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 단타 좋은 날

in #kr6 years ago (edited)

폭염이 올 듯하더니 장마철이 되고 태풍 쁘라삐룬이 지나가더니 태풍 마리아가 오며 비만 추적추적 내리었다.

이날이야말로 갓비트 안에서 단타꾼 노릇을 하는 장첨지에게는 오래간만에도 닥친 단타 좋은 날이었다. 대한민국에 비가 오면 8할의 확률로 떡락한다는 믿음으로 그는 기우제를 지내곤 하였다. 떨어질때 바닥을 잡는것이 단타에 더 좋기 때문이었다. 예금과 적금을 모두 깨고 몰아쓴 장첨지는 대출까지 끌어다 써 코인판에 오버ㅡ시드로 끌어쓰는 중이었다.

첫 단타에 3퍼, 둘째 단타에 5퍼, 암울떡락장에 그리 흔치 않은 일이였다. 그야말로 재수가 옴붙어서 근 열흘 동안 익절 구경도 못한 장첨지는 수익률이 마이너스를 넘어설때 거의 눈물을 흘릴 만큼 기뻤었다. 더구나 이날 이때에 단타로 번 3만원이라는 돈이 그에게 얼마나 유용한지 몰랐다. 컬컬한 목에 이슬이 한 잔 적실 수 있거니와 그보다도 밀린 수도비를 낼수 있음이다.

그의 세금이 밀린지는 달포가 넘었다. 수익이 없으니 그럴수밖에 없었다. 거래소상에서 코인을 늘리거나 금액을 늘린다 해도 이걸로 더벌어야 된다는 욕심이 앞서 또 코인을 산뒤 물리기 일수였다. 구태여 쓰려면 못 쓸 바도 아니로되 그는 세금이란 놈에게 밀리지 않고 돈을 내면 재미를 붙여서 자꾸 비싸진다는 자기의 신조(信條)에 어디까지 충실하였다.

그때도 장첨지가 오래간만에 돈을 얻어서 체납된 통신비 반과 전기비 반을 내었더니 장첨지의 말에 의지하면 오라질 한전이 반을 더 내야 전기가 다시 들어온다고하야 열화와 같이 성을 내며,

“에이, 오라질 한전! 전기는 단타치려면 꼭 써야하는것인데, 누진세니 뭐니 삥뜯듯이 돈을 뜯어가면 어떡해! ”하고 애꿏은 한전 직원의 뺨을 한 번 후려갈겼다.

상해죄로 고소를 당할뻔했던 장첨지는 결국 경찰서를 안가기로 합의한채 전기비를 전부 내고 왔다.

“이런 오라질 전기비! 통신비는 반만 내도 전화되던데!”라고, 야단을 쳐보았건만, 못 내는 마음이 시원치는 않았다.

텔레그램에 들어갔더니 무료 픽방에서 언능 바닥을 잡으라고 한다. 저런 픽을 들었다가 낭패를 본적이 한두번이 아니여서 고민이 되었다. 그때 카톡 오픈채팅에서 누군가 "스팀 떡상각이다!" 를 외쳤다. 연달아 친해보이는 고인물 단타꾼께서도 "스팀 심상정인듯" 이라고 얘기했다. 그걸 지켜보는 500명의 사람들은 아무말이 없었다. 아마도 '또 선동하네..' 정도로 생각했을것이다. 그러나 장첨지는 거기에 솔깃했다. 한때 만원이 넘어갔던 스팀코인이 1500원이지 않은가, 못해도 3천원은 한다던 스팀이.. 이렇게 바겐세일 중이지 않은가?

장첨지는 고민하다 어차피 아침에 단타를 2연속 성공한 기념으로 또 스팀을 사버렸다. 그의 급하고 욕심많은 성격상 분할매수같은건 없었다. 그는 과감하게 1500짜리 스팀에 천만원을 풀매수했다. 그러자마자 스팀은 반등을 시작했다. 때마침 갓썸의 입/출금이 막히면서 고립된 거래소에서 대거 펌핑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스팀은 그 가운데 가장 빛났다. 그저 갓비트에 있음이 아쉽게 느껴졌으나, 지난 1년간 갓썸에게 당한걸 생각하면 그래도 갓썸은 아닌것이었다.

