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이치 사카모토 展 in Piknic

in #kr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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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L I F E in Piknic

류  이  치  사  카  모  토  展






피크닉(Piknic)


전시이야기에 앞서 이 공간에 대해 먼저 말해볼까 한다.

두달 전 회현역 근처에 문을 연 이곳을 뭐라고 정의해야할까. 미술관 혹은 복합문화공간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냥 단순히 말하면 인스타의 성지다. 문을 열자마자 인구밀도가 폭발했다는 소문을 자자하게 들은 나는 귀찮음인지 일부러인지 소강상태가 되길 기다렸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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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어떤 행사가 펼쳐질지 모르겠지만, 공간의 주류를 이루는 것은 아트전시이긴하다.

그리고 카페와 레스토랑이 있고, 편집샵이 자리잡고 있다. 전시를 본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 3층 루프탑은 남산타워가 보이는 전망을 자랑하여 인스타그래머블(instgrammable ; 인스타그램스러운이라는 뜻으로 요즘 시대를 반영하는 상징적인 단어로 종종 쓰이곤 한다.)한 사진에 대한 욕구를 마음껏 발산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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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크닉은 70년대 제약회사 건물을 새롭게 리모델링했는데, 뒷마당에서 바라다 보이는 뷰가 좋아서 모두들 거기서 사진을 찍는다. 언제나 그 자리에 최소 10명 정도는 자리잡고 있는 것 같은데, 새삼스러워하면서도 나 역시 그 틈바구니에 들어가 사진을 찍어봤다.

사진찍는 걸 좋아하는 편이긴 하지만, 이렇게 무리 속에 들어와있는 느낌은 가끔 좀 묘하다.








류이치 사카모토 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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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지하로 내려가 문을 열면 전시가 시작된다. 모든 사진촬영은 금지였는데,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음악이 주가 되는 전시에서 온전히 전시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억지로라도 만들어준다. 참고로 평일 낮이었기 때문에 견딜 수 있을 정도의 인구밀도였다는 것이 너무나도 다행이었다. 북적거리는 걸 싫어하는 사람들은 주말방문 절대 비추다.

'류이치 사카모토'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떠오르는 건 피아노 그리고 영화음악이다. 영화 '마지막 황제'에 나왔던 OST인 'Rain'은 아직도 여러 방송의 bgm으로 쓰이기 때문에 꽤나 친숙하고 익숙하다. 얼마나 오래된 영화인가 하고 찾아보니 1987년도이다. 3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의 음악은 과거의 것이 아닌 것 같다.

전시에서 처음 마주한 섹션은 '세 개의 흐름이 교차하는 곳'이었다. 흰 커튼으로 둘러쌓인 공간으로 들어가면 세 개의 스크린이 나란히 각기 다른 영상을 상영하고 있다. 맨 왼쪽에는 류이치 사카모토가 연주하는 영상, 가운데는 그의 음악이 삽입된 영화, 그리고 맨 오른쪽엔 그의 음악을 듣고 춤을 추는게 아닐까 추측되는 현대무용이나 혹은 다른 영상들이 등장한다. 세 개의 영상이 하나의 음악 안에 동시에 상영되는데 묘하게 감정이 복잡하게 교차되는 것만 같다. 가운데 스크린에 '마지막 황제'의 장면이 등장할 때, 오른쪽 스크린엔 고종 황제의 사진이 등장했다.

내가 예상한 전시는 익숙하게 들었던 혹은 잘 몰랐던 그의 연주곡을 다양하게 들어보는 형태였다. 그런데 첫번째 섹션이 끝나고부터 무언가 멜로디로 느껴지는 음악을 다시 들을 순 없었다. 모두 그의 작품들이었고 음악이었지만, 전혀 예상도 못한 실험적인 형태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음(音)의 실험자


그는 음(音)을 연구하고, 소리를 실험하는 실험자 같았다.

