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em essay @jjy의 샘이 깊은 물 - 아름다운 뒷모습

in #kr6 years ago

아름다운 뒷모습@jjy

한 밤중 전화벨이 울린다.
안방 문갑위에 있는 전화는 어머니 전용이다.
어머니 형제분들이나 친구분들 중에서 늦은 시간에
전화를 하시는 걸로 생각했다.

그런데 통화를 마치신 어머니 말씀은 뜻밖에도
아들 전화라고 하신다.

밤늦게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묻기도 전에 말씀을 하신다.
어머니도 잘 아시는 친구가 할아버지 상을 당했고 연세가
아흔이 넘으신 할아버지께서 어제 돌아가셔서 장례식장에
모셨다고 한다. 연락은 받았지만 회사 일 끝내고 서둘러
장례식장으로 가게 되었고 문상을 하고 늦은 시간에 집에
와서 자고 내일 투표도 할 생각이니 문 잠그지 말고
기다려 달라고 하는 전화였다.

이번에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화장을 하지 않고 선산에
매장을 하기로 결정이 되었다. 그런데 매장은 공원묘지나
교회의 신자묘지 같은 곳은 크게 어려울 일이 없으나
개인 소유의 산일 경우 문제가 복잡해진다.

예전 같으면 마을에서 장례는 별 일이 아니었다.
동네 사람들이 모여 준비를 하고 절차에 따라 장례를 내 집
일처럼 치렀다. 남자들은 산역을 하고 부고를 작성해서
돌리고 여자들은 음식준비를 맡아서 하면서 망자와의 추억을
얘기하면서 마을 공동체의 결속을 다졌다.

장례 당일에는 상여를 꾸며 운구를 하면서 장지로 가는 과정이
호상이거나 번성한 집안일 때는 상제들을 상대로 장난을 하기도
해서 걷힌 돈을 마을 공동기금으로 사용하고 슬프지 만은 않은
송별식을 치렀다.

그러나 요즘은 시골이라고 해도 바쁜 생활에 쫓기는 나머지
서로 얼굴 볼 시간도 부족해 공동체 의식은 희박해 지고 있어
장례는 정말 큰일이라고 할 수 있다. 형편이 그렇다보니
상조회사에 의지하게 되고 장례식장에서 화장터로 직행한다.

연세 드신 어른이 한 동안 안 보이면 세상 뜨셨거나 요양원에
가셨다고 알면 된다. 초상이 나도 아이가 태어나도 모르는 채로
어쩌다 얼굴 한 번 마주치고 산다.

선산에 할아버지를 모시기로 하면서 장례절차가 문제가 되었다.
상조회사에서는 절차에 도움을 주는 것일 뿐 그 외에는 기대하기
어렵다. 우선 개인 소유의 산에는 차가 들어갈 수 있는 곳에
한계가 있다. 영구차에서 내려 상여로 운구를 해야 하는데 아들
친구네는 그래도 삼촌들이 잘 살았던지 동네 사람들과 친구들이
상여를 메고 장례를 모시기로 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우리 아들 하는 말이 상여 멜 사람 없으면
우리 친구들이 하기로 했다고 의리를 과시한다. 생각이야 제법
기특하다만 상여를 메는 일이 쉽지 않고 서로 발을 맞추어서
하지 않으면 낭패를 볼 수도 있다고 하니 싱겁게 웃는 얼굴이
기특하다.

언젠가 들은 말씀이 떠오른다.
요즘 사람들은 태어나는 곳도 병원이고 죽는 곳도 병원이라
평생을 병원을 드나들며 산다고...

자손들의 곁에서 눈을 감고 요즘 보기 드물게 마지막 길을
아들친구와 손자친구들이 번갈아 가며 상여로 모셨다고 하니
듣는 내 마음도 흐뭇하다.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고 싶다는 말을 접하게 되면 마음에
무게가 전해진지도 오래 되었다. 풍족하지 않은 삶이었어도
아름다운 이별을 남기고 홀연히 깊은 강을 건너고 계실
고인의 영전에 삼가 명복을 빈다.

대문을 그려 주신 @cheongpyeongyull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Sort:  

얼마전 시골마을에 볼일이 있어 갔더니 마을 입구에 운구차는 들어올 수 없다는 팻말이 크게 붙어있는것을 본적 있습니다. 마을에서 크게 문제 삼지 않고 장례를 치를 수 있어 다행이군요..요즘은 마을 기금 몇백만원을 요구한다는 이야기도 들은 기억이 납니다^^

사는게 각박해서 그런가요
사람들의 마음에 날이 서는 것 같아요.
촉촉하게 내리는 빗방울에 마음을 적셔봅니다.

아름다운 뒷모습에 꽃 한송이 올려드립니다..

꽃을 바치는 마음
꽃으로 가득하세요.
비가 내려 좋은 날입니다.

저의 할아버지 돌아가실때가 생각나네요
한겨울 눈밭을 손자인 저와 제친구들이 도와 상여를 운구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러셨군요.
고생스러우셨지만
할아버지께서 흐뭇하게 떠나셨을 것입니다.

삭막하고 상부상조가 퇴색되어지다 시피한
요즘에서는
정말로 흐뭇하게 만드는 사례이지 않을까 싶네요

저고 참 다행이구나 싶었습니다.
요즘 아이들이 상여 멜 생각을 해서 기특하기도 했고
아들에게 칭찬 듬뿍 해 주었습니다.

마을 주민이었고 친인척이 그곳에 살아야
묘소를 쓸 수 있는 것 같아요.
상여는 사라져가는 풍습이 되어가네요.

힘이 들어도 지켜져야 하는 게 있는데
참 많이 아쉽습니다.
그렇다고 누구에게 강요할 수도 없는 일이지요.

평안히 가시길...

아마 편안한 마음으로
이 세상의 문을 닫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착한 손자들 보시면서

상여를 정말 오랜만에 봅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목숨을 다하고 생을 마감하는것은 슬프지만 아름다운것 같습니다. 안 좋은일로 생을 마감한분의 장례식장을 다녀오고나니 그 할아버님의 가시는길이 더 행복해 보입니다
부디 좋은곳에서 편히 잠드소서...

제 첫포스팅에 댓글달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장례문화...지난주에도 장례식장 갔다왔는데요 ...아는 분들을 떠나보낸다는 것이 정말 쉽지는 않은듯합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꽃상여를 처음으로 봤습니다.
많으신 연세에 고생 없이 눈감으신 할머리를 향해 다들 호상이라고 하셨고 8남매의 아들, 딸, 그의 딸의 손자, 손녀들까지 모이니
90여명이 넘는 가족들을 만나 울고 웃으면 장례식을 치뤘던 기억이 납니다. 할머니가 그리워지는 날입니다.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Coin Marketplace

STEEM 0.28
TRX 0.13
JST 0.032
BTC 60793.36
ETH 2909.65
USDT 1.00
SBD 3.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