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고온것 빌려온것(못다한 이야기) : 루앙프라방으로 with @travelwalker

in #kr-travel6 years ago (edited)





루앙 프라방에 두고 온 것, 그리고 빌려온 것

feat. Kwangsi waterfall



아직 여명이 채 걷히지 않은 새벽 빨간 승복을 입은 승려들이 줄지어 거리를 걸어간다.
길가에 나와 앉은 사람들은 지나는 스님들에게 정성스레 음식이며 준비한 물건들을 스님들의 탁발 그릇에 옮겨 담고, 스님들은 더할 나위없이 공손하게 공양을 받는다.

루앙프라방에 있는 동안 유일하게 나를 새벽에 일어나게 만든 이 의식 아닌 의식은 조금 다른 느낌으로 내게 다가왔다.
새벽 네시에 하루를 시작하는 스님들이 유일한 끼니를 이웃으로 부터 공양 받는다. 이렇게 이웃들에게 받은 음식들로 아침과 11시부근의 점심까지 하루의 끼니를 해결한다.

탁발 수행이 진행되는 시간동안 공양을 하는 사람들도 승려들도 아무도 말을 할 수 없다. 승려들에게 접촉을 해서도 안되기 때문에 매우 조심스러운 손길과 정성만이 오간다. 매일 있는 일상같은 수행임에도, 그 엄숙한 분위기 때문에 가까이 다가서서 사진을 찍기도 조심 스러웠다.

이 긴 행렬의 끝즈음에는 어린 아이들이 나와서 바구니를 들고 앉아 있는 경우가 있는데, 승려들은 맨발로 거리를 한시간여 걸어 이웃들로 부터 받아온 음식과 물건 돈 등을 이 아이들과 나눈다.

아시아의 최빈국 중 하나인 라오스에는 거지가 없다고 한다. 좋은 기후와 잘 자라는 농작물로 먹을 것이 풍부한 탓도 있겠지만, 아마도 더 큰 이유는 이런 나눔의 삶이 이미 그들의 생활 속에 깊이 배어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탁발이 끝나갈 무렵 아침 노을과 함께 떠오르는 해를 보며, 탁발을 단순히 하나의 이벤트 정도로 생각했던 것이 부끄러웠다.

나눔의 아름다움 그리고, 개인의 영달을 위한 귀의가 아닌 함께하는 사람들을 위한 종교로서의 가치, 승려로서의 희생을 깨달았다. 함께하는 사람들이 정성스레 준비한 음식을 아껴 두끼만 먹는 승려들이 그 음식을 어찌 귀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며, 그런 승려들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이 어찌 크지 않겠는가.










라오스로 떠나갈 때, 내 마음속은 전쟁터와도 같았다. 사람에 대한 배신감과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으로 가득차 있었고, 터무니 없는 크기의 걱정들을 짐에 잔뜩 싸넣어 짊어지고 들어간 터 였다.
내가 인생을 잘 못 살았던 것인지 아니면 세상이 나를 버릴때가 된 것인지 도무지 가늠이 되지를 않았다.

어쩌면 나는 루앙프라방에서 위안이나 희망을 얻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내 인생의 막다른 골목을 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어디로든 떠나야했고, 그곳이 어디였어도 상관 없을 일이었지만, 왜 나는 그때 루앙프라방을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언젠가 방송 화면을 통해 스치며 봤던 그곳이 맘에 남았었는지, 번듯한 곳 보다는 무엇인가 부족한 것이 많은 곳을 찾고 싶었는지 알수 없지만, 그 곳을 택한 것은 두고 두고 잘한 일이라고 생각할 듯 하다.

복잡한 생각을 안고 찾은 루앙 프라방에서 나는 한량 처럼 지냈다. 일어나고 싶은 시간에 일어나고 어느때든 잠들고 싶을때 잠들었다. 걷고 싶은 만큼 걷고 사진을 찍고 싶은 생각이 들면 사진을 찍고, 처음 며칠은 스팀잇에 글도 썼었는데, 그마저도 귀찮아져서 여행의 절반 이상의 시간을 스팀에 접속도 하지 않고 지냈다.

매일 같이 잔뜩 쌓이는 이메일도 하나 읽지 않았고, 전화마저도 데이터 로밍을 꺼버려 카톡도 메세지도 받지 못했다.
처음의 며칠은 상투적인 기분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마치 괴로워 하려고 괴로워 하는 사람 처럼 기계적으로 구경하고 사진을 찍고 다녔다. 만일 내가 방콕같은 도시를 찾았더라면 괴로운 사람 코스프레 하듯 술에 취해 수쿰빗 뒷골목을 어슬렁 거리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루앙프라방의 거리를 목적없이 걷는 동안 이상하리만치 그런 생각들은 들지 않았다. 37도를 넘어가는 무더운 날씨에 카메라가방을 매고 800개가 넘는 계단을 올라야만 했던 푸시산은 무척 힘들었지만, 옷이 다 젖도록 땀을 흘리며 올라선 산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그 어떤 에어컨 보다도 마음을 시원하게 했다.

아침이면 부지런히 자전거로 오토바이로 일터로 나서는 사람들, 탁발을 마치고 아침 예불을 드리는 승려들, 예쁜 교복을 입고 학교앞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아이들. 내가 한달에 버는 돈보다 적은 돈을 일년에 버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나는 그늘을 찾지 못했다.

마땅한 장난감이 없어 엄마의 일터 옆에 비닐 돗자리를 깔고 앉아서 나뭇가지를 꺾어 가지고 놀던 아이 조차도 바쁜 엄마를 걱정이라도 하듯 보채지도 않고, 이방인의 눈길이 닿을 때면 부끄러운 얼굴로 엄마를 번갈아 보며 밝은 미소를 보여주었다.

