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린's 100] 한 여름밤의 one night

in #kr6 years ago (edited)

 
 
치열했던 2개월이 지나갔다. 얼마나 집중했던지 잇몸이 한참이나 들떠 있었다. 생전 그런 일이 없는데.. 마음이 들떠서였던 걸까..

 
이런 일의 시작은 언제나 나를 흥분시킨다. 직관의 조각이 맞추어져 들어가는 감각이 생생하게 나를 휘감고, 매번 사람들의 의구심을 넘어설 때마다, 당연하다는 듯 무심한 척하며 가슴 아래로 저며들어오는 쾌감에.. 매번 이런 일을 시도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지겨웠다. 수도 없이 같은 과정을 거쳤지만.. 이번에는.. 왠지.. 지겨웠다.

 
결과는 뻔하다. 이런 일에 실패해 본 적이 없다. 중단되었던 적은 많다. 그것도 심지어 눈앞에 명확한 결과를 보고서도 두려움에 중단한 사람들.. 더 이상 그들 탓을 하고 싶지는 않다. 그것도 팔자 탓이려니 한다. (자꾸 늙어간다)

 
스팀시티는 성공할 것이다. 그것은 역사다. 그것을 선택한 이들이 중단하지만 않는다면.. 하지만 나는 여러 번의 중단을 경험하며 묘한 취미가 생겨났다. 그것은 '작정하고 중단시키기'.. 매우 악마적인 취미이다. 한 사람의 인생이 180도로 뒤바뀌었다가 또다시 180도로 뒤바뀌는 일이기 때문이다. 뭐 제자리로 돌려놓는 것이긴 하다. 다만 기적을 맛본 사람이 되었다는 것 뿐. 늘어난 위를 어쩔거나..

 
그게 마법사가 하는 유일한 복수다. 그것은 마법사가 손을 떼는 순간 샤랄라~ 하며 제자리로 돌아간다. 나는 그 힘이 내게 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매우 두려웠다. 그것이야말로 업(業)을 짓는 일이 아닌가.. 한 사람의 인생을 말이다. 그러나 몇 번의 업을 어이없이 짓고 난 후 깨닫게 되었다. 그것조차 운명이라는 걸 말이다. 나는 어쩌면 다스베이더의 운명을 다른 한 손에 쥐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마법사라는 타이틀을 고집하게 되었다. 얘들아.. 나는 천사가 아니란다.

 
빛이 강하면 어둠도 깊은 법. 음양의 이치, 대극의 원리를 따르기로 한다. 그렇다면 나는 매우 악하며 동시에 매우 선하다. 선한만큼 악하며 거친만큼 부드럽다. 어떤 나와 만날지, 선택은 그대의 몫일 뿐이다. 나는 그저 내 생을 걸어가는 한낱 존재일 뿐..

 

지금 나를 붙잡은 손이 누구의 것이든지,
한 가지가 없다면 그 모든 것이 헛될 것입니다.
당신이 나를 더 유혹하기 전에 공정한 경고를 드리겠습니다.
난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전혀 다르지요.
 
나를 따를 자는 과연 누구일까요?
누가 나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 분투할까요?
그 길은 믿을 수 없으며, 결과도 불확실합니다.
어쩌면 그대를 파멸로 이끌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다른 모든 것들은 포기해야 할 것입니다.
나만이 홀로 그대의 유일하고 절대적인 기준이 될 테니까요.
나를 기다리는 시간은 길고도 힘겨울지 모릅니다.
당신의 인생을 지배했던 과거의 이론과
주위 사람들에 대한 복종을 포기해야 할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당신을 더 이상 귀찮게 하기 전에 나를 이제 그만 놓아주세요.
당신의 손을 제 어깨에서 내려놓으세요.
저를 두고 당신의 길을 떠나세요.
 
