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세이] 나의 금기들

in #kr5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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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세이 '아무것도 안해도 아무렇지 않구나' 에서 읽고 머리속 작은 전구가 톡, 하고 켜졌던 문구. '나의 금기들'. 무엇무엇을 하면 안된다, 또는 무엇무엇을 해야만 한다 라는 수칙을 하나둘 버리고 스스로에게 숨 쉴 틈을 마련해주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말에 나에겐 어떠한 금기들이 있나, 생각해보았다.

그동안의 나의 금기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저 중에 꼭 지켜야만 하는게 대체 뭐가 있나 싶다. 속상할 때 술 좀 마시면 어떻다고. 늦잠 안 자기는 무슨. 이제는 밀가루도 먹고, 필요할땐 택시도 타고, 세일 안하는 날에도 화장품을 살 거다. 그렇게 하나둘 금기로부터 자유로워진다면 언젠가는 '소공녀'의 미소처럼 물 흐르듯 바람 불 듯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안해도 아무렇지 않구나' 중


유도리 있는 삶


 나의 행복을 위한 수칙은 곰곰히 떠올려보니 몇가지 있는데, 소확행이라고 하는 것들은 대체로 글로 옮기기도 민망한 것들이다. 하지만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만은 확실하다. 나를 정죄하는 금기들 또한 정말 별것 아닌것 들인데, 이런 사소한 것들이 내 하루를, 일주일을, 일년을 나와 가장 가깝게 지내게 된다.

  • 첫째로, 아무리 급해도 할부로는 물건을 사지 않았다.

 매달 수입의 일정 부분을 떼어줘야 하는 일은 안그래도 수입이 일정치 않은 프리랜서인 나에겐 곤욕인 일이였다. 그나마 처음 할부로 샀던 것이라면 어쩔수 없이 학부생때 구매했던 맥북정도. 그것도 세달을 할부를 걸었지만 두번째 달에 다 갚아버렸다. 조금씩 나를 갉아먹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였다. 이건 나의 소비습관과도 이어지는 것이였기에 지금도 후회를 하진 않지만 결국 생각해보면 그때 그때 필요했던 물건들을 사지 않고 다른 방향으로 돌려 메꾸었던 일은 훨씬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소모가 더 되는 일이였다.

  • 둘째는 술을 마시고 잠에 들지 않는 것.

 술을 즐기는 성격이 아니기도 했고 술에 의지하여 잠에 드는것을 습관하 하기 시작하면 겉잡을 수 없을것 같았기에 정했던 수칙이였다. 수면의 질에 대하여는 오랜 기간동안 고찰해왔지만 딱히 답은 없다.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생각을 하고, 편안한 환경에서 좋은 컨디션으로 잠을 드는 것이 나의 최선이다.지금은 와인 한잔에 속상한 일 털어버리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에대한 거부감은 사라졌다. 내가 힘들면 술 한잔 할 수 있는 거지뭐. 수면에 부여했던 강박관념을 훌훌 털어내자.

  • 셋째로는 세일하지 않는 기간에 화장품을 사지 않는 것.

 한국에선 다양한 생필품들이 시즌, 달, 주 별로 세일을 했기 때문에 타이밍을 맞춰 구매한다면 최적의 소비를 구현할 수 있었지만 반대로 내가 필요할때 그 시기를 맞추기란 운이 따라주지 않으면 힘든 일이였다. 그렇기에 몇가지 없는 화장품 등을 제 돈 주고 구매하기란 아까운, 이상한 심리를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세일 해도 결국 많아봤자 3,4천원 차이였을걸, 내가 필요할때 그 시기에 적절한 물건을 쓰지 못한다는 불편함과 비교해보니 감수할 만한 돈의 액수가 아니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일 세일을 한다는 사실을 안다면 또 모르겠지만 (하루쯤이야) 굳이 억지로 참아가며 언제 세일할까, 전전긍긍 할 필요는 없는 것이였다.

  • 넷째, 택시 타지 않기.

