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azy Farmer] 무술(戊戌)년 농사를 마치며/ 수확한 토종 작물 소개

in #busy5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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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배추 수확하기 전 2018. 11. 18.]

생태농업을 시작한지 올해로 벌써 7년이 되었다. 올해 무술(戊戌)년 가을 작물들은 재래식 무모종 30개를 심은 것을 제외하곤 모두 토종 종자를 직파하거나 토종 배추 모종을 심어서 수확하였다. 무술(戊戌)년 가을 농사 중간정리

일머리가 거의 제로 수준인 내가 땀을 삐질삐질 흘려가면서 엉성하게 밭을 갈고 게으르게 관리하는 것을 보시는 아버지께서는 밭에 갈때마다 집어치우라고 타박하신다. 그러나 기껏해야 10평 남짓한 텃밭을 가꾸는 것이기 때문에 쌩 노가다는 아니다. 그리고 방콕 서생(책벌레)인 내가 이마저도 노동을 하지 않으면 아마 대굴대굴 굴러다닐 것이다. 하기야 7살 먹은 농부니 이제 그런대로 요령은 생겼다.

그리고 나는 철저하게 생명 존중의 입장이기 때문에 나의 작물들에게서 삥을 뜯어먹는 해충들이나 텃새부리는 잡초들을 가만히 나둔다. 사실 귀찮은 것도 한몫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기고만장하여 나의 작물들을 울트라 개무시한다. 그러나 이렇게 열악한 조건에서 자라난 작물들은 이런 저런 깡패들과 경쟁해서 살아남아 생명력만큼은 검증되었다.

그들은 못생기고 조그맣지만 그냥 마트에서 사다가 먹는 작물들과는 다르게 나에게 정신적 안정감을 준다. 적어도 농약을 주지 않았고 자연이 주는 혜택을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넉넉하면 넉넉한 대로 주는대로 순응하여 받아들인 순박한 농작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동의 즐거움도 조금은 알것 같다. 순전히 돈을 벌기위한 노동은 노가다로 고역일수 있지만 자발적인 노동, 그리고 자연속에 파뭍힌 노동은 생존을 위한 긴장감이 없고 느긋하다. 덤으로 생태적인 방법으로 농사를 지음으로써 이 땅에게 생명력을 돋구워준다는 소박한 위안거리도 삼는다.

물론 이곳의 터줏대감인 야생초와 풀벌레들에게 나는 폭력을 행사하는 야만인이긴 하다.


수확한 토종작물 소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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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배추 2018. 11. 13. 수확]

조선 배추라고 불리는데 14세기 중국에서 유입되었다고 한다. 뿌리까지 먹을 수 있어 배추를 칼로 따지 않고 뿌리채 캐는 것이다. 캘 때 땅콩향이 나서 너무나 좋다. 수확할 때 작물의 싱싱함과 함께 묵직하게 풍겨주는 배추 향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 다음부터는 의성배추를 주로 심으려고 한다. 그러나 배추가 땡땡하게 포기지지 않고 맵시 있게 쭉쭉 빵빵 길게 자란다. 따라서 포기김치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쉬울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길쭉한 김치를 담가서 먹으면 그 맛이 또다른 매력이 있다. 2년 전에 의성배추인지 모르고 그냥 토종이라고 심어서 칼로 따기만 했다. 즉, 뿌리는 그냥 버렸던 것이다. 이번에는 뿌리채 캐서 정성껏 흙을 털어내느라 시간이 좀 걸렸다. 김치 맛이 너무나 달콤 향긋하고 좋아서 안양에 사시는 이모님께서 이 배추를 달라고 목 빠지게 기다리셨다. 배추 뿌리에 묻은 흙을 대충 털어내고 먹어보았더니 무 맛이 나면서 뒷맛이 달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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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억배추 2018. 11. 16. 수확]

제주도 대정읍 구억리 출신이라고 한다. 속이 차는 토종 배추이다. 구억 배추는 예전에도 여러 번 심었는데 올해의 구억 배추는 실한 편이다. 의외이다. 땅이 더 척박하고 퇴비도 제대로 주지 못했는데 이놈들은 튼실하게 자라났다. 물론 재래종 배추에 비해서는 속이 꽉찬 편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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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하지 않은 올망졸망 짜리몽땅 구억 배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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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배추 2018. 11. 20. 수확]

대구에서 육종된 배추라고 한다. 잎이 보라색이어서 보라배추인데 보라색 갓과 차이를 모르겠다. 보라배추의 향도 의성배추와 비슷한 것같은데 은은하다. 그래서 뿌리채 캐서 뿌리 맛을 보았는데 의성배추 뿌리 맛과 별반 차이가 없다. 그래서 이놈들도 뿌리채 캐었다. 늦게 직파했기 때문에 다른 배추들보다는 크게 자라지 못했다. 그래도 잎이 연해서 겉절이를 해 먹으면 맛이 좋을 것 같다. 요것은 형님댁에 가져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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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배추 캐기전 한 컷 2018. 11. 2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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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꼬리무 2018. 11. 13. 수확]

