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봄비가 내렸다, 그리고

in #kr6 years ago (edited)


사무실에도 내 마음에도 우산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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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퍼 엘레아슨, 무지개 집합, 2016, 리움미술관





원래부터 봄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솔직히 말해 피곤하다, 봄은.

설레는 맘으로 벚꽃 구경이라도 갈라치면 비가 오신다. 따뜻한 날씨라 생각해서 한껏 봄 기분을 내고 외출하면 메케한 황사 바람이 몰아친다. 일 년에 한두 번 걸리는 감기는 늘 변덕스러운 봄 날씨 덕분이었다. 신비롭지만 불친절한 계절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었지만, 나로서는 봄에 대한 최대한의 예우를 갖춘 것이었다. 봄이 미운 것이지 봄을 좋아하는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니까.

학창 시절부터 3월 초에 시작하는 학기도 그렇고 봄은 모든 걸 시작하는 계절이라고는 하는데 (내 기준으로는) 너무 추워 도통 봄이란 생각이 들지 않다가 이제 봄인가? 하면 바로 여름이 찾아온다. 어쩌자고 날씨하고 까지 밀당을 해야하나하며 짜증이 밀려온다. 어쩌면 나도, 봄을 타는 것일지 모르겠다.

일기를 쓰는 것이 쉬운 일도 아닐뿐더러, 일상 글을 쓰면 코믹하거나 심각하게 변질되는 나의 글쓰기 수준을 그대로 드러내야 하는 것이 불편하여 스팀잇에 일상 글을 거의 올리지 않았다. (나의 일방적인 글쓰기 멘토) 김작가님이 지난주에 올리신 공모전 글을 보면서 잘 준비했다가 1차로 신청하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았지만 생각지도 못한 후원자 명단에 올라 있는데다 대체 무슨 내용의 일기를 쓴단 말인가, 게다가 2000자 이내라니... 글을 길게 쓰는 병이 있는 나로서는 시작하다 멈춰야 되겠군, 이렇게 한탄하고 말았었다.

그래도 막상 오늘 새벽 공지를 대하니 뭔가 쓰고 싶었고 너무 피곤해서인지 잠도 오지 않아, 최근 힘들었던 일을 쓰자며 위의 문구로 시작한 봄날의 “짜증 일기”는 새벽 4시가 다 되어 대충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구구절절 쓴 글을 검토해 보니 역시 글자 제한을 맞추기는 불가능해 보였다. 어딘가를 잘라내면 읽는 분은 내용을 파악할 수 없다. 아니, 내가 길이를 줄이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시리즈 일기도 된다는 공지는 없었잖아?)

와중에 새벽 4시에 카톡이 울렸다. 심각한 일이다. 나름 애써 작성한 “짜증일기”의 내용은 바뀌어야 했고, 글쓰기 버튼을 아직 누르지 못한 사정이 다행이란 생각까지 들었다. 그리고 아침에 다시 읽어 보니 그렇게까지 쓸 이유도 없었는데, 어제는 짜증이란 감정에 갇혀 비밀 일기장 구석에나 끄적일 감정의 배설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평소에 글을 쓰며 불필요한 설명을 많이 덧붙인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병을 고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스팀잇을 시작할 당시만 해도 조금 더 쉬려고 했던 나의 결심은 온데간데없이, 3월 말에 나는 일을 벌이고 말았다. 요망한 봄기운에 홀려 시작한 거라고 원망하고 싶었다. 사무실로 사용할 장소를 하나 계약했고, 한창 내부 공사 중에 장맛비 같은 봄비가 내렸고, 3일 내내 사방에서 물이 샌다. 천정은 비가 내리는 수준이다.

상식적으로 당연히 임대인이 수리를 해 줘야 하는데, 임대인 측에서는 우리가 철거를 하면서 문제를 일으켰다는 입장이 너무나 확고하다. 이전까지는 물이 한 두 방울 떨어지는 곳이 있었고 그것은 고쳐주려 했는데 이 정도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나 때문이 아니라고 확신하지만 워낙 오래된 건물이다 보니 이것을 판별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뿐더러 현재 상황을 고려하면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 결국 법정 까지 갈 생각이 아니라면 당사자 간에 해결해야만 하는 상황인 것이다.

어젯밤까지 명확한 입장을 정하지 않고 내 탓만 하며 짜증을 유발시켰던 임대인은, 드디어 주사위를 던졌다. 적지 않은 특수방수 비용의 2/3를 부담 할 테니 나머지를 우리가 부담하는 것으로 마무리했으면 한다고 한다. 이것이 새벽 4시에 받은 카톡의 내용이다.

임대인 분도 아마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계셨던 모양이다. 내용은 진솔하고 합리적이었다. 나는 거절하고 버티기를 할 수도 있겠지만 언젠가는 선택을 해야겠지. 이렇게 된 이상 어여쁜 봄을 탓하는 짓은 그만두고 방수는 하늘(?)에 맡긴 채 서둘러 마무리하고 일을 시작해야겠다는 결심을 해 본다.

