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단편 - 춤추는 생각들

in #kr-pen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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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생각들




 작년 봄, 아무도 없는 도자기 실습실 안을 잠시 거닐고 있었다. 도자기과에 편입한 미쉘양이 학과사무실에서 수강신청을 하는 동안 실습실 문을 살짝 밀고 들어가 버렸던 것이다.

 그곳은 바닥에 흙이 눈처럼 쌓여있고, 작업대와 의자, 수도꼭지 할 것 없이 모든 사물에 바스러진 흙이 더덕더덕 묻어있는 공간이었다. 학기가 시작되지 않았으므로 선반은 완성된 작품 하나 없이 비어있었다.
 내 시선은 선반과 바닥을 훑다가 열려 있는 스티로폼 박스 하나를 발견하고 말았는데, 그 안에는 도자기 파편들이 하나의 오브제처럼 굳어있었다. 형체가 반쯤 남아 있었는데 그걸 빚던 주인이 변덕을 부려 한순간에 뭉개버린 것이었다. 그것이 '그만둔 생각'으로 느껴졌다. 흙이 뭉쳐졌다가 다시 바스러지는 것을 상상해보고 잠시 전율을 느꼈다. 세상의 입자들은 이 과정을 얼마나 되풀이했을까?


 그 순간 생각들이 나에게 달려왔다. 그 공간에서 피어나고, 또 버려지고, 완성되었을 누군가의 생각들이. 그것들은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일어나는 모든 것이었다. 세상의 모든 생각들이 동시에 춤추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입자처럼 느껴졌다. 난 사실 나에게 주어진 생에서 어떤 것을 완성하고 싶은 게 아니라, 피어나는 내 생각들을 다양하게 경험하고 싶었다. 나라는 한 입자가 다른 입자를 맛보는 것이다. 그것을 사랑이라고 불러도 좋았다. 한 미대생이 도자기를 빚는 과정처럼, 나는 생각을 구현해보고 싫증이 나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폐기하고 또 다른 재미있는 것을 만들어보고 싶다. 길고 긴 생에서 행복을 하나의 완성된 결정체로 본다면 얼마나 따분한 일인가.


 방금 미쉘양이 보낸 사진을 받았다. 물레 차는 것이 어렵다던 그녀는 어느덧 졸업반이 되었다. 가마에서 초벌 되어 나온 수반과 접시와 잔들이 제법 모양을 갖추고 있다. 이렇게 그녀의 생각이 응고가 되어 아름다운 결정체가 되었지만 유약을 칠하고 재벌 되는 과정에서 몇 개는 살아남고 또 몇 개는 버려질 것이다. 지금 당신이 빚고 있는 생각처럼. 당신은 지금 무슨 생각을 응결시키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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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단편들


누군가의 기억 속에 저장되는 것
꽃이 기다린다
파란 우연
산책자
어젯밤 꿈이 나에게 말해준 것
도착을 더듬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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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 빚는 걸 보면 자동으로 <사랑과 영혼>이 떠오르는 이 몹쓸 연상력... ㅠㅠ

이건말이죠. 남자들의 로망이죠. 가끔 정신적 환상놀이를 要하는.., 그리고말입니다. 잘못(?, 사실은 遊喜) 하다가는 환상19금으로 달려가는 인간 남정내들의 당연한 隨順. ㅋㅋ

ps1. 김자카님께서는 절대 안그러실 내공남이실꺼 같은데 평범한 남자라서 동질감이듭니다. 결론은 스팀생태계 연예인도 남자. ㅋㅋ
ps2. 끼어들어서 죄송합니다. 걍 지나칠수 없었습니다. (요기다가 작가님께 소총 풀봇. 헤헤)

저는 평범 이하입니다ㅋㅋ

전 왜때문에 그 장면이 안떠올랐던 거죠? ㅠㅠ 감성이 메마른 듯...

