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쯤 라다크] 양고기 없이는 파티도 없다steemCreated with Sketch.

in #stimcity6 years ago (edited)


음악을 들으면서 읽어보세요. 라다크가 더 가까워질거예요.


written by @roundyr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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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여행의 반이 먹는 재미에 있다지만, 우리는 여행 중에 보통 눈에 보이는 식당에 대충 찾아 들어가서 아무거나 먹었다. 아무 식당에서, 아무 음식이나 시켜서 먹다 보면 다섯 번에 한 번 정도는 평균 이상으로 맛있는 것이 걸리곤 했다. 물론 그것은 확률의 문제고, 맛있는 밥을 먹느냐 마느냐의 여부는 날마다의 운에 달려 있었다. 운 좋게 평균 이상의 맛을 내는 식당을 발견하면 그곳을 단골로 삼고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먹을 것에 있어서만큼은 새로운 시도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늘 가던 단골 식당에 가고 싶어 했다. 반대로 재은이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식당에 가길 원했다. 죽도록 배가 고플 때는 보통 내 뜻대로 되었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재은이의 의견을 따랐다. 단골 식당에 가면 나는 늘 같은 메뉴를 주문했다. 메뉴판을 볼 필요도 없었다. 재은이는 메뉴판의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조목조목 살피고 메뉴를 정하기까지 족히 십 분은 걸렸다. 배고파 죽겠다며 빨리 고르라고 보채도 메뉴판에 적힌 모든 글씨를 읽고 있는 듯 한참을 살피다 메뉴를 정하곤 했다. 그렇게 고른 메뉴들은 대부분 정체불명의 맛이었다. 번번이 실패하면서도 그녀의 새로운 시도는 그치지 않았다. 이렇다 보니 맛있다고 소문난 것들을 먹어보기는커녕 그나마 먹을 만한 것을 골라 주린 배를 채울 수 있다는 것은 제법 행운에 속했다.

라다크에서 지내는 동안 우리는 더욱 ‘대충’ 끼니를 때웠다. 수시로 전화를 걸어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챙겨 묻던 엄마에게는 필요 이상으로 씩씩한 목소리로 대답하곤 했다.

하지만 카페에 붙어 지내다 보면 한국에서처럼 제시간에 끼니를 챙겨 먹을 수가 없었다. 보통은 손님이 없어 둘만 카페에 남아 있을 때, 짬을 내어 샌드위치나 달걀볶음밥 따위의 간단한 메뉴를 만들어 먹었다(그나마 요리를 할 수 있을 만한 재료가 갖추어져 있을 때 가능한 일이었다). 그마저도 귀찮을 때는 인도의 인스턴트 라면인 ‘메기 누들’이 유일한 해답이었다. 메기 누들은 마살라의 향취가 느껴지는 인도의 국민 라면이다. 방과 후 집으로 돌아가는 라다크 어린이들이 메기 누들 한 봉지씩을 들고 손가락을 쪽쪽 빨고 있는 모습을 보면, 라면을 부숴 먹고 새빨개진 입가에 연신 손부채를 부쳐대던 어렸을 때의 내 모습이 생각났다. 우리는 메기 누들의 마살라 수프 대신 한국에서 가져온 마법의 라면 수프를 넣어서 끓여 먹었는데 쫄깃한 면발은 기대하기 어려웠지만 제법 한국의 라면과 가까운 맛이 났다. 하지만 매일같이 카페에 출근 도장을 찍던 다이와 제이미는 화학조미료라면 질색을 해서 그들과 함께 라면을 끓여 먹게 되면, 밍밍하기 짝이 없는 희멀건 라면을 먹어야 했다. 게다가 둘은 열렬한 고수 마니아여서, 라면에 고수를 넣자고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했다. 그들이 화학조미료에 질색하는 만큼 우리도 고수에 질색했기 때문이다.