 아무리 바쁘고 늦을 상황이래도 정말 죄송하다고 양해를 구하고 최대한의 대중교통을 이용했지, 택시는 부러 타지 않았다. 택시에서 마주한 종종 있었던 불쾌한 상황 때문만은 아니지만, 한번 타게 되면 그 편리함에 겉잡을 수 없이 남용할것 같았기 때문이다. 조금 더 일찍, 조금 더 부지런하게 내 몸을 놀리면 될 것을, 게을러 지는 자신에게 택시라는 핑계도구를 수여해주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때 그때 내 다리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었던 소중한 시간들, 약속들은 돌아오지 않는 것이였기에 필요에 의한 적당한 택시이용은 꼭 악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든지 적당히가 어렵긴 하지만, 급할때 택시 한번 타는게 뭐 대수라고!

  • 마지막으로는 약 먹지 않고 고통 참기

 월경 주간에 온전히 참아내야 했던 두통, 허리통 등과 가끔 쌀쌀한 날에 걷다 들어오면 느껴지는 감기 기운에 무슨 깡이었는지 약을 먹지 않고 버텼다. 왜냐고 물으면 설명할순 없는 이상한 고집으로 약을 먹지 않았는데, 굳이 내 몸의 고통을 완화시켜줄 방법이 있는데도 꾸역꾸역 참는 것은 미련한 짓이 아니였나 싶다. 약사가 추천해주는 용도 에 따른 투여 그램, 횟수 등을 여러번 시도해본 결과 각각의 상황과 내 몸에 맞는 약을 찾은 지금은 가끔 정 힘들다 싶거나 오늘은 굉장히 아플것 같다는 예감이 들면 가볍게 입에 털어넣는다. 내 몸을 아끼는 방법중 하나. 고통을 참지 않고 완화시켜줄 방법을 찾는 것.


 그 무엇무엇을 하지 않기를 실천하느라 정작 잃은 게 더 많을 때도 있지 않았던가, 라고 건네는 작가의 말에 다시금 되새겨보는 나의 작은 습관들. 유도리 있게 내 자신을 챙겨주면 뭐 어떻다고, 큰일 난다고, 늘 금지하고 세워둔 수칙을 지키느라 숨쉴 구멍을 만들어두지 않고 꽉 죄이고만 있던것은 아닐까. 나는 왜이렇게 피곤하게 살았는가. 더 나은 내일을 위한 결정이었지만 나 역시 실천하느라 갑갑했음을, 가끔은 유도리 있게 살아도 되는 거였음을 깨달았다.

반대로, 소확행을 떠올려보았다.

  • 아무리 피곤해도 저녁에는 샤워를 하고, 따듯한 물에 몸을 풀어주기.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집에 들어오면 기다리는 건 편안한 침대. 그 위에 풀썩 눕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오늘 하루 고생했단 의미로 내 몸을 아껴주는것.. 하루종일 고생했을 다리도 스트레칭 해주고, 굽은 어깨와 목도 풀어준다. 아침에 일어나서 또한 마찬가지. 바로 노래를 할 수 있을 정도 까지의 텐션을 올려놓으려면 물과 스트레칭 만한 것이 없다. 씻기 전까지는 굉장히 귀찮고 번거롭지만, 막상 씻고 나면 내 몸에서 나는 좋은 향기와 훨씬 부드러워진 몸에 소소한 기쁨을 느낀다.

  • 레슨이 연달아 있는 날에는 중간 중간에 내가 좋아하는 간식들로 당 섭취 해주기.

 예전엔 세,네개씩의 레슨을 연달아 해내곤 중간에 물만 마시며 버텼다. 계속해서 학생에게 말을 해야 했기에 내 향기도 신경 쓰였고, 예의도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부러 음식 섭취는 제한했었다. 하지만 내가 조금만 부지런하면 되는 일이였음을 깨달은 후로는 간단한 초콜렛이나 사탕을 먹고는 당충전을 해준다. 후에 가글을 하면 되는 문제였고, 고된 레슨 시간 중간중간에 나를 위해 숨겨놓은 작은 treat 간식이 가방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운이 나는걸 느꼈다. 내가 이렇게 단순한 사람인줄 이제 알았던 것인가.

