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작가 응모-수필#2] 지난 사랑 이야기를 건네는 건 실례인가요?

in #zzan5 years ago (edited)

괜찮고 괜찮지 않고 그 기준이 남과 조금 다르다는 걸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의 모든 과거가 알고 싶고 모두 수용하고 싶고 전부 안아주고 싶다. 그 사랑이 현재 진행형이 아니라면 그가 흔들리지 않을 거라는 확신만 있다면 그가 어떤 사랑의 과거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흔쾌히 모두 괜찮다. 지난 사랑으로 한 번도 상처 받은 적 없었다.

그는 지난 사랑이 없는 사람이라 아쉽다. 농담처럼 말했지만 그가 진한 연애를 해본 적 없기에 나와의 연애와 사랑이 어떤 모습인지 정확히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의 첫사랑이다. 그가 나를 만나기 전 열 명쯤 만나봤다면 더 좋았을 텐데. 그럼 그가 아니라 내가 이 사랑에 좀 더 안심할 수 있을 텐데.

처음 하는 사랑인데도 내 과거에 집착하지 않는 그가 조금 이상했다. 그 모든 게 지금의 나를 만들어서 그리고 지금은 자신과 사랑을 하니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이상해서 좋았다. 지레짐작 '아마 날 만날 한국 남자는 아무도 없을 거야.'라던 편견이 우스워질 만큼 쉽게 무너졌다. 특별히 과거를 숨기진 않았지만 굳이 말하진 않았다. 특히 좋았던 기억은 말한 적 없다. 안 좋았던 점 위주로 아쉬웠던 점 위주로 지난 사랑에 대해 단편적으로 간략히 가끔 적당한 타이밍에 자연스럽게 말했을 뿐이다.

우리는 평소 가보자고 노래를 부르던 동네 카페에 드디어 갔다. 비엔나커피를 두 잔 시키고 마지막으로 남은 자리에 앉았다. 햇볕이 창가로 비췄고 행복한 기운이 넘실거렸고 나는 그에게 물었다.

"지니가 딱 나타나잖아. 세 가지 소원으로 무얼 빌 거야?"

역시 내가 지니도 아닌데 백만 년 신중히 고민하던 그는 '죽을 때까지 건강하게 해 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여행을 가고 싶다고 했다. 내가 화들짝 놀라서 '정말?'이라고 묻자 그는 '너랑 여행을 갈 거야'라고 답했다. 문득 그가 한 번도 혼자 여행을 해본 적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올해 안에 한 번은 혼자 여행을 가라고 마구 추천했다. 그러다 문득 나는 그가 나의 쿠바 여행기를 읽으면 좋겠다는 미친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은 다 보여줘도 최후까지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남자에게 자진해서 내 이야기를 모조리 정성 들여 읽어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그걸 보면 그가 나를 좀 더 이해할 것 같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생을 거쳐 너에게 왔는지 압축적으로 보여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은 그걸 좋아하지 않을 테지만 그 라면 괜찮을 거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신나게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고 다른 일을 하는데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12시가 지나고 1시가 지나고 새벽 2시가 다 되어가는데도 잠이 올 생각을 안 했다. 그리고 머릿속에 복잡한 생각이 가득했다. 나는 불안하고 걱정이 가득했다. '이건 실수야. 실수한 거라고!' 머릿속의 종이 댕댕댕 울렸다. 옆을 보니 머리만 대면 잠이 들었어야 할 그도 나를 응시한다.

"나 너무 걱정돼. 그래서 잠이 안 와. 아까 책을 보여주기로 한 거 말이야."

"뭐? 걱정할 필요 없어."

"아냐. 내가 잘 못 생각한 것 같아. 그러니깐 나는 그거 때문에 우리 사이가 망가지거나 네가 나에 대해 안 좋은 생각을 갖게 되거나 그런 건 다 괜찮아. 아무렇지 않아. 그런데 나는 네가 상처를 받을까 너무 두려워."

우리는 한 번도 상처 준 적 없다. 어쩌면 우리가 아직 서로에게 상처 주지 않았기에 우리는 결혼하기로 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아직 서로에게 아픈 기억이 없다. 그런 그에게 처음으로 상처를 줄까 몹시 두려웠다. 상처는 한 번 받으면 되돌릴 수 없는데 굳이 내가 괜히 상처를 주게 되는 걸까 봐 고통스러웠다. 괜히 눈가에 눈물이 핑 돌았다. 그는 나를 꽈악 안았다.

"나는 네 생각보다 강해. 그렇게 쉽게 상처 받지 않아. 나는 네 과거는 신경 쓰지 않아. 네가 나를 사랑한다는 걸 알기에 뭐든 괜찮아."

"책을 읽다가 힘들면 던져버려야 돼. 상처 받으면 안 돼!"

"알겠어. 못 읽겠으면 던져버릴 게."

"정말 나는 괜찮은데. 나는 반대 상황이라도 괜찮은 데. 내가 그래서 괜찮은 게 아니라 내가 아무것도 없다 해도 괜찮은데. 너도 괜찮을까?"

"응. 괜찮아."

마음이 뜨거워졌고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나쁜 꿈 없이 잠이 들었다. 역시 나는 나쁘다. 이 모든 게 내 마음 편하고자 하는 욕심일지도 모른다. 예전 같으면 불안한 마음에 방어적인 시험이었을지도 모른다.

'나 이렇게까지 하는데도 너 나 안 떠날 거니?'