가끔은 작정하고 된장국을 끓이고, 밥을 짓기도 했다. 바람 불면 날아가 버릴 만큼 찰기 없는 인도 쌀밥은 꽤 고역이었다. 우리는 인도 쌀로 최대한 찰진 밥을 짓기 위해 늘 고군분투했다. 카페의 옆방은 라다크 학생들의 과외 공부방이었는데, 학생들의 공부 시간과 우리들의 식사 시간이 겹치는 날이면 카페 주방에서 흘러나오는 음식 냄새 때문에 괴로워하는 학생들의 아우성이 들려오곤 했다.

카페를 찾은 한국 손님이 카페의 주방을 빌려 닭백숙이나 닭볶음탕을 만들어 잔치를 벌이는 날은 운이 좋은 날이었다. 우리 둘의 요리 실력은 우리의 입맛에 한해서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수준이어서 닭을 이용하는 고급(?) 요리는 꿈도 꾸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듯 그럴싸하게 끼니를 때우는 일은 거의 드물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된장이나 고추장 같은 것들은 ‘정말 힘들 때’만 먹기 위해 아껴 두었고, 무엇보다 한바탕 요리를 하고 난 후의 잔해들을 처리하는 일은 카페의 열악한 주방 환경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외식을 하려면 카페를 비워두어야 했기에 되도록 외식을 피하는 편이었지만 밖에 나가 밥을 먹을 때 자주 찾는 보석 같은 단골 식당이 몇 군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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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먹으러 자주 가는 식당은 창스파에 위치한 작고 허름한 식당이었다. 다르질링 Darjeeling(인도 서벵골 주의 주도) 출신인 가게 주인의 솜씨가 좋아 열 명 정도면 꽉 들어차는 좁은 가게는 늘 북적거렸다. 창스파에 위치한 식당들은 보통 관광객을 상대로 하기 때문에 대부분 외국인만 바글거렸는데, 이곳은 현지인 손님도 많았다. ‘현지인이 많이 찾는 식당은 싸고 맛있는 집’이라는 말이 진리임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는 늘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요리를 하고, 손님들에게 음식을 가져다주었다. 우리는 이렇게 돈을 쓸어 담는데 신이 나지 않을 수가 있겠냐며 키득거렸지만, 늘 자신이 만든 음식이 맛있는지 확인받고 싶어 하는 그는 천성적으로 낙천가였다. 그는 음식을 만든다는 일 자체에 대단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보통 늦은 밤까지 영업을 하는 창스파의 식당들과 달리 초저녁만 되어도 문을 닫아버리는 걸 보면 돈을 버는 것에 대하여 큰 욕심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우리는 늘 길 쪽으로 뻥 뚫린 자리에 앉아 창스파를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아침을 먹었다. 아침을 맞이하기 위해 길거리로 쏟아져 나온 각국 여행자들의 모습은 재미있는 구경거리였다. 강렬한 햇볕에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 검은색의 선글라스, 정신없이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어깨까지 늘어뜨리고 흐느적거리며 걷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스라엘 사람이었다. 창스파 거리는 코리안 스트리트 혹은 이스라엘리 스트리트라고 불릴 정도로 한국 사람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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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즐겨 먹던 아침 메뉴는 오믈렛과 파란타 Parantha(밀가루 반죽에 양파나 감자를 넣어 얄팍하게 부쳐낸 한국의 부침개 같은 음식), 짜이 한 잔 혹은 인도식 백반인 탈리였다. 탈리는 말하자면 3첩 반상 같은 것인데, 밥과 짜파티, 몇 가지 채소로 만든 반찬과 달, 그리고 커드까지 갖추고 있어서 한 끼 식사로 든든했다. 한 라다크 친구는 이 집 파란타가 레 시내 최고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곤 했는데, 이곳을 찾는 현지인들이 하나같이 파란타를 먹고 있었으니 친구의 말이 과장은 아닌 듯했다.

