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ZAN] 해피의 추억

in #zzan5 years ago

연어입니다. 형제 자매가 많은 외가쪽 일가 모두 여름 방학에 맞춰 외가에 모인 적이 있었습니다. 어린이였던 저와 외사촌들만 해도 8명이있었으니 한 달 동안 시끌시끌했죠.

한 번은 동네에서 왠종일 뛰어놀다 오니 외가집에 큰 누렁이가 한 마리 있었습니다. 순하고 사람도 잘 따르길래 저희는 온갖 먹을거를 주며 쓰담쓰담 했죠. 그러다 누군가 이 개에게 이름을 지어주자고 제안을 했었습니다.

후보는 순둥이와 해피, 두 파로 나뉘었지요. 해피는 시골 강아지나 개도 이제 영어 이름을 지어줘야 한다고 우겼던 저의 의견이었습니다. 아마.. 제가 좋아했던 '해피 라면'에서 따온 이름이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만..

어쨌든 각각 4명/4명으로 팽팽하게 의견이 갈렸고 해피파인 저와 순둥이파의 사촌형은 각각 자기가 지어준 이름으로 해야한다고 사촌들을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참을 옥신각신 하는데 외할머니께서..

  • 얘들아, 저녁밥 먹고 놀아라...
  • 우쒸, 해피로 해야해. 이따 저녁 먹고 다시 얘기하자구.
  • 야야, 순둥이가 대세야. 결과는 뻔해.

저와 외사촌 형은 잠시 휴전을 하고 저녁을 먹으러 들어왔습니다. 식구가 많다보니 저녁 한 상 차리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었을 겁니다. 그래도 아이들이었던 저희야 뭐, 밥먹고 놀러 나가기 바빴지만요.

그런데 밥상에 제 눈에는 뭔가 특이하게 보이는 수육이 올려져 있었습니다. 뭔가 양념이 좀 달랐거든요. 뭔가 들깨들깨한 것이 잔뜩... 저는 젓가락으로 뒤적뒤적 거리다가 어르신들께 여쭤보았습니다.

  • 이게 무슨 고기에요?
  • 응, 맛있는거니까 많이들 먹어라.

엇, 뭔가 이상한 낌새를 차린 저는 이게 뭔지 재차 묻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옆에 있던 외사촌 형 한 명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 이거 아까 그 누렁이 같은데?

그러면서 연신 맛!있!게!.. 냠!냠!짭!짭! 거리며 '젓가락질'을 하고 있는 겁니다. 저는 어찌나 놀랐던지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소리쳤지요.

  • 이게 우리 해피라구요?!!!!!

저는 잠시 망연자실한 채 넋을 잃었고, 잠시 후 정신이 들 때쯤 명단 파악이 되더군요.

  • 먹고 있는 자..
  • 안 먹고 있는 사람..

아직도 이때의 명단이 생생히 떠오르네요. ㅋ 그날이 아마 오늘 같은 복날이었나 봅니다. 그리고 그 때 마침 외할아버지께서 당뇨 증세가 조금씩 시작될 즈음이라 나름 건강을 생각하신 어르신들의 결정이었나 봅니다.

헌데, 잠시 전까지 귀엽게 자리하고 있던 녀석이 사라지다니요. 그것도 밥상 위에 올라오다니.. 어렸던 저에겐 받아들이기 힘든 사건이었습니다.

가끔은 복날에 떠오르는 殺犬의 추억.. 아니 풍족한 단백질을 선물하고 사라진 해피의 추억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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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날이네요... 저도 보양되는 음식.. 뭐 하나 챙겨먹어야겠네요.

네. 삼복더위를 이길 수 있게 말이죠. ^^

  1. 저희집에도 해피가 있었어요. 하얀털이 복슬복슬하고 여간 재간둥이가 아니었는데 어떻게 사라졌는지 기억에 없습니다. 아마도 비슷한 운명이지 않았을까 싶은데...
  2. 해피라면이 큰 마트에 있던데요. 맛은 장담을 못하겠고요.
  3. 개와 관련된 이야기는 늘 뭔가를 생각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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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 해피 라면이 아직도 생존(?)해 있나요? 반가운 소식이네요. ㅎㅎ
요즘은 해피란 이름의 강아지들이 거의 없는거 같아요. 예전에는 좀 흔했던 것 같기도 한데 말이죠. 해피란 이름에 추억이 있으셨나 보네요 ^^

아직도 생존해 있는 건 아닌 거 같고 추억의 라면으로 재생산 된 거 같았어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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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 이럴수가! ㅋㅋ

ㅎㅎㅎㅎㅎ 예전 맛이 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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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라면'? 상당히 관심이 가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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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끝까지 읽어보고 충격... 어린 나이에 마음에 상처 받으셨겠어요..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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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심파괴였죠. ㅋㅋ

단종된 라면으로 알고 있었는데.. 혹시 복고풍으로 다시 살아났을지도 모르겠어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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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고풍으로 컴백했대요!

아니 참.. 상당히 당황스럽고.. 관심이 가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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