하지만 이번엔 그런 게 아니다. 가장 그 이야기를 읽어줬으면 하는 사람은 사실 그였다. 그가 보게 될 걸 알면서도 나는 그 이야기를 썼고 책으로 내고자 한다. 내가 정말 그 책을 그에게 건네게 될지 아니면 철회할지 아직 잘 모르겠다. 그와의 관계를 끝장내려고 하는 건 아니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있다. 나의 믿음과 우려 가운데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고 매일매일 마음이 뒤바뀐다.

역시나.. 지난 사랑 이야기를 현재 사람에게 건네는 건 실례인가요?

P.S. 부인이 될 사람이 또라이라 미안하지만 네가 택한 여자가 골 때리는 또라이란다.


응모분야: 수필
응모자: @fgomul
응모글: #1 지난 사랑 이야기를 쓰는 건 실례인가요?
#2 지난 사랑 이야기를 건네는 건 실례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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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의견을 말할까 말까 고민하다 마지막 질문 형식으로 물어봤으니 의견 남깁니다.^^

결혼할 남자에게 과거 밝히는거 절대 반대입니다.

ㅋㅋㅋ 예상했던 답변입니다 머리 속 경고가 답이군요. 그 남자다 저라면 진짜 괜찮을텐데 말이죠

쿠......쿠바 이야기는 절대 안됩니다......
정말정말 편안한 가족이 되었을때 한편한편 보여주세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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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ㅋ 다른 건 그렇다쳐도 그건 진짜 안되겠죠?

결혼 5주년 기념으로 한 편씩 공개해야겠네요 남친님께 이런 말도 했어요 우린 잘살거지만 만약 우리가 이혼한다면 그건 다 내 책임일거야 ㅋㅋㅋㅋ

쿠바 정주행하고 왔습니다. 같은 남자로써 절대 안댑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뭔가 음.... 네..... 음..... 쿠바 읽으며... 음.... 좀.... 음.... 저도 연애할 때 했던 .. 음... 행동들이... 찔리더군요..... ㅎㅎ...

고물님의 사랑이야기 기대합니다! :)

으어 ㅋㅋㅋ 그거 전부 다 읽으신 건 이니죠? 무지 긴데 ㅋㅋㅋ 남자로서 절대 안되는군요 ㅋㅋㅋㅋ
누구 입장에서 찔리신 군지 궁금해지려다가 ㅋㅋㅋ

이글을 올릴 때까지도 깊은 고민은 아니었는데 댓글을 보니 절대 안되는 거구나란 깨달음을....

물론 다 읽었습니드아!! 당연히 다 읽어야죠!! ㅋㅋㅋㅋㅋ 하핳... 제가 했던 행동이 여자 입장에서는 저렇게 보일 수 있구나 싶었습니다 ㅎㅎ...

Loading...

다음에는 쿠바여행기도 올려주세요^^

이미 예전에 올렸던지라 ^^;;ㅋ 많은 분들이 말려주시네요 ㅋ

절대 절대 밝히지 마세요.
도움될게 하나도 없습니다.
어느목사님이 신도중 과거를 배우자에 밝히고
참회하겠다는 고백을 듣고 엄청 말렸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무튼 절대 절대 밝히지 마세요.
나중에 문제가 됩니다. 반드시~~~
잘 읽었습니다. 참 걱정되네요

본의 아니게 걱정을 끼쳐드려서 죄송해요 -
이렇게 걱정해주시니 몸둘 바 모르겠어요
목사님도 말릴 생각이군요.

일이 벌어지면 또 그냥 그렇구나 받아들일테지만서도 걱정 감사드립니다 -ㅋ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다 괜찮을 거에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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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형태는 참 여러 가지로 나타 나죠.
앞으로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 될지 몰라도 누군가는 이 이야기를 보며 소설로 쓰고 싶다는 충동을 느낄수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다음을 기다립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사랑은 여러 모습이 있기에 각자의 사정에 달렸다고 생각해요. 오우 누군가 그래주면 정말 기쁠 것 같아요 ! 예정된 다음편은 없었는데 cjsdns님 말을 듣다보니 살다보면 다음편이 쓰고 싶어질 수도 있겠어요!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몇 시간 전에 1편 읽고 좌절(?)했었는데, 이게 2편이 있었네요?
게다가 2편은 1편보다 더 강렬하네요? ㅋㅋ

고물님의 그 분의 성격이 저랑 비슷한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진한 경험도 없고, 상대의 과거도 별로 신경 안쓰고... 다른 분 들 댓글 중에 '굳이 알려줄 필요는 없다'에 동의 하지만, 이미 언급이 나왔는데 피하면 오히려 더 신경쓰일 것 같은... 진퇴양난이네요. 어쩌죠...?

억 그러고보니 dj님과 집요정님이 조금 공통점이 있습니다.
손재주가 좋고 공학적마인드에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데다가 연애파트까지 두둥!

집요정님 분명 다른 남자분들처럼 격한 반응(?)일 것 같진 않지만 제가 잘 구워삶으면 또 그려려니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지금은 신경안써요. 요번에는 스팀잇 분들의 조언을 적극 받아들여 ㅠ 당분간 보여주지 않다가 나중에 무를 수 없을 때(??) 짠 하고 보여주려고요- 허허.

아직 만들지도 않은 책 때문에 무슨 고민인지 ㅋ 코미디입니다 ㅋㅋ

그래도 2편이 강렬했더니 속 없이 감사한 마음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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