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경비구역 JSA와 북미 정상회담

in #kr6 years ago (edited)

공동경비구역 jsa.jpg


텔레비전으로 (정확히 말하면 휴대전화 어플리케이션으로) <공동경비구역 JSA>를 봤다. 방송사는 시의적절하다고 판단하여(?) 방영했겠지? 영화의 내용은 현상과 알맞게 포개지는가? 제쳐 두자. 2000년도에 개봉한 영화이다. 군데군데 낡아 보이는 장면이 없지 않지만 그럼에도 꽤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했다. 영화가 나온 때로부터 무려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꽤'라는 부사를 제거하여 그냥 잘 만든 영화라고 해야겠다.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했고. 처음부터 보진 않았다. 조금 보다 끄려고 했으나 결국엔 엔딩 크레딧까지 보았다.

허구적 색채가 없는 것은 아니다. 판문점 근무를 해 보지 않아서 잘 알진 못하지만 그곳에서 근무하는 헌병은 개인 화기(권총)를 상시적으로 소지하는가? (아래 댓글에 쓴 대로 상시적이라는 말에는 어폐가 있는 듯하지만 수정하진 않았다.) 위치가 위치인 만큼 그럴 수도 있겠다.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근무자가 제 맘대로 월북했다 돌아오는 것(월남)을 반복할 만큼 근무 환경이 헐거운가? 모르겠다. 실은 영화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이런 디테일에 시비 걸면 안 된다. 결벽증적으로 핍진성을 따지고 들면 판문점에서 벌어지는 군인들 간의 우정 섞인 에피소드를 어찌 그려낼 수 있겠는가. 연출자조차도 얼마간 불신을 유예하고선 촬영에 임했으리라.

예전에 볼 때는 몰랐는데 영화 곳곳에 포진한 메타포를 찾는 재미도 쏠쏠했다. 물론 나 혼자 확대 해석하여 방점 찍은 것일 수도 있겠다. 한 장면을 꼽자면, 송강호와 이병헌이 손을 맞잡고 힘 겨루기를 하는 바로 옆에서 김태우가 신하균의 군화를 손질해 주는 장면이 내게는 연출자가 삽입해 놓은 은유로 읽혔다. 김광석의 노래를 적절히 사용한 것도 영화의 몰입도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고 본다.

어제는 역사적인 날이었다. 트럼프와 김정은이 합의한 사항이 얼마나 지켜질지는 모르겠으나 2018년 6월 12일이라는 날짜가 역사에 기록될 것만은 분명하다. 적국의 수장이 만나 손을 잡은 일이 정전협정 이후 처음이라고 하니 뜻깊은 이벤트였다고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회담을 목격하며 기분 좋지만은 않았다. 저 두 사내가 심기가 뒤틀려 전쟁을 벌이기라도 하면 나 같은 일개 시민은 그들의 말이 되어 산화해야 한다. 그러한 현실이 못마땅했다. 평화 국면에 웬 궤변이냐고 지적 받을 수 있겠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정상회담이라는 말 자체에서 민주 시민이라는 단어의 허상과 모순을 읽는다. 저들이 앞에서 아무리 으러렁대도 저들은 몸소 총을 들지 않는다. 저들이 전쟁을 선포함으로써 피를 흘려야 하는 인원은 이미 정해져 있다.