덴뚝 Thentuk(수제비와 비슷한 티베트 음식), 뚝바, 모모 Momo(만두와 비슷한 티베트 음식)와 같은 티베트 음식이 먹고 싶을 때는 메인 바자르에 있는 앙축 아저씨네 식당에 갔다. 유명한 가이드북에도 나온 식당이라 제법 여행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난 곳이다. 아저씨는 늘 우리에게 티베트 말로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물었다. 식당 안에는 티베트를 상징하는 인물의 사진이나 티베트 독립운동 단체에서 배포한 포스터가 곳곳에 붙어있었다. 당연히 아저씨가 티베트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스스로 자신이 창탕 지역 출신의 라다크 사람이라고 이야기했다. 티베트 말을 조금 할 줄 아는 나는 아저씨의 이런저런 질문들에 대답하다가도, 라다크 사람이 어째서 티베트 말을 하는 것일까 줄곧 의아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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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네 식당은 레 시내에서 소문난 맛집이라 늘 붐볐다. 타이밍을 제대로 맞추지 못한 날에는 한 시간이 훨씬 넘도록 기다려야 할 때도 있었다. 죽기 직전까지 배가 고파진 상태로 주문을 하고는 턱을 괴고 그렁그렁한 눈빛으로 주방 쪽을 바라다보고 있으면 아저씨는 뜨거운 홍차를 공짜로 내주곤 했다. 그러면 우리는 뜨거워서 잡을 수조차 없는 유리컵에 코를 박고 호호 불며 차를 마셨다. 뜨거운 홍차를 겨우겨우 식혀서 다 마실 때쯤이 되면 아저씨는 주방에서 음식이 나오는 구멍 사이로 고개를 빼꼼 내밀며 조금만 더 기다리라는 눈치를 주었다. 유난히도 긴 기다림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인지 아저씨네 식당에서 먹는 음식들은 늘 ‘진짜’ 맛있었다. 부른 배를 둥둥 두드리며 식당 문을 나설 때면 아저씨는 여지없이 주방 안에서 티베트 말로 소리를 질렀다.

“젤 라 제 용! (다음에 또 와)!”

라다크에서는 인도, 중국, 티베트 음식은 물론이고, 한국, 일본, 태국, 이탈리아, 멕시코, 이스라엘, 아랍 음식 등 세계 각지의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물론 그 맛을 보장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라다크 음식을 파는 식당은 레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었다. 유일하게 한 고급 식당에서 라다크 음식을 팔기는 했지만, 외국인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구색만 갖추었을 뿐이었다.

왜 라다크의 식당들은 라다크 음식을 팔지 않느냐는 질문에 친구들은 그럴싸한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도대체 라다크만의 음식은 무엇이냐고 물어보아도 저희들끼리도 의견이 분분했다. 티베트 음식이나 인도 음식과는 확실히 구별되는 라다크만의 음식은 츄타기 Tsu Tagi 나 스큐 Skyu 같은 것들이 있지만, 사실 라다크에는 ‘라다크’만의 음식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것들이 많지 않았다. 그들이 즐겨 먹는 모모나 뚝바, 덴뚝 같은 것들은 사실 티베트 음식으로 알려져 있었다. 척박한 자연환경 탓에 구할 수 있는 먹을거리 자체가 다양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라다크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라다크 가정에 식사 초대를 받는 것이다. 다행히도 라다크 사람들은 손님을 초대하여 음식 대접하는 것을 좋아하는지 우리를 자주 초대해주었다. 특히 양첸은 틈만 나면 구실을 만들어 잔치를 벌였다. 변변찮은 음식들로 끼니를 해결하고 있을 우리를 내심 걱정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일 저녁에 시간 있어? 함께 저녁 먹자.”

“당연하죠!”

“뭐 먹고 싶은 거 있니?”

별다른 요구사항이 없다면 양고기 잔치가 될 것이 뻔했기 때문에 우리는 눈빛을 교환하고는 재빨리 대답했다.

