지. 총각 선생이 뭘 물으면 얼굴이 홍당무가 돼서 엉뚱한 대답을 해서 별별 소문을 다 뿌리던 애 말이야.”

“걘 여전하단다. 여전히 젊고 이쁘고 부끄럼 잘 타고, 시집을 잘 가서 고생을 몰라서 그런지 무슨 애가 고대로야.”

나는 느닷없이 경희에게 강렬한 적개심을 느꼈다. 오랜만에 느껴 보는 격하고 싱싱한 느낌이었다. 빨리 보고 싶었다. 경희를. 부끄럼 타는 경희를 보고 싶었다. 나는 마치 경희가 이 세상의 부끄럼 타는 마지막 인간이라도 되는 듯이, 지금이 바로 그 사라져 가는 표정을 봐 둘 마지막 기회라도 되는 듯이 초조했다.
<중략>

경희는 정숙한 여자가 못 들을 망측한 소리를 들었다는 듯이 얼굴을 곱게 붉히더니 “계집애두.”하며 손을 입에 대고 웃었다. 덧니가 부끄러워 비롯된, 손으로 입 가리고 웃는 버릇은 이제 덧니의 매력까지를 계산하고 있어 세련된 포즈일 뿐이다. 뱅어처럼 가늘고 거의 골격을 느낄 수 없이 유연한 손가락에 커트가 정교한 에메랄드의 침착하고 심오한 녹색이 그녀의 귀부인다운 품위를 한층 더해 주고 있다. 아름다운 포즈였다. 그러나 부끄러움은 아니었다. 노련한 연기자처럼 미적 효과를 미리 충분히 계산한 아름다운 포즈일 뿐이었다. 부끄러움의 알맹이는 퇴화하고 겉껍질만이 포즈로 잔존하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실망과 안도를 동시에 느꼈다.

 주인공의 주변엔 대놓고 속물적인 사람과 속물성을 가리고 사는 위선적인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그녀는 삶의 진정성을 저버리고 물질적 가치에 빠져 '현실적'으로 변한 자신이 찾아야 할 이전의 순수한 감정이 바로 '부끄러움'임을 깨닫는다.

 부끄러움을 회복해야 할 이들이 어디 '경북대 기숙사 건립 반대 위원회' 뿐일까. 관리비 3천 원을 아끼기 위해 경비원을 줄이자는 사람들, 청년 임대 아파트를 빈민 아파트라고 규정하고 반대 시위를 하는 사람들.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낯 뜨거운 주장들.

 이들처럼 대놓고 부끄러움을 내팽게치진 않아도, 교묘하게 숨기고 살기도 한다. 염치없는 이들을 향해 혀를 끌끌 차다가도 이익을 침해받는 상황이 바로 내 것이 되면, 부끄러움을 던져 버릴 사람들 말이다. 바로 나일 수도 있고, 당신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그리고 우리는 부끄러움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부끄러움을 말이다. 내가 가진 가치가, 내가 사람을 보는 관점이 언젠가부터 이 사회가 외치는 것과 비슷해졌다면 돌아보아야 한다. 내가 버린 게 뭔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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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도 격렬하게 기숙사 반대 데모가 있었죠.

이상허쥬. 시골에서 농사지어 겨우 등록금 대는데
기숙사라도 들어가면 들 힘들겄네...
애덜 위해 기숙사 짓는다는데 왜 반대햐?
서울은 서울이구나...

했대요.이웃 김씨 아저씨 말입니다.

네 김씨 아저씨처럼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게 어려운 사회가 되어버린 게 씁쓸할 뿐이죠.
이런 일은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네요,, 쩝.

한푼이라도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면 함께 사는 법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본주의의 진정한 가치는 들어오지 않은 채 자본만 넘치는 사회를 만든 것이 이지경까지 오게된 배경이겠죠.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더이상 지켜야 할 가치로 인식되지 못한다는 게 서글픈 현실입니다.
자본주의에서 돈의 맛만 알아버린 단면이네요.

사내 식당도 이와 비슷한 경우가 많지요. 더불어 살아가는 것도 좋지만, 기숙사규모를 줄아만큼 학교측에서학생들을 위해 업자들과 방값인하를 위해 노력했는지도 궁금하네요. 그게 없었다면 그들은 교육자가 아니고 정치가이지요.

네 내용을 살펴보면 대학 본부가 교육적 가치보다 좀 더 쉬운 길을 택했다고 할 수 밖에 없네요. 기숙사 건립이 엄연히 학교의 일이지만, 학생들의 의견은 전혀 묻지 않고 외부인들에게 약속해버렸으니까요. 공사 방해가 귀찮았을 뿐이겠죠.

학생들 상대로 장사해먹다가...이제 시위까지...언제쯤 바뀔런지..,

쓴웃음이 나는 일이죠,, 학생들 더 뽑아먹겠다는 의도로 밖에 안보이니 말이죠.

전 부끄러움이 많습니다.
뻔뻔함이 부러울 때도 있지만, 이건 아니네요.

아직 순수한 부끄러움을 간직하고 계시는군요^^

특정 학교가 기숙사로 학생 주민등록을 이전시켜 투표권으로 기숙사 신축을 한 사례도 있죠. 이러한 전입 신고가 반강제적이라 문제가 있는 부분도 있긴 하지만요^^

참 별의 별 일이 다 벌어지는군요.ㅎ 좋은 뜻을 그냥 실현시키기 참 힘든 세상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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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사와 원룸 분쟁은 어느 지역이든 나타나는 것같아요.
저 대학다닐때도 강산이 바뀐다는 그 오래전에저런 일이 있었거든요.

참 어딜가나 그런 일이 벌어지는 군요,,
씁쓸한 일입니다. 대학 건립할 때 기숙사부터 초대형으로 지어놓고 시작해야겠어요.

저는 낯이 꽤 두꺼운 편인데도(?) 말씀하신 일들은 너무 씁쓸하게 느껴지네요 > <
내 돈 중요한 줄 알면 남의 돈도 중요한 줄을 알아야지ㅎㅎㅎ

네 마니주님의 낯을 뚫었다니, 참 울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ㅎ 마니주님을 씁쓸하게 할 정도의 일은 안 일어나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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