  • 목표를 세우고, 성취했을 시엔 나에게 작은 상을 주기.

 하루종일 쉬는 스케줄 없이 바빴던 날이라면, 저녁쯤에는 나에게 보상이 될만한 것을 만들어 두는 것. 아침엔 레슨, 점심엔 수업, 저녁엔 약속.. 가끔은 나를 왜이렇게 못살게 구나 싶을 정도로 한시도 가만히 두지 못하던 때가 있었다. 그래야 덜 외롭다고 생각했고 생산적인 삶을 영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점점 굳어가는 몸과 잦아지는 두통에 이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은 내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상은 책을 사는 것. 여기서 부터 여기까지의 연습을 하고, 글을 쓰는 것을 끝내면- 읽고 싶었던 장바구니에 담겨있는 책을 하나 결제하는 것이다. 그 책을 읽기 위해 그 순간을 열심히 살아내게 되고, 책을 읽은 후 내 자신도 같이 성장한다. 가끔은 책이 아닌 옷이 될 수도 있고, 평소 갖고 싶었던 문구류가 될 수도 있다. 뭐든, 나를 기뻐할 만한 보상을 하는 것이 중요한듯 하다.


하루라도 빼먹으면 안되는 즐거움의 일과 같은 것. 꼬박꼬박 숙제하듯 오늘의 소확행을 실천하며 사는 것. 그렇게 앞뒤 꽉꽉 막힌 인생에서 나라도 내 숨통을 터주어야지. 따지고 보면 그걸 나 아니면 또 누가 해주겠는가. -에세이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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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비슷합니다. 할부 않하는 것, 택시 않타는 것, 약 잘 않먹는것... 술마시고 자는 건 잘합니다만. 왜 그리 아끼는게 몸에 배었는지 스스로도 좀 그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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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스스로 조이는 부분을 누구나 갖고 있는것 같아요. ^^ 뭐든지 적당함이 어려운듯 합니다. ㅎㅎ

가끔은 조이기도 가끔은 상을 주기도...
그렇치 않으면 너무 나태해지니까...
잘 하고 계셔서 부럽습니다.
전 저를 이렇게 쭉 쓸수 있을까 싶거든요~

greenapple 님의 말씀이 맞는듯 합니다. ^^ 가끔 상을 줘야 또 살아갈 힘을 얻지 않을까요. 잘하고 있는건 아니지만.. 즐겁게 사는것이 목표입니다!

이런 사소한 것들이 내 하루를, 일주일을, 일년을 나와 가장 가깝게 지내게 된다.

이 구절 참 좋아요. 행복할 때 보면 스스로 사이에 거부감 없이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을 때더라고요.

몇 가지 철칙 중 너무 공감가는 게 많아요. 택시타지 않기랑 세일기간에만 화장품 사기. 약 먹지 않기. 구구절절 공감가요. 점점 느슨하게 살게 되는 것 같아요. 힘빼고 말이죠.

철칙은 세워두면서 따로 소확행은 실천안하며 살았는데 좋은 방법이네요. 자꾸 상을 받아서 레일라님 책장이 풍성해졌던거군요 ㅎㅎ

8일전 글인걸 모르고 보팅을;ㅋ 아 -_ㅠ 8일이나 되었군요... 허허.

매일 매일 떠오르는 단편의 생각들을 몰아서 와장창 쓰곤 하는데, 이게 또 모이다 보면 양이 엄청나더라고요.^^ 게으름 피우지 않고 쓰려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지만.. 근데 벌써 8일이나 되었군요. ㅎㅎ 보팅 감사하지만 철회하셔요 ! ㅠㅠ

고물님이 공감해주신 금기들이 사람들의 많은 공감을 사지 않을까 사실 상상은 해요. 친구들과도 매일 이야기하는 부분이라서요. 더 큰 돈을 물쓰듯 쓸때도 있는데 이상하게 나를 조이는 철칙들은 사실 사소한것에 있더라구요. 고물님의 금기와 소확행도 궁금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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