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스톤의 횡설수설) 명절? 이제는 없었으면 좋겠다.

in #kr7 years ago

2017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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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설날과 추석은 정말 좋은 날이었다. 일년에 두 번 새옷을 입을 수 있었고 새로운 신발을 신을 수 있었다. 김치말고 다른 고기반찬도 구경할 수 있었다.

나는 전을 좋아한다. 아마 내 나이쯤 되는 사람들은 거의 다 그럴 것이다. 일 년 중 전을 구경해 볼 수 있는 날이라고는 설날과 추석 그리고 제삿날밖에 없었다. 어머니가 전을 구으시면 나는 근처에서 놀다가 한 점씩 몰래 훔쳐 먹곤 했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제사음식을 먼저 먹으면 안된다고 하셨지만 그리 타박하지는 않으셨다.

동네 마을 시장은 명절 며칠전부터 바빴다. 한쪽에서는 뻥튀기가 연신 터졌다. 마치 폭탄 터지는 것 같은 뻥튀기 소리가 울리고 나면 주변에는 튀밥들이 흩어졌고 우리 꼬맹이들은 그런 것 주워 입에 넣곤 했다.

그 반대편에는 엿에다 튀밥을 섞어서 한과를 만들고 있었다. 넓은 판에다가 엿에 버무린 튀밥을 넓게 펴서 굳힌 다음 자로 잘라내서 말리면 과자가 된다. 그 옆에 서 있다 보면 가장자리에 남는 것들이 나온다. 그러면 꼬맹이들이 달려들어 하나씩 주워들었다.

차례를 지내고 나면 꼬맹이들에게 용돈세례가 벌어진다.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여기저기서 용돈이 들어왔다. 의례 마당에서 편을 짜서 윷놀이를 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즐거웠다.

요즘은 명절이 즐겁지 않다. 명절이라고 특별히 추석빔이나 설빔처럼 새로운 옷을 해입는 것도 아니다. 요즘은 평상시에도 옷을 사 입는다. 명절음식이 특별하게 기다려지지도 않는다. 요즘은 매일 매일 먹는 것이 명절 때보다 나았으면 나았지 못하지는 않는다.

어렸을 때 그렇게 맛있게 먹었던 전도 이제는 건강 때문에 많이 먹지도 못한다. 그리고 어릴 때 먹던 맛도 없다. 시장 한 켠에서 도둑질 하듯이 얻어먹던 한과 나부랭이보다 훨씬 맛있는 것을 매일 먹는다. 이제는 어떻게 하면 안 먹을까가 문제이지 무엇을 먹을까하는 것은 문제도 되지 않는 시대가 되고 말았다.

요즘은 명절이 부담스럽다. 명절만 되면 집안마다 문제가 생긴다. 무슨 일이 있어도 명절을 과거처럼 지키고자 하는 부모들과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식 간에는 온갖 눈치작전이 벌어진다.

팔순이 넘은 어머니는 너희는 너희들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라 나는 내가 해왔던 방식대로 하겠다고 하신다. 난 그때마다 시집온 여자들 눈치를 본다. 젠장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렇게 눈치를 보고 살아야 하나. 가끔 부화가 올라갈 때도 있다.

일년내내 서로 연락도 잘 하지 않다가 명절이라고 모여서 제사지내고 서먹서먹하게 앉아서 있다가 간다. 그리고 그 명절의 후유증은 오래간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한국의 세시풍속이라고 하면서 마치 아주 좋은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것을 지키는 삶은 풍요롭고 아름다운 것처럼 말한다. 그런데 그런 세시풍속은 모두 농경사회 때 만들어진 것이다. 지금이 농경사회라면 그런 세시풍속이 의미가 있을 수 있다.

지금은 산업화사회를 지나 이제는 정보화사회이다. 정보화사회에서 농경사회의 풍속을 지키려니 얼마나 힘이 드는가? 말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모두가 스트레스일 뿐이다. TV에서 명절이니까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 밉다. 귀성 ? 요즘도 목숨 걸고 귀성하는 사람들 있나?

