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 따라 삼천리] 4편 - 어느 도인의 이야기

in #kr6 years ago

어느 도인의 이야기

오늘은 근세에 그 이름을 숨기면 살아온 도인을 소개할까 합니다. 아는 분은 다 아는 이름이겠지만…우리 역사에는 알려진 대부분의 도인들은 불교에서 공부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도교나 유교나 기독교 도인 이야기는 아직 다룰만한 자료를 찾지 못했습니다. 저는 여러 도인들 이야기를 보면서 가장 마음에 와 닿는 도인이 바로 수월선사 입니다. 가장 낮은곳으로 낮은곳으로 핍박 받는 조선 유민들을 위해 짚신 만들고 주먹밥 만들며 그들 옆에 있었던 까막눈의 근세 불교의 고승인 수월선사 이야기를 한번 해보려고 합니다.

참고 및 출처 – 물 속을 걸어가는 달 – 김진태지음/학고재

수월(水月)의 법명은 음관(音觀)이다. 1855년 충청남도 홍성군 구항면 신곡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성씨가 전(全) 또는 전(田)씨라는 설이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수월은 어려서 부모를 잃은 뒤 남의 집에서 머슴살이를 하면서 자랐다. 그는 성품이 단순하고 맑았으며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자기 몸처럼 여겨 비록 모기나 빈대 같은 벌레라도 함부로 괴롭히거나 죽이지 않았다고 한다.

어느날 그는 탁발승이 전해준 수행 이야기를 듣고 깊이 감명받은 수월은 1883년 늦가을 나이 서른이 다되어 출가하기 위해 서산군 연암산 중턱에 있는 천장암(天藏庵)을 찾아갔다. 당시 천장암에는 한국 근대 선풍의 중흥조 경허(鏡虛)선사의 친형인 태허(太虛) 성원(性圓) 스님이 홀어머니 박씨를 모시고 주지로 있었다. 이곳에서 수월은 행자로서 나무꾼 생활을 했다. 그가 천장암에 온 지 1년이 되던 어느날 14살의 어린 동자가 수행자가 되겠다며 천장암을 찾아왔는데 이 동자가 바로 계룡산 동학사에서 경허를 만난 인연으로 훗날 큰 선지식이 된 만공(滿空)선사이었다. 만공은 그해 사미계를 받고 밥짓는 공양주가 되어 여러 해를 지냈다. 또한 훗날 ‘천진도인(天眞道人)’으로 이름난 혜월(慧月)선사도 그 무렵 천장암을 찾아와 밭일을 하면서 수심결(修心訣)을 공부했다. 당시 수월은 특히 ‘천수경(千手經)’을 좋아해서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항상 외웠다고 한다.

1887년 겨울 어느 날

수월이 절 아래 있는 물레방앗간에 내려가 방아를 찧고 있었다. 그날도 수월은 천수다라니를 지극 정성으로 외우며 일을 했다. 밤늦게 절로 돌아오던 태허가 물레방앗간 앞을 지나다 돌확 속에 머리를 박고 아기처럼 잠들어 있는 수월을 발견하고 급히 끌어냈다. 그 순간 방앗공이는 다시 ‘쿵 쿵’ 소리를 내며 방아를 찧기 시작했다. 이때 그의 순전한 수행력을 인정한 태허는 다음날 법명과 사미계를 내려 정식으로 출가를 인정했고 경허를 법사로 정해주었다. 이후 수월은 스승 경허가 일러준 대로 종일 일하면서 죽기 살기로 천수대비주만을 외웠다. 그 해 수월은 용맹정진을 했는데 이레째 되는 밤 몸에서 불기둥이 뿜어져 나왔다고 한다. 이처럼 방광(放光)을 체험한 수월은 세 가지 특별한 힘을 얻었는데, 한번 보거나 들은 것은 결코 잊어버리지 않는 불망념지(不妄念智)를 얻었고 잠이 없어져 버렸으며 앓는 사람의 병을 고쳐줄 수 있는 힘을 얻었다고 전한다.