몇 백 만원 손해 본다고 해서 인생이 달라지기야 하겠냐며 평소와 달리 배포 큰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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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증(?)나실 땐 저를 찾아오십시오 :D 몸개그로 웃겨드리겠습니다. (응?)

안그래도 마아냐님 일기 올리셨다고 해서 웃을준비 하고 갔는데 하나도 안 웃기고 글을 넘 잘쓰셔서 실망.. ㅋㅋ 아니 깜놀하고 왔습니다!! 그러니 저를 위해 재미난 일기를 하나 더 올려주세요!! (응??)

참 잘했어요~!!
2053자 맞추셨네요 ㅎㅎㅎ

무슨일을 꾸미시고 계실까? ㅋㅋㅋ

헉.. 나름 돌려서 봤는데 아마 그림에 들어간 캡션 때문인가 봐요. 줄여도 줄여도 줄지 않는 제 글 ㅠㅠ 글자수 안맞을까봐 안그래도 아직 김작가님 글에 댓글도 못달았어요. 이따 또 수정해야겠네요 ㅋㅋ
별일은 아니에요 족장님, 사무실이 따로 없으니 불편한 것들이 좀 많아서 일을 저지르고는 이렇게 되고 보니 온갖 미워할 핑계거리를 찾고 있는 겁니다 ㅎㅎㅎ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군요.
이 선택이 모든 문제의 마지막의 선택이길 간절히 바래봅니다.
새로운 시작부터 아주 어렵게 시작되었으니 이후의 어떤 역경도 이겨낼수??????
차마 말을 마무리를 못하겠군요.

힘내세요.!!! 화이팅.

저도 사실 처음이자 마지막이길 기도하는 마음으로 (김작가님의 공모를 핑계삼아) 난데없는 일기를 써 보았습니다 ㅎㅎㅎ
그나저나 오늘은 어찌 이렇게 대낮에 시간이 나셨나요!
저는 아무도 안계신 시간에 조용히 올리려고 일부러 저장해뒀다 올린건데 예상이 빗나갔네요 ㅋㅋ

드디어 런칭도 완료되고 안내메일들도 마무리되고.ㅋㅋ 이제 놀면됩니다.ㅋㅋ
하하.. 불금이잖아요. 싱키님 일기도 상당히 좋은걸요.^^

와 축하드려요!! 저는 이제 시작인데 +_+
불금에 출장갔다 저녁식사 하러가는 길이에요.
일도 잘 마무리 되신 듯 하니 불금 즐기시길요!!

요일을 즐기도록 하겠습니다.
도 즐기고 있습니다.
싱키님도 불하세요.!!

ㅋㅋㅋ금님의 불금은 더 뜨거울것 같네요 ㅋㅋㅋ

새로 일을 시작하시는군요!!! 시작은 난관이었지만, 끝은 창대하셨으면!!! 이런 일상글, 일기 너무 잘 쓰시는걸요!!! 1등! ㅎㅎㅎㅎ

ㅎㅎㅎ 에빵님! 1등이라뇨 ㅠㅠ 아직 다른 일기글들 하나도 읽어보지 못했지만 얼마나 잘 쓰는 분들이 많으실텐데 말이에요. 창피하고 글자수도 넘을거 같아 아직 링크도 못남겼어요ㅋ
저도 처음에 고생해도 나중에 대박나겠지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가져봅니다. 감사해요 흑흑

돈은 금액의 크기와 관계없이 소중한 것인데 이래저래 고민이 많겠어요. 몇 백만원의 생돈이 오락가락하면... 마음 고생이 심하지요. 저는 임대인과 임차인과의 하자보수 책임 문제는 아니었지만... 한 순간에 수 백만원이 오가는 결정의 순간에서 저 또한... 비슷한 심정으로 결정을 내린 적이 있습니다.

돈은 수백만원 잃었지만... 마음을 편하게 먹으니 나름 편해지기는 하더라고요. 생각하면 할수록 열 받으니 자기 합리화일 수도 있습니다. 서로가 최대한 수용할 수 있는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고 이미 결정내린 것에 대한 자기 합리화를 시키니 걱정도 덜어지고 마음의 평화가 오더라고요.

그냥 제 경험입니다. 그냥 제 경험을 들려드리고 싶었답니다. ^^;

이렇게 된 이상 이후의 일은 하늘(?)에 맡기고

하늘 뒤에 물음표는 이 하늘이 그 하늘인가 저도 오락가락 하는 마음으로 붙여 보았습니다 ㅎㅎ

합리화 일수도 있겠지만 제 맘이 편한게 최우선인것 같아서요. 봄들님이 올리셨던 "돈돈돈" 일기도 생각나고 그러네요 ^^

경험 나눠주셔 감사해요. 마음을 정하고 나니 한결 홀가분하고 짜증도 안나서 좋은것 같아요!

