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결합과 가상현실

in #vr6 years ago (edited)


Jean-Paul Sartre, photo by Henri Cartier-Bresson

콘텐츠를 나누는 기준으로 ‘시간’을 생각한다. 글, 그림, 사진의 경우 고정된 시간을 가진다. 시간보다는 시각에 가깝다. 흘러가는 시간축에서 순간을 잡아내는 형태를 가진다. 이와 달리 음악, 영상의 경우 분절된 시각이 아닌 일정한 시간의 영역을 다룬다.

이를테면 각 콘텐츠 별로 ‘달리기’를 표현한다고 하자. 글, 그림, 사진이 표현하는 ‘달리기’는 순간을 잡아서 보여준다. 때문에 표현되는 순간의 앞뒤는 수용자의 상상을 통해 넓어진다. 하지만 음악, 영상의 경우 지속적인 시간의 영역을 표현 할 수 있다.

글의 경우 분절된 문장이냐, 문장의 연속이냐에 따라 표현이 달라진다. “그는 달린다.”에서 “그는 달리기를 멈추었다”가 붙으면서 시간이 움직인다. 이는 연속된 사진이 모인 영상과 유사한 방식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글은 그 형태에 따라 시간축의 유무가 변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보다 음악, 영상처럼 시간축을 가지는 콘텐츠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시간축의 유무는 콘텐츠의 가치로 연결되지 않는다. 마치 여백과 같이 ‘남겨둠’이 더 큰 의미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가상현실은 어떨까. 가상현실은 기본적으로 음악, 영상 콘텐츠의 결합이다. 더불어 이 결합이라는 사실이 보다 중요해지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기존 콘텐츠의 소비방식은 각 콘텐츠 형태의 독립적인 소비에 가까웠다. 독립적인 소비란, 콘텐츠간의 결합보다 독립된 각 개별 콘텐츠가 메인으로 소비되어짐, 그리고 그 진행을 말한다. 글을 읽으며 음악을 들을 수 있고, 영상 속에서 그림, 사진을 볼 수 있지만, 대부분의 콘텐츠는 이 결합을 콘텐츠의 생성시점부터 염두하고 진행하지 않았다. 그림, 사진의 경우 전시 큐레이션, 혹은 액자를 통한 소비시점 내 상황의 변화를 꾀할수 있지만 그럼에도 메인은 각 콘텐츠를 중심으로 제작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가상현실은 소비, 감상이라는 경험 자체를 제작하는 것에 가깝다. 개별 콘텐츠 중심의 제작에서 콘텐츠를 소비하는 경험 자체를 보다 메인으로 삼게 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가상현실은 그림 콘텐츠를 감상하는 콘텐츠로서 기능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즉, 제작자가 의도하는 공간을 만든 뒤 그곳에서 그림이나 사진을 감상하게 하거나, 음악을 감상하게 할 수 있다. 때문에 가상현실은 기존 콘텐츠의 제작 방식-방향인 콘텐츠 중심의 제작 보다, 기존 콘텐츠가 무엇이 되었건 그것들간의 결합인 총체적인 경험 자체를 제공하는 콘텐츠다.

이는 가상현실이란 단어 그대로 ‘현실’을 만들어내는 콘텐츠이기에 기존의 것과 차이를 가진다. 가상현실은 음악, 영상처럼 상대적으로 넓은 시간 영역을 가지지만 ‘가상의 현실’인 만큼 보다 많은 감각기관을 활용해 콘텐츠를 소비하게 된다. 때문에 콘텐츠 간의 결합이 보다 용이해지며, 이는 자주 시도되어지지 않았던 각 콘텐츠간의 결합을 고려한 콘텐츠 제작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 결합은 수용자의 손에 맡겨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를테면 수용자가 선택한 음악을 들으면서 글, 그림, 사진 콘텐츠를 감상하거나, 글에 들어간 삽화를 통해 수용자의 상상을 유도하는 식이다. 이러한 결합은 콘텐츠 제작자가 부가적으로 명시 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콘텐츠 감상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가상현실 제작자는 그 결합의 상황조건, 감정까지 제작 단계에서 고려해야한다.

때문에 가상현실 콘텐츠는 기존 콘텐츠와는 다른 성격의 콘텐츠로 변화한다. ‘융합’ 개념이 콘텐츠 영역에도 적용 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본질적으로 이는 가상현실이 가진 ‘현실’이라는 속성 때문에 발생한다. 즉, 가상현실을 제작함은 오케스트라의 지휘와 같다. 글, 그림, 사진, 음악, 영상 등 기존 콘텐츠들을 조율함과 동시에 그 결합으로 화음을 만들어내야 한다. 때문에 기존 콘텐츠들의 결합으로 만들 가상현실 콘텐츠는 각각 파편처럼 제작 된 콘텐츠들을 완벽히 끼워맞춰야 한다.

앞서 언급했지만 결합이 언제나 좋은 방향이 될 수는 없다. 삶은 여백이 필요하며, 수용자의 여백들을 통해 각 콘텐츠들은 더욱 성장하기도, 끝없이 넓어지기도 한다. 텍스트가 작가의 손을 떠난 순간부터 그 텍스트의 주인은 독자가 되듯, 콘텐츠는 수용자의 다양성과 결합하면서 수많은 형상을 가진다. 다만 가상현실은 가상현실 제작자의 역량에 따라 ‘좋은 결합’을 만들어 낼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보다 깊이 있는 감상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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