“채소 모모 먹고 싶어요!”

“채소 모모? 좋아. 또?”

“그거면 충분해요!”

서둘러 대답했지만 이미 늦었다. 양고기 잔치에 모모가 추가되었을 뿐이다.

“무슨 소리야. 양고기 없는 파티라니! No mutton, no party.”

우리가 양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의 잔치에 양고기로 만든 음식을 빼달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식사에 초대한 손님에게 양고기 요리를 대접하는 것은 그들에게 당연한 문화였기 때문이다.

저녁 식사에 초대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것부터가 문제였다. 한국인의 저녁 시간은 보통 일곱 시에서 여덟 시 사이지만 라다크 사람들은 열 시가 넘어서야 저녁을 먹었다. 가끔은 초대받은 집에 도착하면 그제야 음식 준비를 시작하기도 했다. 식사가 시작되기 전에는 차나 과자, 견과류, 말린 살구 등을 먹었다. 그리고 보통은 술을 대접하는데 술과 안주를 함께 하는 한국의 문화와는 달리 술만 마셨다. 우리는 술에, 차에, 과자에 밥도 먹기 전에 이미 배가 찰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빈속에 술을 마시다가 취하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 게다가 양고기를 잘 먹지 못하는 나는 양고기로 만든 음식들이 등장하면 작전을 수행하듯 식사를 해야만 했다. 최대한 조금 먹고 많이 먹은 척하거나, 견딜 수 없는 양고기 냄새가 나도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최대한 숨을 참으면서 양고기를 씹으면 냄새가 덜 올라왔다. 시종일관 치밀하게 표정 관리를 하느라 진이 빠지곤 했다. 먹어도 먹어도 눈앞에 쌓인 음식들은 좀처럼 줄어들지를 않았다. 음식을 담은 접시가 비어간다 싶으면 라다크 사람들은 바닥이 보일 새라 다른 음식을 퍼주곤 했다. 접시를 비우고 나서 식탁 아래로 숨겨 버리거나 접시 위로 몸을 던져 음식을 더 담으려는 시도를 막아내는 육탄전까지 치러내고 나서야 비로소 식사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하루는 스피툭 곰파의 승려 스탠진에게 점심 식사 초대를 받았다. 약속한 시간에 그의 방에 도착하니 음식 준비가 한창이었다. 친구까지 와서 그를 돕고 있었는데, 슬쩍 부엌을 훑어보니 준비한 음식이 한둘이 아닌 듯했다. 우리가 식탁 앞에 앉자 스탠진과 그의 친구 타누가 준비한 요리들이 하나둘 테이블 위에 오르기 시작했다. 수프와 샐러드, 양고기 모모, 채소 모모, 밥, 각종 커리까지 뷔페 수준의 다양한 음식들이었다. 게다가 모모는 찐 것과 튀긴 것 두 가지 종류로 만들었고, 접시에 음식을 담은 모습도 얼마나 아름다운지 한 숟갈 뜨기가 미안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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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많은 걸 언제부터 준비한 거야?”

“오늘 아침부터.”

스탠진은 멋쩍은 듯 웃었다. 역시나 스탠진은 양고기 모모를 먼저 권했다. 그의 권유를 뿌리칠 수 없어 나는 언제나처럼 숨을 가다듬고 양고기 모모를 집어 들었다. 최대한 빠르게, 숨을 쉬지 않고 씹어 삼키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얼른 모모를 한 입 베어 물었다. 내가 먹어보았던 모든 종류의 모모를 통틀어 가장 맛있는 모모였다! 이후 그의 양고기 모모는 내가 유일하게 즐기며 먹을 수 있는 양고기가 되었다. 스탠진은 최상의 양고기를 구할 수 있을 때만 모모를 만든다며 특급 호텔의 요리사처럼 굴었는데, 자부심 가득한 그의 모습에 손뼉을 칠 수 밖에 없었다.

