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멸했던 방식으로 성공당하기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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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뉴스들을 보면 <블랙미러> 시즌 1의 단편 <핫샷>이 떠오른다. (스포일러 있으니 볼 사람들은 스킵해주세요) 끊임없이 광고를 시청해야 하는 미래의 디스토피아의 세계. 또 상품성이 된다면 심지어 포르노배우로 단숨히 변신하고 박수갈채를 받는 사회. 주인공은 이 더러운 세계에 균열을 내고 싶어한다. 공개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한다. 그는 발언권을 얻기 위해 갑자기 목에 칼을 대고, 목숨을 걸고 억눌렸던 감정들을 토해낸다. 왠걸. 그는 단숨에 스타가 된다. 칼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다. 그는 안락한 공간에서 그 칼을 소품으로 사용하는 토크쇼 방송의 인기 진행자로 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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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크시의 그림이 소더비 경매에서 15억원에 낙찰됐다. 익명으로 사회비판적인 작업을 해왔던 뱅크시는 이 작품에 비밀 장치를 숨겨놨다. 경매에서 그림이 낙찰되자마자 그림의 절반이 파쇄당했다. 충격적인 현장이었던만큼 세간이 떠들석했다. 평소 말도 안되는 가격에 미술 작품이 거래되는 현장을 조롱해왔던 뱅크시의 '엿먹어라' 전략은 성공했을까? 영리한 구매자는 파쇄당한 작품을 그대로 구매했다. 유럽 소더비 현대미술 소장은 이번 작품에 대해 "역사상 최초로 경매 중에 라이브로 공연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해프닝으로 이 그림의 가격은 더욱 오를 것이라 예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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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FC 선수 맥그리거는 트래쉬 토킹으로 유명세를 얻었다. 그는 시합이 잡히면 상대를 가리지 않고 엄청난 수위의 막말을 쏟아낸다. 그럴수록 그의 파이트머니는 올라간다. 평소 점잖던 UFC의 다른 선수들도 이제 모두 어설프게라도 맥그리거를 따라하게 되었다. 정통 무도가의 정신을 지닌 재야의 고수 '하빕'은 이 바닥이 너무 싫었다. 이 모든 것은 '비지니스'라는 말에도 하빕은 동의하지 못한다. 하빕은 경기장에서 고대했던 맥그리거를 만나 때려눕힌다. 그러나 시합 중에도 끊임없이 하빕의 종교와 부모에 대해 막말을 서슴치 않았던 맥그리거 코치진을 향한 하빕의 분노는 순간적으로 폭발한다. 경기가 끝난 후 하빕은 케이지를 뛰어넘어 맥그리거의 코치진에게 주먹을 휘두른다. 순식간에 경기장은 난투극 막장 드라마가 되었다. 이 사건 이후 하빕의 몸값은 수직 상승하게 되었다.


냉소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은 이 모든 것들이 다 뜨기 위한 '전략'이었다고 말할 것이다. 난 이들의 진심을 의심하지 않지만 일단 그렇다고 치자. 그렇다고 해도, 진정한 경멸을 내면에 오랜기간 품고 있었던 자들만이 생각해낼 수 있는 창의적인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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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파쇄 되는것을 뉴스 에서 봤어요.
큰일났다 생각했는데...
그런데 그림값이 올랐다니 놀랍네요.

아직 올랐다는 것은 확인 못했고 제 예측입니다. 그러나 또 뱅크시의 명성이 올랐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겠죠.

개인적으로 하빕이 충동적이었으나
뱅크시는 그림 가격이 오히려 오를수도 있다는 것도 충분히 예상하지 않았을까 추측합니다

뱅크시는, 저는 반반이긴 해요. 의심이 조금 가는 것은.. 완전히 박살내어버리는 파쇄가 아니라 그림의 절반만, 그것도 예쁘게 일렬로 파쇄되었다는 점이.. 께림직합니다.

성공당해버렷 ㅋㅋㅋ 되게 신기하네요. 하빕은 그냥 빡돌아서 타이틀보다 중요한 걸 지키고 싶다고 생각했을 것 같은데. 그걸로 성공하다니 매우 아이러니. ㅋㅋㅋㅋ 진짜 성공당해버렸군요. ㅋㅋㅋㅋ 웃기네요.

미국 프로레슬링계에서도 하빕에게 러브콜이 왔다는 기사를 방금 또 봤네요 ㅎㅎ

하빕은 예전부터 잘한다 잘한다 했지만, 그래플러의 숙명상 재미없다는 인식 때문에 잘 뜨지 못했는데, 본인이 제일 경멸하는 상대를 만나서 되려 큰 명성을 얻는 아이러니를 겪었네요. 요즘 같은 자본주의 시대에 자기 PR은 미덕이라지만, PR의 모양새가 인간의 가장 조악한 부분을 건드린다는 점이 안타깝습니다.

돈맛을, 그러니까 돈의 독배를 마신 후에도 신조를 유지할 수 있을지가 궁금합니다.

절반만 파쇄했고, 그림의 소장/교환 가치가 남아 있는 걸로 보여, 조금은 냉소적으로 보게 되더군요. 작가에 대해 아는 건 없어 어떤 게 본심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파쇄'라는 과격한 단어를 쓰기에는 너무 정돈되고 예의바른 반항이 아니었나 싶어요. 심기를 건드렸지만 결국 머리를 쓰다듬게 되는 반항이랄까요. 예전에 초창기 뱅크시가 미술관 권력을 비판하고자 유명 미술관에 자신의 작품을 몰래 걸어놓고 며칠간 그 사실을 아무도 알지 못했던 상황을 풍자했던 퍼포먼스는 참 괜찮았었는데.. 이번 해프닝은 저도 조금 갸우뚱하는 지점이 있네요.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던 세상에 두각을 나타내려면 이목을 끌어야 하는게 관문인 것 같아요. 유명세를 타면 돈을 많이 가져다주는건 분명하지만 본인에게는 독이될지 약이될지는 잘 모르겠어요. 갑자기 뜬금포지만 전 오쟁님 글 정말 잘 쓴다 생각해요. 매번 댓글을 달진 않지만요ㅎ

뜬금포 칭찬 넘나 좋네요 히히히

하빕의 경우는 그의 입장에서 예상못한 성공이었을듯해요. 그런데 뱅크시는 .. 왠지 큰그림을 그린듯한 느낌적인 느낌이 드네요.

뱅크시는 정말 속을 알 수 없어서.. 이 사건조차 또다른 큰 그림을 위한 일부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합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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