이렇게 된 이상 이후의 일은 하늘(?)에 맡기고

솔직히 말해 정말 저는 이 부분 당연히 캐치했습니다. 제 얘기(?)인데 모를 리가 없지요. ㅎㅎㅎ 아무튼 씽키님의 마음이 편해서 다행입니다. 정말로~ 저도 "돈돈돈" 일기 읽고 공감이 참 되더라고요. ㅎㅎㅎ 돈에 관한 이야기는 정말 남 얘기가 아니니깐요. 그래도 짧으면 짧고 길면 긴 제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적당한 선에서의 돈은 적당히 기회비용으로 소비해도 되겠더라고요. 돈 없이 힘들면 힘든데로 또 살아지니깐요. 물론 해외에서 생활비를 몽땅 잃어버려 밥도 못먹고 쫄쫄 굶은 적도 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 본 녀석이 뭘 믿고 저에게 큰 돈을 빌려줬는지 모르지만요. 그 녀석 대문에 제 경험은 다채로워진 것 같아요. 기회가 되면 언젠가 만나고 싶은데 결혼하고 잘 살고 있다는 몇 차례의 연락 이후로 연락도 끊겨 만날 수도 없네요. ^^

와 고생한 경험이 있으셨군요. 해외에서 정말 당황하셨겠어요.
그래도 좋은 분을 만나 잘 극복하셨네요^^
돈 얘기로 초연한 분들도 계신데 진짜 초연한건지 솔직하지 못한건지 사실 잘 모르겠더라고요. ㅋㅋ 뭐 아무튼 초연은 아니지만 초월은 좀 해볼까 하는데 쉽지는 않을것 같아요^^ 소중한 경험 나눠주셔 저도 기억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저 같은 경우는 초연하려고 노력합니다. 항상. ^^ 물론 가끔 정말 초연해질 때가 있는데 그건 정말 극소수의 경우이고요. 기억을 나누는거야 뭐~ ㅎㅎㅎ 가족과 함께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제주에서 행복한 시간 보내고 오시길 바랍니다.
배작가님 저도 뵙고 싶은 분이에요 :D

뵙고 싶으면... 익명에서 나오셔야지요. 저도 행사에 혼자 조용히 참가하고 다녀올 예정이었는데 팟캐스트 애로사항 청취로 익명에서 나올 수 밖에 없었답니다. 잠깐 뵈었는데 참으로 멋지고 아름다운 분이십니다. ^^

뭐 언젠간 저도 자연스럽게 나가게 되겠지요 ^^ 셀레님 댓글에서 뵈었는데 새벽에 일어나 성산일출봉 다녀오셨다고 ㅋㅋ 제주라니, 아 부럽네요! :D

씽키님.. 고뇌의 흔적이 보이네요ㅠ
좋은 일이 많이 많이 생기려고 그러나봐요
새로이 시작하시는 일이 아주 잘 되시길 응원합니다!
씽키님 배포 짱 멋져요^-^♡

에구 좋게 봐 주셔 감사해요.
저도 늘 배포를 못부리는데 제 마음 편하려고 결심해 봤네요.
막상 일기 써놓고 이제 겨우 소심하게 지원하고 왔어여 ㅋㅋㅋㅋ

전인권 형아의 걱정말아요 그대..를 틀어 드릴게요..
보는 사람(저말입니다)은 별루 안짜증나요... 오히려 재밌어요..^^
근데 잠은 주로 안주무시나 봅니다..

유피님!! 덕분에 노래를 불러보고 있네요! 감사합니다^-^/
(근데 아마 오늘 새벽에 썼던 일기 보셨음 짜증나셨을지도 몰라요)
저도 얼른 다른분들 일기 읽어보고 싶네요.

출장 갔다가 들어가는 차 안에서 이제야 겨우 공모하고(고자질 해 주신 @hsuhouse0907님과 유피님 덕분에요 ㅋㅋ) 댓글 달고 있네요. 잠을 좋아하는데 어젯밤엔 걱정이 되서 잠을 못잤더니 차 안에서 계속 졸고 있어요 ㅋㅋㅋ

새로운 사무실에서 즐거운 일 많이 맡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제이미님! :D

다행히도 일기를 마무리 지으셨네요 ^-^ ㅎㅎㅎ
봄에 대한 짜증으로 시작해서 임대인에 대한 짜증으로 끝나는
짜증일기 제 나름대로는 재미있게 잘봤습니다 ^-^
모든 일 다 잘 풀리시길 바라고,
또 준비하시는 일도 꼭 다 잘되시길 바랄게요 씽키님 ^-^ ㅎㅎㅎ

뉴위즈님도 새로운 일 준비하신다고 얼마전에 말씀들었던것 같은데 아닌가요?
같이 잘 해보아요^^ 감사합니다! ㅎㅎ

임대인 분의 마음과 결단이 진솔하고 합리적이게 느껴졌으면, 결국 팅키님도 그 제안을 받아들이실 것 같네요 :)

팅키님의 새로운 '일' 이 창대한 업적이 되길 바랍니다 !

임대인 측에서 전적으로 책임을 져 주었다면 더 고마웠겠지만 여러가지 정황을 생각했을때 무조건 우기는게 아니었어서 제가 버티기 하며 우긴다면 저만 우스워질 것 같더라고요 ㅎㅎㅎ
뭐 업적이라니 민망해요 셀레님. 그냥 소소한 저의 즐거운 일터가 되길 희망하고 있어요. 응원 감사드려요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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