수익률이 3%를 넘어가자 장첨지는 잠깐 주저하였다. 그는 이 우중에 우장도 없이 그 리스크를 감당하기가 싫었음일까? 처음 단타, 둘째 단타로 그만 만족하였음일까? 아니다, 결코 아니다. 이상하게도 꼬리를 맞물고 덤비는 이 행운 앞에 조금 겁이 났음이다.

그는 이내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오픈채팅에 자랑질을 해댔다. "오 스팀사자마자 3퍼 먹음ㅋ 핵꿀ㅋ 더 냅둬야지~" 하자 다른 이들이 슬금슬금 그에게 축하와 부러움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이내 채팅방에서 꼰대짓을 좋아하는 존버라는 사람이 "3퍼 먹고 내리세요. 지금 너무 과열됬습니다" 하고 시기어린 소리를 했다. 장첨지는 내심 불안함이 들긴했으나 이왕에 탄거 10퍼는 먹자고 결심했다. 오늘은 단타치기 좋은 날이다하고!

펌핑은 계속 이어져 금새 1700원이 되고 수익률이 10%가 되자 장첨지는 또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오픈채팅에서는 지금 사도 20%는 먹을수 있을것 같다는 허세글들이 이어졌다. 더 놔둘까도 했으나 코인판의 장난질에 속은게 한두번이 아닌지라 장첨지는 이내 익절하기로 결심했다. 이제 팔아야겠다하고 수량을 100% 최대로 찍은뒤 주문 버튼을 딸깍! 하는데 아이고.. 오픈채팅을 보느라 그만, 매도가 아니라 매수를 눌러버렸다. 최후의 비상자금으로 남겨둔 300만원이 매수체결되어 버렸다.

장첨지는 아찔하며 놀랐으나, 수수료를 생각하면 바로 되팔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속타는 마음으로 양손으로 기도를 하며 모니터를 뚫어라 쳐다봤다. 밀린 세금들을 내야한다. 또 다시 밀린 주민세와 통신비와 전기비, 그리고 수도세까지! 그리고 뺨을 날린 한전직원에게 가서 큰소리치며 합의금은 아니지만 치료비나 하라고 한 십만원 던져주어야 한다. 스팀은 횡보상태에 들어섰고 장첨지는 불안한 마음을 감출수가 없었다.

이내 냉장고에 있는 참이슬 한병을 꺼내들었다. 그는 이슬을 안주도 없이 벌컥벌컥 목으로 넘기며, 혼자 중얼중얼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더도말고 2천원까지만 갔으면 좋겠다며 1900원에 풀매도를 걸어놓았다. 그리고 온갖 상상을 하며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다시 오르기 시작하는걸보고 침을 삼켰다.

스팀이 순식간에 1900원을 뚫었다. 장첨지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130만원 정도 몇시간만에 이득을 보았다. 그는 불행에 다닥치기 전 시간을 얼마쯤이라도 늘리려고 버르적거렸다. 기적(奇蹟)에 가까운 벌이를 하였다는 기쁨을 할 수 있으면 오래 지니고 싶었다.

기쁨을 만끽하며 담배 한개피를 물고 집밖으로 나간다. 마침 동네친구이자 단타꾼인 치삼이가 술을 들고 지나간다. 그의 우글우글 살찐 얼굴에 주홍이 돋는 듯, 온 턱과 뺨을 시커멓게 구레나룻이 덮였거늘, 노르탱탱한 얼굴이 바짝 말라서 여기저기 고랑이 패고, 수염도 있대야 턱밑에만 마치 솔잎 송이를 거꾸로 붙여놓은 듯한 장첨지의 풍채하고는 기이한 대상을 짓고 있었다.