트럼프가, 김정은과 정상회담을 하고 북한과 해빙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적극적인 이유는 대체 뭘까? 노벨평화상 받으려고? 중간선거 때문에? 본인의 재선을 위해서? 모두 어느 정도 부합하는 요소일 테다. 이렇게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미국과 북한의 화해 협력 과정에서 트럼프는 혹 김정은에게서 본인 사업과 관련하여 무언가 받아내려는 것은 아닐까? 너무 미시적 시각일까. 하지만 한국 국회에서 연설하며 천연덕스럽게 본인 골프장 홍보를 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째째한 포석은 두지 않으리라고 단정할 수만은 없다. (쿠데타가 없다면) 국무위원장은 종신직이지만 대통령은 임시직일 따름이지 않은가. 물론 터무니없는 소설이다. 아무튼 트럼프의 과감성(?) 때문에 일에 진척이 있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그는 문제적 인간이지만 그의 성정이 한반도 평화에 (현재까지는) 순기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현실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억지스럽지만) <공동경비구역 JSA>로 돌아오자. 두 쌍의 남북 병사들은 참혹한 비극을 맞는다. 송강호가 목숨을 부지했는지는 영화에서 다루지 않지만 그가 힘겨운 미래를 맞게 되리란 것은 자명해 보인다. 결론은 이러하다. 첫째, 당신이 나가 싸울 것도 아니면서 함부로 전쟁을 입에 담지 마라. 틈만 나면 전쟁을 얘기하는 자들을 경계해야 한다. 둘째, 2000년에 탄생한 이 영화의 결말과는 달랐으면 한다. 영화에는 판문점은 실체를 덮음으로써 평화가 유지된다는 류의 대사가 나온다. 이제는 잿빛 안개를 걷어 내고, 합의 사항을 견실히 이행함으로써 한반도의 평화 하면, 문재인과 트럼프와 김정은을 명토 박게 되기를 소망한다.


추기 : 한반도 평화 분위기에서 곧장 통일을 낚는 것은 성급하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평화 체제가 유지된다면 통일이 되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본다. 기회가 될 때 이에 관해서 이야기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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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영화가 만들어질 당시(1999년) 판문점 관련 보직으로 군생활을 하고 있었죠. 가끔 판문점에 갔었답니다.
경비대대가 판문점경비를 위해 투입될 때는 권총+실탄을 소지했습니다. 공동경비구역에서 군인이 완장을 차고 있으면 무장을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병헌이 근무하던 초소는 사람이 근무를 서지 않습니다. 너무 가깝고 위험해서 정말 자동화 무기들이 초소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영화의 이야기는 일어날 수 없는 100% 허구입니다.

그때 판문점에 근무하는 군인들 비슷하게 군대와서 긴장감이 높은 곳에서 근무를하니 불쌍하고 안쓰럽고....라고 느꼈었는데...29박30일짜리 휴가가 있다는 말을 듣고는 1%도 안쓰럽지 않더군요. 그런 휴가를 무려 1년에 1번씩... 같은 육군인데 어찌나 억울하던지요. ^^;

판문점에서 경계 근무할 때 실탄이 장착된 화기를 소지하는 것은 상식이지만, 영화에서는 병사가 화기를 상시적으로 가지고 있길래 해 본 말이었습니다. 이병헌이 근무하던 곳도 영화상으론 초소(허구라고 하셨지만)이니 상시적이라고는 말하지 못하겠군요. 휴가가 엄청 길군요. ㅎㅎ

아주 잼있게 본 영화중에 하나죠.
ㅎㅎ 그 옜날에... 저정도.. 스토리에..
캬!! 생각나네요.

그 옛날에, 저 정도 스토리를. ㅎ 맞는 말씀이에요. 간밤에 다시 보는데 볼 만하더라고요. 처음부터는 못 봤지만 끝까지 보게 됐습니다. 글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ㅎㅎ

영화는 허구의 산물이니까요. 대부분은 실제와 다르다 보셔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트럼프 입장에서보면, 이번 행보는 잃을 것이 없는 싸움이 아닐까 합니다. 세계를 흔들어서 북한을 압박했고, 회담장으로 끌어내기 까지 했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어깨에 힘줄 만한 상황이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회담을 보면서 오히려 젊은 김정은이 중국, 한국을 오가며 보인 노련한 모습에 승자는 김정은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통일은 10년안에는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북한이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나라가 되어도 통일은 멀어질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네, 영화는 허구의 지반 위에 짓는 집과 같지요. travelwalker님 말씀대로 저도 김정은의 과감함에 좀 놀랐습니다. 하지만 북한이 개혁 개방 되면 그의 자리도 위협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국면에서도 자기 권력을 공고히 하려면 신묘한 능력이 필요하겠지요.
네, 통일은 당장 이뤄질 수 없겠죠. 그리고 억지로 하는 것보단 안 하는 게 낫나고 저는 봐요. 평화적 분위기에서 서로 교류할 수만 있다면요. 민족 개념이나, 섬나라 콤플렉스 탈피를 주창하며 통일의 긍정 요소가 부각되기도 하지만 수많은 부정 요소도 그에 못지않게 수두룩하다고 저는 보니까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사안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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