토종무는 크게 자라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짜리몽땅하면서 땡글땡글하다. 나는 이 쥐꼬리무의 모양이 맘에 든다. 재래식 무와 달리 꼬리가 길게 내리 꼿아 쥐꼬리를 닮아서 쥐꼬리 무라고 부르는 것 같다. 앙증맞다. 통통한 쥐다. 맛이 어떨지 무척 궁금하다. 안양 이모님께 모두 가져다 드렸는데 한번 맛을 보러 가야할 것 같다. 이것도 앞으로 꼭 심어야 할 것 같다. 왜냐고? 내가 쥐피터거든,

스팀잇 프사.png
[Spiritual 쥐peter cartoon by @zzing]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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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무 2018. 11. 16. 수확]

전차무도 어떻게 자랄지 참 궁금했다. 잎사귀도 보랏빛, 무도 보랏빛이다. 2년 전에 강화 순무를 심어서 수확하였는데 그들과는 느낌이 다르다. 무을 썰어보니 겉은 보라인데 속은 하얗다. 무 잎이 질기면서 힘이 있는 느낌이다. 기세가 있다. 그래서 전차무라고 불렀을까? 수지에 사는 이모님께 모두 가져다 드렸는데 생 무를 한 조각 씹어 먹어보았더니 무쟈게 맵다. 아주 독하다 독해! 가을무는 인삼하고도 바꾸지 않는다는 것이 이 전차 무를 보고 그러는 것이 아닐까? 그냥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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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무의 씨앗 파종 전 2018. 8. 25.]

이랬던 씨앗이 저렇게 씩씩하게 자라났다.


무술(戊戌)년 농사를 정리하며


올해는 날씨가 너무 더웠고 인천에 이사온 후 4년동안 경작했던 밭을 떠나서 새로운 텃밭을 분양받아 작물 가꾸기를 시작했다. 이전 텃밭은 오래도록 생태농법으로 경작해온 땅이라 부드럽고 밭갈이가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무엇보다 밭을 갈 때마다 지렁이들이 많이 꿈틀대고 있었고 낙엽을 모아다가 삭힌 퇴비들도 많이 덮어 두었기에 땅심이 아주 좋았다. 이번 밭은 관행 농법을 해왔던 밭이라 땅심이 많이 약해져 있었고 밭을 가는 동안 땅에서 정(情)을 느낄 수가 없었다. 게다가 내가 경작하는 밭은 나무가 앞뒤로 심어져 있어 일조량이 적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작물들은 이곳에서 이미 정착하여 텃새부리는 야생초들과 풀벌레들의 시련을 이겨내고 꿋꿋이 자라주었다.

매해 텃밭농사를 하면서 느끼는 것이 자연이 선사해주는 생명의 힘은 대단하다는 생각뿐이다. 그래서 무위자연(無爲自然)하는 것이 없이 스스로 그러함이라고 하나보다. 그런데도 우리는 늘 헛헛하여 채워지지 않는 마음으로 무엇인가를 얻으려고 무척이나 바쁘게 살아간다.

그러나 이 피터라는 생명의 몸을 부여받고 태어난 이상 아무리 상황이 힘들고 버겁더라도 자기가 속한 여건 속에서 끊어지거나 포기하지 않고 그대로 움직이며 살아가는 힘, 그 무언가가 있다. 그래서 이것을 생기(生氣)라고 하나보다.

나도 생기고 작물도 생기고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도 생기고... 생생(生生)하게 싱싱(sing sing)하게 살아가는가 보다.

나의 포스팅에 단골 가수 노래를 또다시 끄집어 넣었다. 이번에는 한 수컷이 암컷과의 sex에 분탕질하고 있나보다. 가사내용이 자세히 들어보면 ㅋㅋㅋ 좀더 나아가면 ㅋㅋㅋ.

나는 내년에도 씨앗 정자들을 땅에 열나게 심어댈 것이다.


Cigarettes After Sex - I'm a Firefighter

Baby I'm a firefighter Trapped in a burning house And the sudden picture: I think there's no way out Except to watch the love between us die


Crazy Farmer


나는 미친 농부다 | 가을 농사 중간정리 | 수확한 토종 작물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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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사에서 구할수없는 배추 품종인듯 하네요
내년 농사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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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합니다. 저도 작은 농업을 꿈꾸고 있습니다.

거참~~
표현도 거침 읍으시네요 ㅋㅋㅋ

고생하셨네요.

잡초도 안뽑는데 저렇개 자라다니 놀랍군요.
잡초 있으면 죽어도 안자라던데 말에요
보클하고 갑니다

자연에서 자란 것들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맛있게 드십시오~ 형님~

배추가 잎의 폭이 좁아서 배추같지 않아요.
신기한 배추들을 많이 심으셨네요.
쥐꼬리무는 정말 너무 귀엽게 생겼습니다.

땅심 좋은 곳에서 농사를 짓다가 땅심이 좋지 않은 곳에서 농사를 지으려면 참 헛헛하지요.
괜히 전에 농사짓던 땅 생각만 나고 그럴 거 같아요.
그래도 계속 땅심 회복을 위해 노력하면 땅은 다시 돌아오더라구요.
내년엔 더 좋은 땅이 되어 있을 겁니다.^^

농사에 관심이 많은데 새로운 정보네요.
리스팀해갑니다.ㅎㅎ

제 보기엔 농작물들이 주인 성품을 간파하고
알아서 크기로 작정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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