귀성이라는 말은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전환하던 초기에나 있었던 이야기다. 우리는 과거의 멍에속에 산다. 아직 서울역에 표사려고 밤새도록 길게 줄서는 것 생각하는가? 이제 그런 일은 없다. 주말에도 언제든지 시골에 다녀올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말이다. 과거에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놓은 환상 속에 갇혀 사는 경우가 많다. 명절이 그런 것 같다. 세상에 무슨 정해놓은 법이 있겠는가? 그냥 살면서 만들어 가면 그게 법이되는 것이다.

차라리 명절 때 여행을 떠나는 것이 훨씬 현명한 것 같다. 필자도 얼마 전까지는 명절 때 여행을 간다고? 그런 상것들이 있나? 하고 생각했다. 요즘 들어서 생각이 바뀌었다. 앞으로 옛날처럼 해나갈 자신이 없다. 맨날 시끄러운 것 보다 여행하는 것이 훨씬 낫다.

지키기도 어려운 명절 지키느라고 고생하지 말고 차라리 놀자. 차례라는 것이 원래 차를 올리는 것 아니었던가? 음식하지 말고 그냥 차나 한잔 올리고 제사지내면 안되나?

여자들도 옛날처럼 집안일만 하지는 않는다. 집안일만 하고 있어도 입이 나오는데 직장일하는 여자들이 어떻게 제수음식 장만한다고 쪼그리고 앉아 있나? 귀신이 음식을 먹다가 체할 일이다. 그냥 다 때려 치우고 좋은 레스토랑에서 식구들 모여서 밥 먹으면 되는 것 아닌가?

난 이제 명절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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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er Up! 많은 사람들이 이 포스팅에 관심을 갖고 있나봐요!

  • from Clean STEEM activity supporter

저희집은 25년전 어머니께서 '나 이제 명절안해'선언하셔서...다들 좋아하는 음식 위주로 마트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훌륭하신 어머니를 두셨네요

듣고보니 oldstone 님의 말이 공감되네요

Wow nice one buddy

안녕하세요 oldstone님, 정말 그 때 그 시절이 그립네요. 세상이 변하긴 했나 봅니다. 부모님들 입장에서는 평소에 자주 못 보는 자식들 얼굴한번 보려고 명절을 기다린 다고 합니다. 이제 저도 부모가 되고 보니 그 입장이 이해가 됩니다. 물론 말씀처럼 어색한 분위기가 될 수도 있고 고향길이 먼 분들에게는 부담도 스러운 일이겠지만 이런 명절에 얼굴한번 뵙지 못한다면 나중에 찾아올 그리움들은 어찌 감당하실런지요. 제가 좀 많은 그리움을 담고 있어 그리지 않을가 싶네요. 아무쪼록 행복한 추석명절이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부모님은 평시에 자주 찾아 뵈어야지요

네 지당하신 말씀이네요^^ 감사합니다.

미친세끼

옛날 같지 않은 명절 입니다.
여러 부분 공감이 갑니다.
그래도 명절이면 가족들이 모일수 있으니 좋기는 합니다.
불편한 면이 많이 있기는 하나 그렇다고 이마저 없다면 너무나 삭막할것 같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명절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컴을 켜니 딱 보이는글이 님의 글이었습니다.
내게도 좋은 일이 생기려나 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냥 놀려고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간단 명료
최고의 명답 입니다.

재미있게 지내세요.

그렇다보니 명절에서, 명절이 아닌 휴일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난 것 같아요. 5년 10년 후의 명절은 또 어떻게 변했을 지 궁금해집니다.

어떻게든 변해 있겠지요
사이버 성묘?

집안마다 시대를 바꿔서 변하는 것 같아요. 저희는 삼촌 이모 모두 같이 보드게임하고 놀아요. 요리할때도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마라' 를 외치며 다 같이 모여서 파까고 밤까고 송편빚고 전부치고 하거든요. 밥 다 먹으면 제가 커피타고 배깎고 ㅋㅋㅋㅋㅋ 저희는 즐겁게 놀아서 추석이나 설이 좋아요! 제사도 안 지내니까 편하더라구요.

시대가 바뀌면 풍습도 바뀌어야 하는데 그 집은 좋은 집안이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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