새벽 4시 그리고 오후 4시, 강건너 절에서 예불을 위해 울리는 북소리와 종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크고 웅장한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지만, 워낙 조용한 곳이어서 강을 넘어 들리는 북소리가 마음을 울렸다.

그곳의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보면서 괴로운 사람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내가 갑자기 우스워 졌다.

'내 고민의 실체가 무엇인가. 내가 잠재적으로 가질 수 있을 것을 가질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정도의 욕심이 아닌가. '

'나를 괴롭히는 배신감은 무엇인가. 내 인생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닌 이가 나의 알량한 믿음을 좀 저버린 것은 아닌가.'

이들이 사는 모습이 내게 어떤 교훈을 던진 것은 분명히 아닐 것이다. 내가 마음속에 어슴프레 가지고 있었지만, 실체를 들여다 보려 애쓰지 않았던 내 인생의 어떤 가치를 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자세를 보여준 것 뿐이었다.
그것은 나만 알고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을 믿으며 살아온 내 스스로에 대한 마음의 경종과도 같았다.

대부분의 문제는 내 안에 있지 내 밖에 있지 않고, 그래서 그 해결책도 밖에 있지 않다.

여전히 내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좀 더 힘든 시간을 보내야겠지만, 루앙 프라방에서 보낸 일주일동안 나는 내 욕심의 많은 부분을 그곳에 두고 왔다. 나를 나로서 바라보게 해준 시간을 내게 준 곳이어서 마음도 많이 두고 왔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두고 오지 만은 않고 빌려온 것도 있는데, 그것은 '존중'이다. 존중 받기만을 바래 왔던 내 인생을 반성하는 마음으로 이제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며 살 수 있도록, 그들이 넘치게 가지고 있는 '존중'하는 마음을 빌려왔다.

언젠가 다시 루앙 프라방을 찾게 되는 그날. 두고온 것과 빌려온 것들이 어떻게 변해있을지 다시 볼수 있을 그날이 다시 오기를 바랄 뿐이다.












photo & written by @travelwal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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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비현실 적인 곳이군요. 제가 아는 영국이누친구 중에ㅜ여행을 굉장히 좋아하는 친구가 있는데, 원래 백인들이 엄청 여행을 험하게 합니다 ㅎㅎ, 라오스가 천국이었다고.. 실제 그런가요? 저는 ㅜ 출신은 비천하면서 워낙 깔끔 떨어서ㅜㅜ

아마도 유럽사람들에겐 아시아에선 보기 힘든 천국이 맞을 것 같습니다. 위험하지도 않고, 사기당할 우려도 적고, 친절하고 단정하고 품위 있거든요.
빵빵 대는 경적소리 하나 없고, 양심적이고 맛있는 식당 많고...
하지만, 아마도 루앙 프라방이라서 그런것 같아요. 비엔티안만 해도 복잡하고 시끄럽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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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서 밧줄에 메달려 다이빙하던 옛날이 떠오르네요ㅋㅋㅋ 라오스 정말 좋아유ㅠ

밧줄에 매달려 다이빙 하셨던 곳은 꽝시가 아니라 방비앵 블루라군이 아니셨을까요?ㅋㅋ
꽝시에서 그러시면 머리가 깨질수도 ^^

꽝시폭포 쪽에 나무에 밧줄 메달아놓은 곳 있지 않나요?

ㅋㅋㅋㅋ

멋진 표현이네요 여행지에서 빌려온다는 것...
라오스 한번 꼭 가보고 싶은 나라에요 잘 읽고 갑니다 카메라도 멋지네용

여행을 다니는 건 뭔가 조금씩 두고 오고 뭔가 조금씩 빌려오는 일 같아요. 가져온것이 아닌것은 원래 내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언젠가 누군가에게 돌려줘야 하니 빌려 온것이죠 물론 기한은 없지만요 ^^

^^무사히 돌아오셔서 다행이세요
여행기는 이렇게 대단원의 막을 내리나보군요
선물받은 존중
잘 간직하시구요^^

^^ 찡님의 수많은 소환에 불응을 하였던 것은.... 데이터 로밍이 꺼져서... 랍니다 ㅋ
좋은말씀 감사합니다. 그러고 보니 정말 '선물' 인지도 모르겠네요 ㅎ

새벽의 탁발 모습은 장관이죠.

맞아요... 650년을 저렇게 했구나 생각하니 참...
스님들 오프숄더 가사도 너무나 멋있었어요 ㅎㅎ

무엇이 되었든 본인에게 많은 것을 주는 여행이면, 그것으로 행복한 시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걸 그때 잘 못 알아 차리는게 문제지만요~)

그렇죠... 그래서 여행이 좋은 것 같습니다 ^^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짱짱맨 호출에 출동했습니다!!

오늘도 출동에 감사드립니다 ^^ 더워지는 날씨에 건강 조심하세요~

simsimi님이 travelwalker님을 멘션하셨습니당. 아래 링크를 누르시면 연결되용~ ^^
hodolbak님의 [1석4조 이벤트 2회] 글쓰고 + 보팅받고 + 스달받고 + 기부하고

...d> 0.014 750 29 travelwalker/td> 2018년06월02일 13시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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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색이 참으로 비현실적이군요.

그쵸? 석회석이 많아서 저렇게 된다 하더군요. 운이 좋아서 우기 직전에가서 저 색을 볼 수 있었고요. 우기 되면 물이 많이 흐르긴 하는데 흙탕물이 된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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