마치 설치미술처럼 물방울이 떨어지고 파동인지 파장인지 모를 기계음이 함께 재생되고 있었다. 어떤 공연에서는 바이올린을 아래로 내리치더니, 류이치 사카모토는 그랜드 피아노의 현을 뜯고 일렉기타 연주자는 가끔씩 줄을 튕겼다. 그와 함께 작업했던 어떤 뮤지션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와 일하다보면 창의력의 한계에 부딪히게 되는데, 그것이 기술력의 한계와 맞물린다. 그러나 류이치 사카모토는 디지털 기술을 아주 잘 다루면서도 완벽주의자 성향을 지니기 때문에 그에게서는 그런 한계를 느낄 수 없었다고. 그는 어쿠스틱한 음을 내는 사람이지만, 전자음악과의 다양한 교우를 통해 그 사이의 균형을 끊임없이 실험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다큐멘터리와 새 앨범을 준비했던 일화들을 읽어낼 수록 그를 '피아니스트' 혹은 '영화음악가'라고 칭했던 기존의 내 정의는 너무나도 좁고 좁은 시선이었다는 것을 느꼈다. 암투병을 이겨내고 Async라는 앨범을 준비하며 그는 '내가 듣고 싶은 음악만 담기로' 결심한다. 그가 한결같이 추구하는 음악들은 세가지가 각자의 템포를 고스란히 살린채로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그 세가지는 바로 기기와 악기와 소리. 여기서 소리는 빗소리나 폐허소리와 같은 우리 삶 속에 녹아든 환경의 소리를 뜻한다. 그리고 그는 심벌즈를 현으로 켜가면서 자신이 찾는 소리들을 실험한다.

이 모든 걸 알고나니, 유투브로 그의 음악을 공유한다는 것이 좀 미안한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그는 영화적으로 생각하고 음악을 만든다고 했다.

영화적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모든 것을 다차원적인 상황으로 바라보는 것일까. 우리의 실제 삶 속에는 기기와 악기와 소리가 있다. 삶 속에 파뭍힌 여러 감정이나 과정들 중 하나를 끌어내서 극대화시키는 것이 영화라면, 류이치 사카모토가 추구하는 '영화적'이라는 것도 그런 의미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더 깊은 성찰이 있겠지만, 내가 이해하는 바는 여기까지다.

캔버스부터 직접 만들어 평생에 걸쳐 색을 실험했던 '김환기'화백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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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이치 사카모토 음반을 구해서 한번 들어봐야 겠습니다.
사실은 실험적인 음악을 좋아하진 않는데요, 조금 다른 정신세계를 엿볼 기회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

어쩌면 마냥 듣기편한 음악은 아닌거같아요. 정말 온전히 누구도 아닌 자신의 세계관에 몰입한 음악이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

저도 여기 다녀왔는데 음악 자체는 솔직히 잘 모르겠고 다큐멘터리는 인상깊게 봤어요. 비오는날 양동이를 뒤집어쓰고 비를 맞으면서 소리를 탐하는 모습이 기억에 남네요. 그런데 입장료 만 오천원.... 너무 비싼게 아닌가 싶은.. 갠적인 소감.

전 모든게 과정으로 보였어요. 그렇게 자기 안에 탐구하려는 것에 대한 확신이 있는 사람들이 제가 제일 부러워하는 사람들이에요. 저에게 없는 것이라 그럴수도 있고요. 티켓값이 비싸긴하죠. ㅋㅋ그래도 그 덕에 모든 영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봤습니다. 두시간 넘게 있었던 것 같아요. 왠지 모르게 뽕뽑으려는 심리...

저는 전시 오픈하고 얼마안되서 방문했을 때 사람이 너무 많아서 영상 하나를 제대로 못보는 상황이 되서 당황했었어요. 조용히 오랜시간을 가졌더라면 좋았겠다 싶었는데요. 음(그늘)과 파동으로 이뤄진 공간, 일본식 정원의 느낌같은 공간이 제일 기억에 남았어요. 음의 공간을 풀어내는 일본 특유의 아름다움이 있었던 것 같아요.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

늘 느끼는 거지만, 공간을 완성하는 건 사람인 것 같아요. 평일이라고 하기에도 인구밀도가 아주 적은 편은 아니었어요. 비가 떨어지는 것 같은 모습을 정원이라고 느끼진 못했었는데, 그러고 보니 일본의 현대식 건물의 정원과도 닮아있는 것 같기도 하네요.

