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맑은 바람 한 자락 불어온 날

in #steem12 hou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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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맑은 바람 한 자락 불어온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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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는 속담이 떠오르는 하루였다.
동참회 모임에 참석하러 가던 길, 늘 마음 한편을 묵직하게 누르던 숙제가 떠올랐다.
모임 장소 근처에 계신 이기춘 선생님의 기념비였다.


그곳의 제초 작업은 언제부턴가 늘 내 몫이었다.
일 년에 서너 번은 풀을 베어내야 단정함이 유지되는데, 평소 같으면 벌써 두 번째 작업을 마쳤을 올해는 유독 발걸음이 늦었다.
무성하게 자라났을 풀숲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늘 무거웠는데, 마침내 오늘 그 무거운 짐을 시원하게 내려놓기로 마음먹었다.


볕은 바늘 끝처럼 따가웠고, 공기는 숨이 턱 막힐 만큼 더웠다.
하지만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힐수록 이상하게도 마음은 점점 가벼워졌다.
웅웅거리며 돌아가는 예초기 날에 잘려 나가는 풀줄기처럼, 미뤄둔 일에 대한 부채감도 함께 서걱거리며 잘려 나갔다.
땀에 흠뻑 젖었지만 마음만은 더없이 개운하고 좋았다.


작업을 마치고 근처 개울가로 향했다.
어릴 적 여름만 되면 동무들과 옷을 훌훌 벗어 던지고 멱을 감던 바로 그곳이었다.
수십 년의 세월이 냇물처럼 흘러갔건만, 청량하게 쏟아지는 물줄기는 여전히 거울처럼 맑고 시원했다.


시원한 개울물에 몸을 담그니 몸에 붙은 풀독과 더위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물결이 살결에 닿을 때마다 빛바랜 옛 기억들이 저절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소리 내어 웃던 어린 날의 내 모습이 거울 같은 물 위로 겹쳐 보였다.
목욕을 마치고 준비해간 옷으로 갈아입었다.
깨끗해진 기념비와 변함없이 흐르는 개울물이 마음에 맑은 바람 한 자락을 불어넣어 주었다.
동창회 덕분에 중요한 일 하나를 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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