_ [풀잎] 월트 휘트먼

 
스팀잇에서 이 시를 인용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런데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는 이제 악마가 되었다. 미안한 마음은 없다. 선택하지 않은 자에게 어설픈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것이야말로 업을 짓는 일이다. 기록된 대로 손을 내밀었고, 거절했으니 나는 나의 길을 가면 될 것이다. 어설픈 동정과 응원으로 헛갈리게 하는 일이야말로 매우 잔인한 일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지루했다. 이번 여름, 매번 똑같은 전개의 과정을 거치는 직관의 여정.. 결과는 뻔했고 과정도 뻔했다. 누군가는 열광하고 누군가는 힐난하지만.. 그들조차 조금 뒤에는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며 우리의 주위를 서성일 것이다. 나는 여전히 눈길 한 번 주지 않겠지만..

 
그런데.. 매번 반복되는 일임에도, 그래서 또 반복된 일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일이 또 벌어졌다.

 
지루한 자기소개의 시간을 거치는 중 그대는 어설픈 웃음을 지으며.. 태어나 처음으로 자기 작품을 이번 행사를 통해 팔아보았다며.. 기쁘다 했다..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나는 순간.. 반복되는 전율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역시 반복이었음에도 늘 나를 무너뜨린다. '태어나 처음.. 자신의 결과물에 가치를 인정받는 일..' 그는 다음날 뒷풀이 자리에서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이제 집에다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어요.

 
이 말은.. 아는 사람만 아는.. 이 말은.. 이 지루한 두 달간의 번잡스러움에 가장 큰 결과물이다. 그랬구나.. 그대였구나.. 그래서 우리는 이 장마를 뚫고 이 행사를 해내어야 했구나.. 말도 안 되는 이상한 실험을 해냈어야 했구나..

 

단 한 사람
 
나는 결코 대중을 구원하려고 하지 않는다.
나는 다만 한 개인을 바라볼 뿐이다.
나는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다.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껴안을 수 있다.
단지 한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씩만..
따라서 당신도 시작하고
나도 시작하는 것이다.
나는 한 사람을 붙잡는다.
만일 내가 그 사람을 붙잡지 않았다면
나는 4만 2천 명을 붙잡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노력은 단지 바다에 붓는
한 방울 물과 같다.
하지만 만일 내가
그 한 방울의 물을 붓지 않았다면
바다는 그 한 방울만큼 줄어들 것이다.
당신에게도 마찬가지다.
당신의 가족에게도,
당신이 다니는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단지 시작하는 것이다.
한 번에 한 사람씩..
 
_ 마더 테레사

 
어린 시절.. 대중을 구원하려던 내게 마더 테레사가 가르쳐 주었다. 단 한 사람부터 시작하라고.. 그래서 마법사는 모두의 마법사가 아닌 그대의 마법사가 되었다. 그 뒤로 나는 늘 단 한 사람이었다. 지금도 역시 그렇다. 그래서 총수는 단 한 사람이어야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두 명이다. 벅차다. 하지만 수십 년 한 사람이었으니, 정원을 한 명 더 늘리는 것은 마법사의 성장일 테다. 그러나 역시 한 사람이든, 두 사람이든, 마법사에게는 단 한 사람일 뿐이다.

 
그리고 그 단 한 사람의 용기와 선택이 단 한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켰다. 처음으로 한 권의 책을 판 작가를 탄생시킨 것이다. 그것으로 스팀시티는 할 일을 다했다. 여기서 해산해도 좋다. 마법사는 이제 스팀시티를 떠나도, 스팀잇을 떠나도, 운명의 책망을 받을 필요가 없다.

 
너희들은 아니? 이게 어떤 기분인지?

 
마법사는 지난 10여 년간의 글들을 모아 혼자만의 온라인 북 스토어를 만들었다. 이름을 집현담이라 짓고 1년에 365,000원짜리 멤버십을 가입해야만 볼 수 있게 봉해버렸다. 마법사는 여러 차례 출판할 기회가 있었지만.. 매번 좌절되었다. 지진이 나 좌절되고, 출판사 사장이 싸가지가 없어 좌절시키기도 했다. 자식들은 자꾸 쌓이고.. 마냥 그렇게 내버려 둘 수만은 없어, 먼지 훌훌 털고, 깨끗한 옷 입혀, 온라인에 담아 두었다. 볼 사람만 보라고 자존심 내세우며, 아무도 사지 않을 가격을 매겨 두었다. 역시 가족들조차 가입하지 않았다. 파리만 날리는 서점.. 그래도 만들었으니 출생신고라도 해야겠기에, 하지 않던 SNS를 시작했다. 그리고 단 한 사람이 가입을 했다.

