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길을 걷듯 걷는다.

in #zzanlast year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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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길을 걷듯 걸었다./cjsdns

나는 오늘 아침에도 일종의 의무감 같은 것을 짊어지고 걷고 있다. 건강하게 살려면 싫어도 귀찮아도 해 하는 나 자신의 명령에 충실해지고 있는 내가 아침이면 붙들고 늘어지는 그의 속삭임을 떨쳐내고 야박하다는 소리를 들으며 나선다.

골목을 지나 큰길 건너 초등학교 가는 골목을 한참 걸어서 공원으로 향했다.
동네 명물이 될 1979 청춘 역 시계탑을 두어 바퀴 돌며 오늘 하루의 안녕을 기원했다.

그리고 동네 큰 형님을 뵙고 안부를 여쭈고 나면 주문을 외듯 안녕을 기원한다.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보단 말 안 했잖아 이런 소리 들을까 우리 손주 놈 크리스마스에 받고 싶은 선물 열거하듯 내 바람을 이야기했다.

한참 큰 형님 같은 느티나무를 떠나 새로 난 공원길을 질러 걸어 운동장이 아닌 조종천으로 향했다.
낙엽이 뒹구는 길을 걷다 보니 쓸쓸한 모습 천지이나 그래도 물썰매 타는 개구쟁이 오리를 보니 즐거워진다.

생각보다 따듯한 날씨에 오리도 봄날로 아는지 가족 나들이를 한 듯 즐겁게 노는 모습에 춥지 않은 게 다행이지 싶어 그래 더 추워져 물이 얼기 전에 실컷 놀아라며 응원을 했다.

눈을 들어 호명산을 바라보니 신선이나 사는 그런 산으로 변해있다. 오늘따라 신비감까지 두르고 계신 것이 황산보다 못할 게 없어 보인다.

날이 따듯하니 좋다.
뺑뺑이 돌듯 운동장 걷는 것보다 강변을 걸으니 좋다.
이렇게 푹한 날은 강변으로 나와 걷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하니 눈에 벚꽃이 선하다.

이 길이 벚꽃 명소인데 지난봄에 정말 멋졌는데 그 꽃을 다시 피우려 앙상해 보이는 가지마다 꽃눈을 업은 아이처럼 업고 있다. 입동이 지나 겨울 문턱을 들어선 이때 따듯하니 봄길을 걷듯 그렇게 조종천 벚꽃길을 걷고 있다.

꽃향기가 진동을 한다.
꽃처럼 화사한 목소리로 누군가 기타 둥둥 교 위에서 시를 읊고 있다.
봄날보다 더 봄 같은 날이다.

감사합니다.

2022/11/22
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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