“여보게 장 첨지, 자네 단타치고 현자타임 온 모양일세그려. 돈 많이 벌었을 테니 한 잔 빨리게.”

뚱뚱보는 말라깽이를 보든 맡에 부르짖었다. 그 목소리는 몸짓과 딴판으로 연하고 싹싹하였다. 장첨지는 이 친구를 만난 게 어떻게 반가운지 몰랐다.

“자네는 벌써 만취한 모양일세그려. 자네도 오늘 재미가 좋아보이.”하고, 장첨지는 얼굴을 펴서 웃었다.

“압다, 재미 안 좋다고 술 못 먹을 낸가. 갓썸 펌핑으로 한타 쳤지 뭐! 오늘 우리집에 안주가 쥑인다네. 어서 우리집가서 한잔 때리게.”

5분정도 걸어 도착한 치삼의 집은 훈훈하고 뜨뜻하였다. 추어탕을 끓이는 솥뚜껑을 열 적마다 뭉게뭉게 떠오르는 흰 김, 석쇠에서 뻐지짓뻐지짓 구워지는 너비아니 구이며 제육이며 간이며 콩팥이며 북어며 빈대떡……이 너저분하게 늘어놓인 안주 탁자에 장첨지는 갑자기 속이 쓰려서 견딜 수 없었다. 마음대로 할 양이면 거기 있는 모든 먹음 먹이를 모조리 깡그리 집어삼켜도 시원치 않았다. 하되 배고픈 이는 위선 분량 많은 빈대떡 두 개를 쪼이기도 하고 추어탕을 한 그릇 청하였다.

주린 창자는 음식맛을 보더니 더욱더욱 비어지며 자꾸자꾸 들이라들이라 하였다. 순식간에 두부와 미꾸리 든 국 한 그릇을 그냥 물같이 들이키고 말았다. 세째 그릇을 받아들었을 제 데우던 막걸이 곱배기 두 잔이 더웠다. 치삼이와 같이 마시자 원원히 비었던 속이라 찌르르하고 창자에 퍼지며 얼굴이 화끈하였다. 눌러 곱배기 한 잔을 또 마셨다.

장첨지의 눈은 벌써 개개 풀리기 시작하였다. 석쇠에 얹힌 떡 두 개를 숭덩숭덩 썰어서 볼을 불룩거리며 또 곱배기 두 잔을 부어라 하였다.

치삼은 의아한 듯이 장첨지를 보며, “여보게 또 붓다니, 벌써 우리가 한병씩 먹었네.”라고 주의시켰다.

“아따 이놈아, 술한방 몇천원 한다고 그리 끔찍하냐. 오늘 내가 돈을 막 벌었어. 참 오늘 운수가 좋았느니.”

“그래 얼마를 벌었단 말인가?”

“130만원을 벌었어, 130만원을! 이런 젠장맞을 술을 왜 안부어…… 괜찮다 괜찮다, 막 먹어도 상관이 없어. 오늘 돈 산더미같이 벌었는데.”

“어, 이 사람 취했군, 그만두세.”

“이놈아, 이걸 먹고 취할 내냐, 어서 더 먹어.”하고는 치삼의 귀를 잡아채며 취한 이는 부르짖었다. 그리고 술을 붓는 치삼에게로 달려들며, “이놈, 오라질 놈, 왜 술을 붓지 않어.”라고 야단을 쳤다. 주정꾼이 눈치를 알아보고 화를 버럭내며, “에미를 붙을 이 오라질 놈들 같으니, 이놈 내가 돈이 없을 줄 알고.”하자마자 허리춤을 훔칫훔칫 하더니 만원짜리 세장을 꺼내어 치삼 앞에 펄쩍 집어던졌다.