 

빈센트는 생전에 하나의 작품 밖에 팔지 못했다. 그의 독자는 동생 테오 단 한 사람뿐이었다.

 
지금도 회원은 단 한 사람이다. 그에게 새 글을 보여주고 싶어, 스팀잇에서 다시 [멀린's 100] 시즌 2를 시작했다. 글은 7일이 지나면 집현담으로 옮겨진다. 50여 회를 연재하는 가운데 스팀시티가 시작되었다. 단 한 사람이 없었다면.. 스팀시티는 없다.

 
우라지게 쏟아지는 장맛비속에서 그대의 말을 떠올린다. '이제 저도 집에 할 말이 생겼어요.' 그래 나도 운명에게 할 말이 생겼다. 여름이면 끝없이 이어지는 장마처럼.. 그대의 여름에도 할 말이 많아지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나는 한 여름밤 쏟아지는 빗속에서 울고 있었다. 검정치마를 입고, 수피들처럼 춤추며, 지구행진을 시작한 스팀시티의 동산에 올라, 뱅글뱅글 춤을 추고 있었다. '우하하하 그가 책을 팔았다! 그가 집에 할 말이 생겼다!!' 온 세상이 떠나가도록 외치고 있었다. 기쁨의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지고.. 뿌듯한 마음이 날개가 되어.. 스팀시티의 상공을 뱅글뱅글 돌고 있었다.

 
2018년 7월의 첫날, 그 한 여름밤의 one night은, 태어나 처음으로 자신의 작품을 판 그대의 one night이 시작된 날이다. 결말이 궁금해서 미치게 만든.. 어처구니없는 그대의 one night 때문에.. 자꾸 포스팅을 기웃거리게 만든.. 마법에 중독된 날이다.

 
끝났다. 스팀시티의 one night이 그렇게 끝이 났다.

 
안녕..





[RECENT]
[스팀시티]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나가면 누구를 만날까?

[INTRO]
마법사입니다. 그렇다구요.
마법의 열차는 불시 도착, 정시 발차

[Post list]

Sort:  

마법사님 엄청 오랜만입니다.
스팀시티의 성공은 확정된 사항입니다.
고생 엄청 많으시죠??
감사드리며 스팀시티시민으로 항상 응원하고
함께 하겠습니다.
비타민좀 챙겨 드시구요..

저도 자기소개시간에 했던 그 분의 말이 인상깊었습니다. 아마 한손님이었던가요?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누구에게는 늘 경험하던 익숙한 플리마켓이었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잊을 수 없는 첫 경험이기도 했겠죠. 괜시리 뿌듯하더군요~

단세포는 마법사님 빠이빠이인줄 알았습니당

요즘 마법사님이 센치하십니다! 덩달아 센치해질라해욧! 이것도 마법의 힘이겠지만요 ㅋㅋㅋㅋ 단한사람을 위한 마법의 힘이 더욱 위대해 지는 그날가지 화이팅합니다!!

마법사님... 마법사님..!!!
조금은 먹먹해지지만~ 그러라고 쓰신글은 아니겠죠~

뭐 쉽지 않을 것이란건 처음부터 예상했었으니까요..!!!
세력님들이 스팀 가격을 조금만 더 올려 줬다면 좀더 나았을 것 같기도 했는데 말이죠~~

뭐.. 스팀시티가 굳이 시세 따라 가는건 아니긴 하지만요..!!

암튼.. 암튼..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정말로요..!!

시즌2 기다리고 또 기다리겠습니다..!!

IMG_1616.PNGIMG_1617.PNG

https://steemit.com/kr/@mmerlin/11

스스로에 대한 경계심을
잃지 않으시길 바래요 :)

Coin Marketplace

STEEM 0.30
TRX 0.12
JST 0.034
BTC 64136.70
ETH 3128.20
USDT 1.00
SBD 3.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