1892년경

금강산 마하연사를 찾은 수월은 그의 얼굴을 알고 있던 스님들에 의해 선방의 조실(祖室)로 모셔졌지만 여전히 낮에는 산에 들어가 나무하고 밤에는 절구통처럼 앉아서 온밤을 밝히고 스스로의 정진에 몰두하며 말없는 가르침을 내렸을 뿐이었다.

1896년 정월

수월은 지리산 감로동천에 있는 천은사(泉隱寺) 상선암(上禪庵)과 우번대에서 지냈다. 이곳에서도 밤새 삼매에 든 수월의 몸에서 다시 빛줄기가 터져 나왔는데 어찌나 크고 강렬했던지 천은사에 살던 대중들뿐만 아니라 아랫마을 사람들까지도 몰려왔다고 한다. 이 일로 인해 수월의 신분이 밝혀졌고 천은사 대중들은 그를 상선암 조실로 모셨다.
얼마후 다시 방광이 일어나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자 수월은 이적에만 마음을 빼앗기는 세태를 염려하여 지리산을 떠났다. 이후 10여년 동안 수월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이 기간 동안 수월이 충남 청양군에 있는 칠갑산 장곡사(長谷寺)에서 만공과 더불어 1년 정도 보임공부에 열중했다는 소문이 있을 따름이다.

1912년

경허가 열반에 든 소식을 당시 수덕사 정혜선원에서 정진하던 만공에게 알려준 수월은 두만강을 넘어 간도(間島)로 들어갔다. 그는 백두산 기슭에 있는 도문시 회막동에서 일반인의 모습으로 3년동안 소먹이 일꾼 노릇을 했다. 이때 수월은 자기가 받는 품삯으로 밤을 새워 짚신을 삼고 낮에는 소치는 짬짬이 틈을 내어 큰 솥에 밥을 지어 주먹밥을 만들었다. 그는 일제의 탐학을 피해 고향을 떠나 살 곳을 찾아 간도로 건너오는 동포들을 먹이고 입히기 위해 길가 바위 위에 주먹밥을 쌓아 놓고 나뭇가지에 짚신을 매달아 놓았다.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알리지 않는 무주상보시를 베풀며 보살행을 묵묵히 실천한 것이다.

1915년

회막동을 떠나 만주와 러시아 국경지대에 있는 흑룡강성의 수분하(綏芬河)로 들어갔다. 그는 관음사(觀音寺)라는 작은 절에서 신분을 감춘채 어떤 젊은 스님에게 온갖 욕설과 행패를 당하면서도 6년간 보임공부에 열중했다고 한다.

1921년 봄

수월은 왕청현 나자구(羅在溝)에 들어가 동포들이 지어준 화엄사(華嚴寺)라는 작은 절에서 여생을 보냈다. 이곳에서도 그는 누더기를 걸치고 날이 밝으면 종일 들이나 산에 나가 늘 말없이 일했고, 탁발을 자주 다녔으며 생식을 했고, 잠을 자지 않았으며, 산짐승과 날짐승과 어울려 놀거나 아픈 사람들을 고쳐주었고 산이나 들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손수 밥을 지어 날라 주었다.

1928년

하안거를 마친 다음날인 음력 7월 16일 수월은 절 뒤편 송림산에 흐르는 개울물에 깨끗이 몸을 씻고 머리 위에는 잘 접어서 갠 바지저고리와 새로 삼은 짚신 한 켤레를 가지런히 올려놓고 맨 몸으로 단정히 결가부좌한 자세로 세상을 떠났다. 세수 74세, 법랍 45세였다.

어떻습니까? 배움이 짧아도 도를 이를수 있으나 도를 이룬뒤에도 나를 드러내지 않고 평생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이런 모습이 진정한 도인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수월은 한평생 배움이 짧아 경을 읽을수도 없고 공부하기도 어렵다보니 자신이 잘할수 있는 그것에 매진을 하여 도를 터득한 도인이었습니다. 그후에도 나무하고 불이나 때고 짚신이나 삼고 소를 키우며 주먹밥을 만들어 다른 어려운이를 돕는 일을 철저한 수행의 방편으로 삼아 평생을 ‘끊임없이 일하는 수행자 였습니다. 또한 수월은 삶의 터전인 고향을 떠나야 했던 이 땅의 한많은 백성들을 위해 손수 주먹밥을 만들어 주고 짚신을 삼아주는 무주상보시를 한량없이 베풀었던 도인이며, 이름 그대로 ‘물 속의 달’처럼 흔적없는 바람같이 살다간 숨은 성자였습니다.