가끔은 또래 친구들의 초대를 받기도 했다. 그들도 우리처럼 끼니를 거르기 일쑤이거나 대부분은 식당에서 해결했기 때문에 그들의 초대는 더욱 특별했다. 또래 친구들이 준비한 식사는 일품요리 혹은 두세 가지 정도의 메뉴로만 간소하게 이루어져 있었다. 여자든 남자든, 친구들은 보통 어렸을 때부터 외지에 나가 자취 생활을 오래 했기 때문에 대부분 요리 솜씨가 좋았다.

우리도 종종 지인들을 카페로 초대하여 한국 음식을 만들어주었다. 그들은 한국의 된장, 고추장, 간장을 굉장히 좋아해서 무엇을 만들어주어도 잘 먹었다. 그들도 매운맛을 좋아했고 국물이 있는 요리를 즐겨 먹었다. 라다크에는 김치와 비슷한 음식도 있었다. 한국 사람들이 김치를 먹게 된 배경과 마찬가지로 추운 겨울에는 채소를 구할 수 없기 때문에 추워지기 전에 채소들을 양념에 절여놓고 겨우내 먹는 것이다. 사실 양고기와 고수를 제외하면 라다크 사람들의 입맛은 한국인과 거의 비슷했다. 하지만 해산물에 있어서만큼은 다른 입장을 보였다.

한국에서 온 친구가 공수해온 음식들을 대대적으로 풀기로 한 날이었다. 깻잎장아찌에 김까지 한국의 밥상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푸짐한 상이었다. 한 친구가 김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 검은 종이는 뭐야?”

“그건 해조류의 일종이야. 바다에서 나는 풀 같은 거야. 얇게 펴서 말리면 이렇게 검은 종이처럼 돼. 거기에 기름을 바르고, 소금을 쳐서 구운 후에 이렇게 밥이랑 먹는 거야.”

우리는 직접 김을 밥에 싸서 입에 넣어 보였지만, 친구들은 김을 된장국에 말아서 먹었다.

“한국 사람들은 생선을 많이 먹지? 물고기를 그 자리에서 바로 죽여서 날로 먹는 모습을 텔레비전에서 봤는데, 난 그 장면을 보자마자 기도를 했다니까. 어떻게 살아 있는 동물을 죽여서 바로 먹을 수가 있어?”

“너희도 고기를 먹잖아. 너희가 먹는 고기도 살아 있는 동물을 죽여서 얻은 것이니 마찬가지 아니야?”

“우리는 원래 양이나 야크 같은 큰 동물을 잡아서 여럿이서 나누어 먹었어. 한 마리만 잡아도 고기가 많이 나오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나누어 먹을 수 있지. 하지만 너희들이 먹는 생선은 너무 작아서 여러 마리를 잡아야 하잖아. 특히 한국 사람이 먹는 손톱보다도 작은 그 물고기! 그건 정말 너무해. 한 입 먹기 위해 몇 마리를 죽여야 하는지 상상해봤어?”

그가 말하는 손톱보다도 작은 물고기는 아마 멸치일 것이다. 그는 말을 이어나갔다.

“여기 사람들은 살기 위해 먹는 거야. 이런 곳에서 견뎌내려면 고기를 먹을 수밖에 없거든.”

“너희가 바다에서 난 것들을 먹지 않는 건 우리가 사는 자연환경의 차이 때문에 생겨난 문화적 차이 아닌가? 이곳에서는 해산물 자체를 얻을 수 없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한국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야. 사방에 널린 것이 해산물이라고. 먹지 않을 수 없지. 아주 오래전부터 먹기 시작한 거라고.”

듣고 있던 다른 라다크 친구가 입을 열었다.

“나는 예전에 고아 Goa(인도 중서부의 주. 인도양을 마주하고 있다)에 갔을 때 생선 먹어본 적 있어. 여기서는 구할 수 없으니 즐겨 먹지는 못하지만, 맛이 나쁘지 않던데? 만약 라다크에서 해산물을 쉽게 구할 수 있다면 나는 자주 먹을 것 같아.”

