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와의 대화

in #kr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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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수는 이미 철학을 놓았다고 했다. 나는 철학을 배우러 왔고, 대학을 배움터로 삼는다. 배움은 나에게 있어서 성장이고, 내 존재의 의미이기도 하다. 키가 크고 머리가 자라듯이 정신적으로도 자라야 하는 게 자연의 섭리 아니겠는가. 어릴 적을 계속 부둥켜안고 있으면, 도태되기 마련이다.



 교수는, 자신은 하나님의 안에 있다고 했다. 그래서 행복하다고 했고, 그걸 깨달은 순간 자신은 학문적 탐구를 그만두었다고 했다. 그때가 20대 초반의 일이었다고 말했다. 무교병의 삶을 살기 위해 하나님에 대한 도전을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그의 종교관에서는 인문학은 쓸모가 없다. 그에게 있어서, 성장은 하나님에 대한 도전이고 그것은 인간 본연의 위치에서 벗어나려는 행동이라 규정하며 결국 그렇게 행동하면 안 된다고 했다.



 그렇다면, 철학을 배우러 온 나는 이 교수에게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내 목적과는 상반된, 인문학이 바탕이 되는 내 사상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성경의 말씀은 얻어갈 수 있을 것이다. 공부하는 목적으로는 괜찮을 것 같다. 그렇지만 다음 대화의 장에 가는 것은 깊이 고민해봐야 한다. 거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있는 곳이 아니라 기독교 신자들의 자리이니까 말이다.



 의문이 드는 게 한 두 가지가 아니다. 20대 때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만나 이미 행복함을 느꼈다면 그는 왜 교수가 되길 택했는가? 학문적 탐구는 추구하지 않으며, 성장은 곧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라고 보는 사람이 어떻게 진리를 탐구하는 철학을 공부하며 연구할 수 있었을까? 왜? 논문은 또 어떻단 말인가? 학회에는 어떻게 나가, 철학적인 사유를 바탕으로 한 발언을 할 수 있을까? 그는 어떻게 지금 여기에 있을까? 왜? 더 물어보고 싶지만, 내가 교수로서의 이 사람에게서 더 얻을 수 있는 건 없기에 하지 않으려고. 그래도 사적인 자리에서의 물음은 가능하다면 지속하고 싶다.


 철학과 수업을 듣는 학생은 온당 철학적인 지식을 두루 갖춘 철학과 교수에게 질문하며, 반문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교수는 나의 권리를 침해했다. 나는 내가 듣는 과목이 무엇인지도, 이 교수가 철학자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교훈은 얻었다. 실수로 기대한 것에 대해, 기대하지 말자는 다짐. 철학과 교수이기 전에 그도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교수이기 전의 그가 친절하다는 것. 나에겐 이 부분이 중요한데, 난 직책에서 나오는 사람의 특성과 사람 대 사람에서 나오는 특성은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분명 그에게서, 사람으로서 얻은 것들은 있다. 여전히 실패지만, 얻었다.


오늘은 기숙사 화장실 청소를 했다. 어제 산 락스를 바닥에 뿌려 노란색을 띠는 촘촘한 무언가들을 흰색으로 만들었다. 락스 냄새에 인상이 찌푸려지고 닦으면 닦을수록 뿜어져 나오는 때라는 존재 때문에 기분은 불쾌했지만, 내 행위에 의미가 있었다. 오늘도 몇 가지의 성취를 얻고 간다. 잘 있어, 오늘아. 나야. 내일 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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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인생이란
머리와 심장의, 이성과 본성의, 생각과 언행의,
그들 끼리의 영원한 줄다리기 같은 느낌이예요.

오.. 저랑은 다른 생각이시군요. 글을 보고 동감했습니다.

Hi Passing by And Upvoted you :) !
:
“A good lover? One percent talent and ninety nine percent hard work.” ====> Ljupka Cvetanova

fur2002ks님이 sirin418님을 멘션하셨습니당. 아래 링크를 누르시면 연결되용~ ^^
fur2002ks님의 딱히 꿈이 있는건 아니고@kyunga~ (뻘짓 진행사항)

...m energizer000 newiz junny onehand haedale newbijohn neojew sirin418seunglimdaddy illluck ahngo13 crowsaint kimsungtee nch1234 j...

20대 때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만나 이미 행복함을 느꼈다면 그는 왜 교수가 되길 택했는가? 학문적 탐구는 추구하지 않으며, 성장은 곧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라고 보는 사람이 어떻게 진리를 탐구하는 철학을 공부하며 연구할 수 있었을까? 왜? 논문은 또 어떻단 말인가? 학회에는 어떻게 나가, 철학적인 사유를 바탕으로 한 발언을 할 수 있을까?

저도 당연히 드는 의문입니다. 다만 저라도, 옆집 아저씨면 더 쉽게 물어봤을 텐데, 학생대 교수라면 묻기 어려웠을 것 같아요.

쉽지는 않은데, 그래도 기회가 된다면 꼭 여쭤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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