끝으로 수월은 공식적인 법문을 한적이 없다고 합니다. 아마도 높은 자리에 오르는것과 말로서 사람들을 가르치는것을 좋아하지 않았던듯 합니다. 그런데 중국 북간도에 있던 화엄사에서 독립군 단원들에게 들려준 법문의 일부가 전해 내려오는데 글로 옮겨 보겠습니다.

도를 닦는 다는것은 무엇인고 허니, 마음을 모으는 거여. 별거 아녀. 이리 모으나 저리 모으나 무얼 혀서든지 마음만 모으면 되는겨. 하늘 천 따지를 하든지 하나 둘을 세든지 주문을 외든지 기도문을 외든지…워쪘든 마음만 모으면 그만인겨. 그렇게 마음을 모으는디 아무리 생각을 안 할려고 혀도 생각을 안 할수 없을 맨큼 혀야 되는겨. 무엇이든 한가지만 가지고 끝까지 공부혀야 하는디 그렇게 목숨을 걸고 하다보면 아무리 생각을 안 하려고 혀도 생각을 안 할수 없을 맨큼 되는겨. 이렇게 일념을 만들어 나가다 보면 참 나를 깨치게 되는디 사람 몸 받아 가지고 참 나를 알지 못하면 이 보다 더 큰 죄가 워디 있을겨. 부처님께서도 ‘나는 너를 못 건져준다. 니가 니 몸 건져야 한다.’ 하셨어.

-개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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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만 모으면 그만인겨. 인상적이네요. 이글을 읽으니 교황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종교를 갖고 악행을 저지르는 일보다 종교를 갖지않아도 양심적으로 사는이가 낫다"

좋은 하루 되세요 @gaeteul

감사합니다. 저도 낮은곳으로 향하는 교황님을 참 존경합니다. 종교인은 삶속에 있어야 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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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하세요!

넵. 감사합니다. 참여했습니다.

얼마만큼 수행을 해야 몸에서 불기둥이 뿜어져 나올까요? 전설이긴 하지만... 수월선사의 수행이 느껴지는 부분이네요!
민중을 보살필줄 아는마음... 그것이 종교가 아닌가 싶네요!

그것이 종교인의 자세이기도 하고 또 수행자가 해야 될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수월선사 처럼 살아 가면 싸울일도 없을텐데... 너무 대비가 됩니다.

네. 말씀에 공감이 됩니다.

(放光)
보통 사람 눈에도 빛이 보일 정도면...
선과 도의 경지는 끝이 없지 싶습니다.

네. 저도 그렇게 생각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부처님도 나도 너 를 못건져준다는 말씀
진심으로 마음에 와 닿네요. 나를 바로세울수
있는 사람은 바로 나인것 같습니다.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잘 읽으셨다니 감사합니다. 우리 스스로 바로서야겠지요.^^

능력으로 보면 신이 보낸 사람 같네요. 보통은 아니지요.~^^

네. 그런걸 수행으로 이룰수 있다고 몸소 실천하고 가신분이죠. 존경스럽습니다. 감사합니다.

어제 설정스님 탄핵기사를 봐서인지 너무 대비되는 수월선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참으로 맑은 정신과 세상 만물을 사랑하는 성품을 지니신 고결한 분이시네요~
좋은 내용 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읽어주셔서 제가 감사드립니다.

무엇을 믿던지~ 올바르게 좋은 말씀 듣고 따르면 된다고 생각됩니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감사합니다.^^

도인이자 의인이시네요.
모든길은 하나로 통한다는 말이 맞는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진리는 종교를 떠나 일맥상통 하는거라고 짧은 소견으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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