“뭐라고? 너 채식 선언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치킨 먹더니 그럴 줄 알았어.”

누구는 부처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누구는 함께 사는 지구 공동체를 떠올리며, 또 누군가는 제 건강을 생각하며 각자의 이유로 채식을 한다지만, 당장 먹을 것을 눈앞에 두고 ‘먹고사는 것’에 대하여 거창한 생각들을 갖다 붙이고 있자니 우습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얘들아. 우리는 너무 자주 진지해지는 것 같아. 일단 먹자. 맛있는 음식 앞에 두고 무슨 토론이야!”

그러고는 밥이며, 국이며 준비한 음식이 찌꺼기 하나 남지 않지 않을 때까지 모든 것을 먹어 치웠고, 그제야 만족스러운 듯 배를 두드렸다. 라다크 사람에게도, 한국 사람에게도 맛있는 음식을 좋은 사람들과 나누어 먹을 때만큼 즐거운 일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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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팀문학전집 첫번째 작품 - 「한 달쯤 라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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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잘 들었습니다.
글은 여유를 두고 진지하게 읽어야할 것 같아요.

아기키우며 여유있게 음악도 들었네요

정말 좋은 글이네요. 삶에서 느끼는 소소한 행복들이 다채롭게 담겨있는 것 같아 좋습니다!

대체로 소소하지만, 가끔은 특별하고 짜릿했으면 좋겠습니다. 히히. :-)

여행이든 일상이든 소소하게 살아가면서 느끼는 감정들이 나름 재미있지요. 화려하고 멋있는 인생이란 것이 보는 눈이 많기때문에 그에 따른 무게감이 엄청나지요. 그래서 뭐든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겠지요. 익숙함을 즐기는 것이 가장 소중한 즐거움인거 같습니다. 여행도 마찬가지겠지요. 평범한 삶속에 파고들어가서 나의 평범함과 이국의 평범함에서 따로 또 같음을 찾아가는 거지요.

두분의 여행기에서 그러한 글맛을 다시금 음미합니다. 사진에 나오는 음식들이 몽주리 먹고싶네요. 특히 40대가 넘어가면서부터 왠지 면종류는 모두 조아보여요. 누들이란 이름도 왠지 너덜너덜해져가는 신체와 함께 어울려지는 것 같구요. 양고기의 잡냄새만 잘 잡으면 맛있는 음식일 터인데 그런 양고기 요리 만나기가 힘들지요. 예전에 미국에 여행갔을때 길로스?라는 양고기 샌드위치를 먹었던거 같은데 길거리 포차였던거 같아요. (그래서 길거리 양고기로스구이 샌드위치인가?) 양고기 잡냄새가 그리 심하지 않아서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제 아침에 이어 오늘 아침도 이 노래와 함께! 누들과 너덜너덜을 연결하시다니... 말뚝이도 울고 갈 피터님 언어유희에 혀를 내두를 지경입니다...

저 양고기랑 고수도 엄청 좋아해서 red meat 알러지 생기기 전에 라다크에 갔으면 진짜 좋을뻔 했네요. 하지만 알러지가 있는 지금은 인도 여행의 적기랍니다. ㅜㅜ 베지? 피쉬? 치킨? 이렇게 묻는데 어찌나 기쁘던지요.

그나저나 정말 멸치는 생명 하나하나로 생각하니깐 너무 못된 일이었나 싶어요. 하지만 포기할 수 없습니다ㅠㅠ

써니님 전... 오늘 아침 멸치를 이미 200마리는 먹은 것 같아요. 멸치야... 고마워... 인생 첫 양고기로 너무 큰 충격을 받아서 그 이후로 못 먹게 되었는데 이제는 막 양고기 수육 같은 것도 먹을 수 있어요. 으쓱으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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