“여보게왜 돈을 막 끼얹나.” 이런 말을 하며 치삼은 일변 돈을 줍는다. 장 첨지는 취한 중에도 돈의 거처를 살피는 듯이 눈을 크게 떠서 땅을 내려다보다가 불시에 제 하는 짓이 너무 더럽다는 듯이 고개를 소스라치자 더욱 성을 내며, “봐라 봐! 이 더러운 놈들아, 내가 돈이 없나, 다리뼉다구를 꺾어놓을 놈들 같으니.”하고 치삼의 주워주는 돈을 받아, “이 원수엣 돈! 이 육시를 할 돈!”하면서, 풀매질을 친다. 벽에 맞아 떨어진 돈은 다시 술 끓이는 양푼에 떨어지며 정당한 매를 맞는다는 듯이 쨍하고 울었다.

장첨지는 20시간 넘게 일어나있는데 술까지 취한지라 그만 그자리에서 누워버렸다. 친구인 치삼도 꽤나 많이 먹은듯 그 반대편에 누웠다.

정신을 차리고보니 치삼은 아직도 자고 있고, 오후 2시가 넘었다. 새벽에 술에 취해 뿌려댄 만원짜리를 슬그머니 주운 장첨지는 익절한 생각에 즐거워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1900원을 넘겼으니 이제 돈을 인출해도 된다. 그런데 갓비트에 로그인한 장첨지의 눈이 휘둥그레 진다. “아니 뭐야?? 왜 안팔렸어?” 갓비트의 지갑관리에 들어갔는데 구매한 스팀이 그대로 있다. 당황한 장첨지는 허겁지겁 매도확인창을 본다. 1900원에 매도를 걸어놨다. 차트가 분명히 1900원을 뚫은것 같았는데 확인해보니 1890원까지 갔었다. 그리고 펌핑의 휴유증으로 스팀은 1300원까지 떨어져있다.

장첨지는 실성한듯 모니터를 흔들며 “스팀아, 반등을 해, 반등을! 스캠이었어? 이 오라질 놈!”

“…”

“으응, 이것 봐, 아무 말이 없네.”

“…”

“스팀아, 죽었단 말이냐, 왜 말이 없어.”

“…”

“으응. 또 대답이 없네, 정말 죽었나버이.”

이러면서 차트를 되짚어보더니, “2천원! 2천원! 왜 고작 2천원 못가고 죽어부느냐?”하는 말 끝엔 목이 메었다. 그러자 산 사람의 눈에서 떨어진 닭의 똥 같은 눈물이 죽은 차트의 컴퓨터 키보드를 어룽어룽 적시었다. 문득 장첨지는 미칠 듯이 제 얼굴을 모니터에 비비대며 중얼거렸다.

“펌핑이 오졌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왜 먹지를 못하니...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

--- 퍼블릭 도메인 '운수좋은날-현진건' 의 인용 및 패러디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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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씨...내 얘기하는 줄...ㅠ.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반갑습니다 흑우형제님

으아.. 김첨지와 함께 눈물흘리고 갑니다.

님의 아이디를 보니 DGB가 생각나서 눈물이 더 나는것 같습니다 흑흑

왜 안팔렸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꺌꺌꺆랴꺄꺌ㅋㅋ

어우 약내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으어어 취하빈다ㅏ

이런 시부엉 안팔렸어!ㅠ

부엉부엉 시부엉!

안 팔렸어...흐어엉.ㅠㅜ

흐어어엉

항상 50원 차이더라구요. ㅠㅠ

진짜 교묘하겤ㅋㅋㅋ 걸어놓은 금액의 한끗차이로 안되는 경우가 참 많죠.. 이건 트루먼쇼일꺼야 분명히...

ㅠㅠㅠㅠ 눙물이

눈물이 차올라서 고갤들어~~~

'운수좋은 날' 중3때 읽은 그 느낌 그 감동(?) 그대로군요 ㅋㅋ

ㅎㅎㅎㅎㅎ 감ㅡ동!

와나 명작...

캬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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