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l's daily] 폭우, 롤 케이크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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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요일마다 아이들에게 탁구를 가르친다. 그 때문에 태풍의 영향으로 비바람이 거센 아침, 폭우를 뚫고 학교에 왔다.

 이 날씨에 올 아이들이 없을 거라 예상했지만 혹시나 한 명이라도 오면 얼른 다시 돌려보낼 생각이었다. 역시나 아이에게 폭우를 뚫고 탁구를 치러가는 모험을 허락하는 부모는 없었던 것인지, 다행히 아직은 한 아이도 오지 않았다. 덕분에 얼마간의 여유 시간이 주어졌다.

 빈 교실의 유리창이 덜컹 거리고, 강한 비가 창문을 때린다. 차 안에 앉아 자동 세차기에 들어가는 느낌이다. 세차기에서 내뿜는 강한 물줄기가 창문을 때리며 내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린다. 창문틀이 빠질 듯 덜컹 댈 때는 약간 겁이 나기도 한다.

 비가 유리창을 강하게 때려, 창문의 아주 좁은 틈을 비집고 들어와 창틀에 고인다. 한 곳은 창틀에 고인 물이 넘쳐 교실 안으로 흘러내리고 있다. 걸레를 받쳐 놓았지만 속수무책이다.

 다시 집에 갈 일이 걱정이다. 비바람이 조금 잦아들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노래를 듣는다. 클래지 콰이의 'Gentle rain'. 14년 전에 즐겨 듣던 노래인데 오랜만에 들어도 좋다.


<클래지콰이, Gentle rain>

Gentle rain is coming down
하늘도 나처럼 잊었다 생각한 너는 나를 놔주질 않아 울고 있네.

Gentle rain is coming down
나를 적시네. 내 어깰 가려 주었던 너의 따뜻한 손은 없으니깐.

I wish I sing I wish I sing to you 우리 지난 기억들
I wish I dance I wish I dance with you 이 빗속에서
너 행복하도록 I wish you good-bye

 이 노래를 듣고 있자니 갑자기 폭우의 포효와 위협이 낭만적인 효과음으로 변한다. 폭우의 울림이 연인을 잃은 이의 깊은 울음처럼 느껴진다. ‘내 어깰 가려 주었던 너의 따뜻한 손’이 그리워 흐느끼는 사람이 저 비바람 속에 서 있다.


2

 동네 하천의 범람 직전에 태풍이 지나가고 오후엔 햇살이 비쳤다. 집안에만 있던 우리 가족들은 코스트코 나들이를 갔다.

 아기 띠를 하고 매장을 돌다가 멈춰 섰는데 한 부부의 이야기 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바로 그거야. 먹어 볼까?”


 부부 중 아내가 가리킨 곳을 나도 덩달아 쳐다보았다. 그곳엔 최근 뉴스에서 자주 보았던 ‘삼립 롤 케이크’가 있었다. 유기농 수제 쿠키와 빵으로 인기를 끌었던 ‘미미 쿠키’라는 제과점이 소비자를 속여 재포장해서 팔았던 바로 그 ‘롤 케이크’였다.

 미미 쿠키는 결국 폐업을 했지만, 이 사건이 이슈가 되면서 뒤에서 미소 지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업체에서 속여 팔았던 ‘삼립 롤 케이크와 쿠키’였다. 미미 쿠키에서 주문이 폭주했던 인기 상품이었는데, 원래 가격은 거기서 팔던 가격의 절반이다. 사람들은, ‘얼마나 가성비가 좋은 거야?’ 하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도 뜰 수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홍보하거나 애를 쓰지 않았는데, 누군가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이슈가 되고 그 누군가가 쇠락의 길을 갈 때 오히려 각광 받는 제품이 되었으니 말이다. 이번 일로 삼립의 롤 케이크는 2배의 가격에 팔리던 가치를 그대로 물려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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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에게 찾아오는 ‘티핑 포인트’도, 어떤 형태일지 예측 불가능하지 않을까. 자신이 잘하고 싶은 분야에서 묵묵히 걷다보면, 누군가는 삼립 롤 케이크의 경우처럼 스스로 홍보하거나 애쓰지 않아도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게 될 것이다. 그 일은 행운처럼, 어쩌면 그 이상의 필연처럼 찾아올 것이다.

 삼립 롤 케이크를 두고 대화하던 부부가 그걸 하나 집어 들곤 다른 코너로 사라졌다. 나도 사려고 마음먹었던 빵을 내려놓고 삼립 롤 케이크를 집어 들었다. 저렴한 가격으로 큰 관심을 받지 못하고 늘 그 자리에 있었던 그 롤 케이크의 ‘티핑 포인트’를 함께 축하하고 싶었다.