많이 바쁘셨나 봅니다. 포스팅이 안올라와서 아쉬웠는데 댓글보고 달려왔지요. 저도 생각에서 머무르지 않고 이 생각을 체험하고 싶지요. 다양한 생각과 그 생각이 만들어낸 세계가 결국 나인데 그걸 자꾸 잊어버리지요.생각-느낌-확증-창조의 이러한 순환과정을 수행으로서 실천하려는게 소박한 꿈이지만 생각에서 진도가 나가지 않내요.

카르마 도하기 창조성에서 창조성에 무게 중심추 이동

피터님 새로운 것을 하면 할수록 카르마가 없어지는 기분이 든답니다:) 지금도 잘 하고 계시지만 기분 좋은 상태를 유지하시면 창조가 빨리 일어나실 거예요. 응원할게요!

멈추어 있는 파편들을 보고 떠올린 생각들을 춤을 추듯 떠올리시다니, 계속 생각의 물레를 돌려야만 할 것 같습니다.

생각의 물레로 어떤 것을 만들어내실지 살짝 기대됩니다:)

초벌에서 재벌까지 살아남은 도자기들은 그 과정을 견디며 작품으로 탄생이 되었을텐데 저는 그 과정을 잘 받아들이며 이겨내고 있는지 가끔은 ... 아니 자주 생각하게 되요. 어찌보면 실패란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큰걸지도요. 그저 다시 만들면 그만일텐데요.

큰 부담이 없이 시도하면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얇아지는것 같아요. 라나님은 이미 잘 빚어서 하나씩 하나씩 세상에 내놓고 계시잖아요^^

작품들이 마음을 깨끗하게 비우는 느낌이에요. 하얀 도자기 매력적입니다.

예쁘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미쉘양에게 그렇게 전할게요:)

삶을 하나의 도자기를 빚는 작업이라고 본다면, 저는 아직 흙을 열심히 뭉치고 있는 과정에 있는것 같네요. 생각의 파편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여럿 피어오르고, 또 버려지고 있는데...그 모든 것들을 다양하게 경험하고 싶다는 말에 공감이 갑니다. 현재 스쳐 지나가는 모든 순간들이 내 소중한 삶인데, 그 자체로 즐기고 행복할 수 있어야겠지요^^

순간 순간을 음미한다면 생 전체가 얼마나 맛있을까요:) 파편은 파편대로 뭉쳐진 것은 뭉쳐진 것대로 다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5월 다시 파이팅해요!
호출에 감사드립니다!

오치님 감사합니다!

보얀님 글을 읽으면서 우리에 삶도 도자기를 빚듯이
우리가 빚어간다는 생각을 했네요
마지막 에는내가 원하는 도자기가 나왔으면 좋겠어요^^

원하는 게 안나오면 또 빚으면 돼요. 우리 가벼운 마음으로 빚어보아요:)

네~ 고맙습니다.
지난번에 알려주신 나는 항상 눈부시게 건강하다 이틀 정도 물 마시고 저녁에 잘때 여러번 마음속으로
생가하고 잤어요 그리고 아침에 일어났을때 이제는 낫을거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리고 좋아졌어요. 저는예전에도 아침에 일어났을때 느낌을 받을때가 많았고
그러고 나면 그 일이 해결 되었어요 감사합니다 ^^

현실 속에 버려진 생각의 파편들이 내 안 어딘가에 아직 살아서 숨어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드네요. :)

생각의 파편들이 다른 차원에서 싹을 틔우고 있을지도 모르죠^^ 꿈 속에서 만나실 수도 있어요.

몇 번이고 뭉쳤다가 망쳐버려서 내다버리고, 다시 뭉치고...
저는 그걸 몇 년 째 하고 있고, 최근에서야 그 과정을 조금 즐길 수 있게 된 거 같아요ㅎㅎ

저도 경아님처럼 뭉치고 버리고 그걸 수없이 반복하다가 또 다른 걸 뭉치고 있어요:) 앞으로 뭐가 나올지 알 수 없지만 이 과정이 즐거우니 만족스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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