호텔에서 2GB 와이파이 받은 것으로 과감히 류이치 사카모토의 ASYNC를 재생하는 데 썼습니다-! ㅎㅎㅎㅎ

몽상가님 전시 리뷰 덕분에 '진짜' 류이치 사카모토의 모습을 읽게 되어 너무나 감사드려요. 특히 공유해주신 「Andata」는 숨을 죽이고 감상하게 되네요... 아. 이 음반은 스테레오가 가득한 곳에서 온전히 푹 빠진 채 듣고 싶은 마음이 생기네요.!!

저도 몽상가님처럼 '실험자'에 끌리는 타입이에요 ㅎㅎㅎㅎㅎㅎ

앗 리리님의 소중한 데이터!ㅋㅋㅋ 알고나니 더 다르게 들리고 뭔가 묘하게 다가오더라고요. 일을 끝낸 리리님에게 마음을 차분히해주는 소리가 되었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도 단단한 실험자가 되고 싶습니다. :)

한국에 실험적이고 새로운 공간이 많이 생겨나는 것 같네요.

요즘 이런 공간들이 정말 많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 ㅎㅎ

류이치 사카모토의 rain 을 검색해 봤는데 익숙한 연주네요. 티비광고에서도 가끔 나왔던... 불 꺼놓고 듣다보니 잠시 기분이 묘해지네요..

네 우리나라에서 너무 많이 사용했던 음악이죠 ㅎㅎ전시회에 다녀오니 다르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더라고요

마지막 황제 감명깊게 본 기억이 있는데 이 사람의 음악이 있었군요. 본지 오래돼서 사실 음악은 기억도 안나지만요.
사진촬영이 안돼서 사진이 없다니 아쉽네요. 음악이 주가된 전시라니 분위기가 살짝 궁금해지는데요.

음악이 메인이지만, 실험적인 전자음악과의조우나 설치형태가 더 주요한 경험이었어요. ㅎㅎ 사진을 찍고도 싶었지만, 모두가 사진을 찍었다면 전 이 전시를 안좋게 기억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ㅋㅋㅋ평일에 가보시길 추천드려요 ㅎㅎ

회장에 직접 가 있는 것 같은 포스팅이네요.잘봤어요:)

70년대의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같은 전자음악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 분도 참 불가사의한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괴물이죠..

아무래도 전시회의 성격상 지극히 대중친화적인 작품들은
의도적으로 좀 배제했을 수도 있겠다 싶네요.
저도 한번 찾아가 보겠습니다!

그랬을 수도 있겠네요. 아마도 첫 섹션만이 대중에게 익숙하고 친절한 방식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네요. 클럽선셋님 리뷰도 궁금합니다. (많이 붐비니, 타이밍을 잘 맞춰 가셔요ㅎㅎ;;)

우와...마지막 황제! 머릿속에 남는 영화 중에 하나입니다.ㅎㅎ
'세 개의 흐름이 교차하는 곳' 글을 읽으면서 상상해보았는데 멀티테스킹 능력이 떨어지는 저에게는 혼란스러울 것 같습니다.ㅠㅠ

ㅋㅋ전 어지럽진 않았는데, 설명이 복잡해서 그럴수도있어요 ㅎㅎㅎ 이럴땐 영상을 못보여드리는게 아쉽네요

아 여기 정발 인스타에서 핫하던데, 근데 인스타그래머블한 곳이지만 인스타 안에서는 저 곳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본적이 없어 이렇게 @emotionalp님 포스팅 통해 알아가네요. 인스타그래머블 이란 단어도요:) 저도 한번 가보고싶었는데 사람 빠지는 타이밍을 원하니 한참 더 기다려야 하려나봐요... ㅎㅎ

심쓰님!! 오랜만에 뵈니 넘 반갑ㅠㅠ 요즘 정말 바뿌신가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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