 삼립 롤 케이크를 베어 물 때, 난 어쩌면, 조용히 그러나 묵묵히 그 자리에서 자신의 맛을 누군가는 알아주길 기다리는 나와 우리의 소망을 음미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티핑 포인트란?
 말콤 글래드웰은 같은 이름의 저서에서 “티핑포인트”란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갑자기 폭발하는 바로 그 지점을 일컫는다고 묘사했는데,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이 용어도 함께 유명해졌다. 인기가 없던 제품이 어떤 일을 계기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되는 극적인 순간이 바로 티핑포인트다. -Daum 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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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낮에 듣는 젠틀레인도 참 좋네요
비 올 때 다시 들어봐야지 ㅎㅎ
얼릉 스팀잇도 티핑포인트를 맞았으면 좋겠네요 ㅋ
태풍오는 날 빈교실에 혼자 앉아있는 느낌이라.. 왠지 낭만적일거 같은 ㅎ 일본 애니매이션의 한장면일거 같지만 현실은 집에 갈 걱정을 해야하는군요^^

네 이 노랜, 언제 들어도 비오는 날의 감성을 불러일으킵니다.ㅎ 스팀잇의 티핑포인트는 모든 이웃들의 티핑포인트가 되겠지요!
창틀이 흔들리고, 비오고, 음악이 흐르는 빈 교실은 꽤 낭만적이었어요. 시간이 허락된다면 오래 앉아있고 싶은.^^
어쩌면, 절 기다리는 가족의 품으로 일찍 가야하는 상황이 그 짧은 시간을 더욱 설레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삼립 롤 케이크의 인생역전을 부러워 하게 될 줄이야!!!!!!!!! ㅎㅎ
폭우 속에서 아이들을 기다리는 선생님의 마음이 따스하게 느껴져요
클래지콰이는 저 너무 좋아하는 가수예요.
올려주신 노래 젠틀 레인도 진짜 너무 좋죠 ^_^
씨디도 아직 다 갖고 있답니다!

삼립 롤 케이크는 희망의 맛입니다.ㅋㅋㅋ
태풍 덕분에 잠시나마 글을 쓸 여유를 가질 수 있었어요. 쿵쾅대는 비바람 소리도 달콤하게 들리는 시간이었지요. 젠틀 레인을 들으니 그 시간이 더욱 풍요롭게 느껴졌답니다.^^
14년전, 클래지콰이 앨범을 즐겨 들었습니다. 감미로운 알렉스와 호란의 목소리가 참 좋았지요. 젠틀 레인은 그 시절 싸이월드의 BGM으로 걸어두고 많이도 들었습니다.
클래지콰이,, 감미로운 디디엘님의 감성과 통하는 면이 있네요.ㅎㅎ

지금 올려주신 젠틀레인을 4번째 듣는데...
첫부분 재생될 때마다 매번 너무 설레는 느낌이(이 정도면 병이 아닐까 싶은....;;;)
길 가다 들른 단골가게에서 반가운 사람을 만난 기분으로 들었습니다!
솔메님 편히 주무시고, 내일도 휴일이라는 기쁜 사실을 알려드리며 이만..총총! ㅎㅎ

네 첫 부분 아기자기한 음이 페이드인 되면서 다가오다가, "씻다운 플리즈~" 할때, 두근두근해요.ㅎㅎ 곧 감성의 gentle rain을 맞을 거라는 기대감 때문일까요.
새삼 전해주시는 휴일 소식에 크게 미소 한 번 짓습니다. 오늘은 코스트코 갔다가 와서 아이들도 일찍 잠들어줘서 밤의 여유를 즐기고 있습니다.ㅋ 디디엘님도 좋은 밤 되세요! ^^

티핑 포인트. 참 익숙한 책입니다. ㅎㅎㅎㅎ 역시 성실하게 제대로 일하면 잘 되는군요. 티핑 포인트를 맞으시길 바랍니다. ㅎㅎㅎㅎ

책을 이미 보셨군요. ^^ 성실하고 묵묵히 걸어간다고 다 잘 되는 건 아니겠지요. 하지만, 티핑포인트는 묵묵히 걸어가지 않으면 찾아오지 않겠죠. 묵묵히 걸어나가요.ㅎㅎ

예. ㅎㅎㅎ 그냥 시간만 오래 일하는 게 아니고, 고민을 하면서 일하면 100% 성공한다고 봐요. 하지만 차이가 나는 것은 성공의 크기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작게는 누구나 성공할 수 있는데, 얼마나 크게 얼마나 오래 성공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겠죠. ㅎㅎㅎ 티핑 포인트는 의외로 금방 올지도 모릅니다. ㅎㅎㅎ 금방 성공할지 모르니깐 웃고 살죠 ㅋㅋㅋ 화이팅입니다. ㅎㅎㅎ

희망적인 얘길 해주셔서 에너지가 샘솟습니다.ㅎㅎㅎ 고민의 유무, 성공의 크기 차이- 확실한 신념을 갖고 계시는군요!
일에 있어서 자기 신념을 갖고 하는 것만큼 중요한 게 또 없는 것 같습니다.
곧 올 티핑포인트를 맞이할 준비 합시다.^^ㅋㅋ

예. 좋은 글을 올려주셔서 덕분에 희망적인 생각이 떠오른 것 같습니다. 감사드립니다. ㅎㅎㅎ 예. 티핑포인트 맞으러 같이 가죠 ㅋㅋㅋ

kyslmate님은 탁구선수 출신인 모양이네요~ 운동 잘하는
분들 넘 부럽습니다.
게다가 글도 잘 쓰시니 더 부럽구여~

ㅋㅋ 탁구 선수라뇨. 절대 아닙니다~~!!
소싯적부터 잘 치는 친구들과 오래 해온 정도입니다.ㅎ
기숙사에서 제일 잘 치던, 고정도 수준 밖에 안 되죠.

내 인생의 티핑포인트는 언제가 될지 스팀잇에서는 여러 이웃분들로 인해 많은 티핑포인트가 있었죠. 감사할 일입니다 ㅎ

공감합니다. 혼자만의 힘으로 뭘 이룰 순 없는 것 같습니다. 좋은 사람들과 더불어 지내다보면 좋은 기회도 맞이할 수 있는 것이더라구요.^^

우와 주말에 아이들에게 탁구를 가르치시는군요. 멋져요^^
태풍이 정말 거셌나봅니다... 글에서 거센 바람이 느껴져요 ㅇ.ㅇ
그나저나 삼립 롤 케이크 맛이 급 궁금해지는데요 ^^;;

ㅎㅎ 비바람이 정말 미친듯이 불다가 정오쯤 돼서 거짓말처럼 햇살이 났어요.
삼립 롤케이크는 부드럽고 고전적인 맛이 나요. 우유와 먹기에 괜찮았어요^^ 가성비가 좋습니다.

주말에 탁구를 가르쳐주는 선생님이라니! 또 새로운 모습이예요.

그 롤케익은 저도 갑자기 맛이 궁금해지네요. ㅋㅋ 안그래도 요새 그 뉴스 보다보니 마카롱이 생각났는데, 너무 피곤해서 계속 자는 바람에 마카롱 사러 나가진 못했어요. ;ㅂ ;

애들이랑 탁구 치는 재미가 쏠쏠하거든요.ㅎ
저도 롤케잌은 사와서 아직 개봉하지 않았어요. 맛이 어떨지 기대가 돼요. 평범한 맛이라는 사람도 있고. 아마 유기농이라는 말 때문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던 거 같아요. 자녀를 위한 유기농! 안 끌릴 도리가 없죠.
마카롱은 직접 만들었다고 항변하더군요. 쩝.ㅎ

태풍이 잦아든 것 같아 다행입니다. 탁구도 가르치시는 군요!! 탁구하면 군대의 즐거운 놀이 아니겠습니까? ㅎㅎㅎ 군대에서 즐겁게 치던 때가 생각나네요 ㅎㅎ

군대에서 한 탁구 치셨나요?ㅎㅎ 주변에 군대 가서 실력이 확~ 늘어온 친구들이 많더라구요.
문득, 외국엔 유료 탁구장이 있는지 궁금해지네요ㅋㅋ

tata1님이 kyslmate님을 멘션하셨습니당. 아래 링크를 누르시면 연결되용~ ^^
tata1님의 [이야기찻집 가수story] 히바리의 마지막 노래

...
화린: 아! 아키! 어서 와요. 히바리의 노랠 듣고 싶어하는 손님이 있어서 말이지.
그렇죠 키슬마테( kyslmate)님?
4번테이블의 한 남자가 이어폰을 빼고는 먹고있던 롤케잌을 서둘러 꿀꺽 삼키고는 말했다.
kyslm...

삼립 ... 저도 한 번 먹어봐야겠습니다 ^^

미미네는 젊은 분들이 어이 그렇게까지 선을 넘어버렸을까요. 안타깝습니다.

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런 일은 한 번이 무서운거죠. 한 번 선을 넘으면 그 다음은 무감각해지는 거니까요.
삼립 롤케잌 맛 괜찮습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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